'비운의 재벌 2·3세' '기구한 운명'
'비운의 재벌 2·3세' '기구한 운명'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5.0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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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에서 도피자로, 기구한 인생

장진호전 진로그룹 회장(63)10년에 걸친 해외 도피 끝에 유골이 돼 귀국했다.‘ 참이슬 신화의 주인공,‘ 비운의 황태자등으로 불리던 장 전 회장은 중국 베이징에서 지난 3일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는 1990년대 중반까지 참이슬카스를 앞세워 국내 주류시장을 휘어잡았으나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외환위기와 함께 몰락의 길을 걸었다. 장 전 회장의 비극적 죽음으로 과거 경영권을 세습 받은 제계의황태자에서 패망의 골짜기로 떨어진 재벌 2세 경영인들이 새삼 화제에 올랐다.

 

쓸쓸한 말로

 

장 전 회장은 사망 전날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만취한 상태로 전화해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결국 객지에서 심장마비로 굴곡진 삶을 마무리 했다.

장 전 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를 나온 뒤 79년 진로그룹에 입사했다. 85년 진로 창업자인 부친 장학엽 회장이 세상을 뜨자 88년 진로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미국 쿠어스사와 합작한 진로쿠어스맥주가 1994년 맥주 카스를 내놓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취임 당시 5개이던 계열사가 30여개까지 늘어났고 그룹은 1999년 재계순위 24위까지 뛰어올랐다.

그러나 무리한 몸집 불리기로 재무구조는 악화된 상태였다.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계열사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그룹은 공중분해됐다. 카스는 OB, 참이슬·석수·퓨리스는 하이트에, 진로발렌타인은 페르노리카에 각각 매각됐다.

장 전 회장은 20035월 해임됐고 그해 9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결국 2004년 징역 2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는 재기를 모색하며 2005년 캄보디아로 도피했다.

캄보디아에서도 순탄치 않은 삶이 이어졌다. 앞서 2002년 취득한 캄보디아 국적으로 은행사업에 손을 댔지만 매각 과정에서 신뢰를 잃어 입국 5년만인 2010년 중국 베이징으로 도피처를 옮기는 신세가 됐다. 중국에서도 게임업체 등에 투자했으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장 전 회장은 형 집행유예 기간은 끝났음에도 거액의 세금을 납부하지 못해 한국에는 돌아가지 못하고 중국에 머물렀다.

2013년에는 차명으로 맡겨놓은 4,000억원어치의 채권을 되찾기 위해 전 진로그룹 재무담당 임원을 횡령 혐의로 서울 중앙지검에 고소하기도 했다.

이같은 비운의 2세 경영인은 외환위기 전후 무더기로 쏟아졌다.

▲구본호 레드캡투어 최대주주

 

재벌가의 답습

 

외환위기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장 전 회장을 비롯한 동아(최원석), 우성(최승진), 한보(정보근), 삼미(김현철) 등 국내 유수의 재벌 그룹 2세 경영인들이 마치 꼬리를 물듯 부도의 늪에 빠졌다.

이들 중 상당수는 무리한 투자와 외형 위주의 사업확장을 추구하다 비극을 자초했다. 경영 자질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젊은나이에 경영권을 쥔 뒤 계열사를 늘려가다 쓰러지고 만 것이다. 그 결과 창업주에 비해 위기관리 능력 등이 턱없이 떨어지는 2세 경영자의 자질론이 급부상하기도 했다.

더 심각한 것은 재벌 3세에서 일어날 수 있는 국부유출이다.

미국 국적자로서 주식양도세 20억 원을 내지 못하겠다며 조세심판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가 승소한 구본호 레디캡투어 최대주주가 대표적 사례다. 구 씨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6촌 동생이다.

그는 지난해 어머니 조원희 범한판토스 회장과 함께 LG그룹 해외 물류를 담당하는 범한판토스 지분 82.1%LG상사와 오너 일가에 매각했다. 범한판토스는 설립 후 LG그룹의 물류부문을 전담하면서 빠른 기간 급성장한 바 있다. 이른바 일감몰아받기로 성장한 기업이라는 평.

대신 범한판토스의 자회사였던 레드캡투어는 범한판토스로부터 지분을 매입해 따로 독립했다. 이들 모자는 레드캡투어 지분의 74%를 보유하게 되면서 올 한 해 45억 원에 달하는 배당금을 챙기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국적자인 구 씨에 대한 레드캡투어 과다 배당이 국부유출이라는 비판 또한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자식의 국적마저 바꾸고 있는 일부 재벌가의 행태는 계속되고 있다. 모 재벌가 3세는 자기 자식에게 캄보디아 국적을 따게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재계의 금언이 있다. 기업의 대물림관행이 지속되는 한 비운의 황태자스토리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투신자살로 생마감

 

재벌가의 비운은 스스로 삶에 종지부를 찍는 아픔을 초래하기도 한다.

지난 20037월 정주영 전 현대그룹 창업주의 5남인 전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현대 그룹 사옥에서 타계했다. 정 회장의 사무실에서는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의욕적으로 추진한 대북 사업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와 검찰의 소환 조사에 중압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가문에는 고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회장(당시 46)이 있다. 그가 지난 20108월 서울 용산구 D아파트 현관 앞에 숨져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 전 회장은 고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의 아들이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조카다. 삼성가에서 비운의 황태자로 불렸던 이창희 전 회장은 1991년 작고했다.

이어 그룹 붕괴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의 장남인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이 분식회계 및 불법대출 등의 혐의로 구속되고 차남인 이 전 회장까지 자살하는 등 불운이 잇따라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재벌로 살다가 사업에 실패를 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이 전 회장은 이 아파트 5층에 있는 자기 집에 혼자 머물다 스스로 몸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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