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평] “부패척결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
[한국시평] “부패척결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
  • 김길홍 회장
  • 승인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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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길홍 회장

이완구 신임국무총리가 경제살리기가 당면한 국정의 최우선 과제라고 다짐했다가 돌연 전방위 사정(全方位司正)을 밝혔다. 이 총리는 부정부패 척결의 구체적 대상을 방위산업, 해외자원 개발, 대기업의 비자금 등의 비리 등으로 지적하면서 정부의 강력한 수사의지를 대국민담화로 직접 발표하여 정관계와 재계에 후속 파장이 일고 있다.

현대사를 살펴보면 대통령선거 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거나 성공한 쿠데타 정권이 탄생하면 어김없이 불행한 과거의 적폐(積幣)청산과 정치개혁의 명분을 앞세워 부정부패의 표본적 적발과 대국민 과시용 처벌을 단행했다.

1948년 이승만정부는 반민특위의 친일청산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루었다. 6.25전쟁의 와중에서 남북이 부역인사의 처단으로 민족상잔의 아픔을 경험했고,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및 5.16 쿠데타 등으로 인해 대통령하야와 해외망명, 선거 주무장관 등의 사형 등 정치적으로 숱한 비극과 희생을 치루었다.

지나간 이 모든 사실들은 역사발전의 필연적인 과정과 단계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같은 과거의 역사에서 우리는 미래의 교훈을 현명하게 터득해야 할 것이다.

부정부패의 발본색원은 역대정부가 공통적인 개혁과제로 내세워왔다. 국가가 건강하려면 정부와 국민이 함께 청렴하고 도덕적이어야 하고, 그래야 나라가 온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이 총리가 반부패 전쟁을 선언한 것을 누구도 나무라거나 탓할 수는 없다.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다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국정동력이 저하된 박근혜 정부 3년차를 맞아 어떠한 배경과 동기에서 갑자기 부정부패의 척결을 공표하고 나선 것인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비정상적으로 정권을 잡거나 정부가 교체되는 초기에 정권의 위엄을 세우고 반대세력을 길들이기 위해 정치거물의 표적 수사와 전 정부의 고위공직자를 겨냥한 대대적 사정을 벌여온 것을 기억한다. 겉으로는 부정부패의 일소라고 강조하지만 속으로는 위기상황을 반전시키는 국면전환과 부담스러운 인뭍을 제거하는 정치 공학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는 사람도 없지 않다. 정부와 사정정국은 공직 전반과 일반사회의 부정부패 특히 권력형 비리에 대해 전면 사정과 전방위 수사를 진행하면 국민으로부터 전폭적인 환영과 박수를 받을 것이다. 사정의 대상이 되는 공직자, 정치권, 대기업들은 위축되거나 불안할지 모르나 정부로서는 크게 손해 볼 것은 없다.

요즈음은 옛날 권위주의 정권 때와 비교하면 여건과 상황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 부정부패의 척결을 정치공학적으로 계산하고 이용하면 반대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부정부패의 추방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상시적으로 꾸준하게 추진해야 국민의 지지도 받고 대어(大漁)를 잡을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 12년이 지난 1975년 서정쇄신(庶政刷新)을 국정의 주요지표로 제시했다. 공무원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일소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정의 능률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사회전반의 부조리와 비능률을 제거하는 정신개혁운동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서정쇄신을 착수할 당시 정부안팎이 요란하거나 떠들석하지 않았다.

인류가 공동사회를 구성했던 아득한 태고 적부터 도둑과 부패는 존재했다. 지도자의 위세가 당당하고 권력기관을 모두 동원한다 해도 하루아침에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통령과 사정당국의 부패척결 의지가 언제나 변함 없고 단호하다면 피라미 잡는 식의 용두사미(龍頭蛇尾)는 될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청와대 민정과 정보기관의 암행감찰과 더불어 검찰의 예고 없는 수사가 철저하게 진행되어 간혹 거물급 장관과 고위 공직자가 사표를 제출하고 처벌받는 서정쇄신의 결과가 외부로 알려졌다. 그후 805.17 비상조치와 전두환 대통령 때는 사회정화 및 개혁운동으로 부정척결 작업이 꾸준하게 이루어졌다.

역대정권의 사정과는 비교되는 이 총리의 대국민담화 발표시점이 오해를 받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세월호사고, 인사참사, 정윤회 문건유출 등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고 국정의 추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예기치 않은 악재(惡材)의 연속으로 인해 한때 조짐이 보였던 조기 레임덕을 예방하고 밀려난 정치와 행정의 국정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정치적 포석적 담화로 해석하는 전문가도 있다.

사정의 태풍이 공직사회에 불어닥치면 해이한 공직기강을 다잡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일하다 실수하면 혼자만 손해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공무원이 무사안일하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역효과도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거기에다 사정이 민간 및 재계까지 전방위로 확대되면 경제활동이 영향 받아 위축될 수 있다. 여기에다 감사원, 경찰, 공정위, 국세청, 지방자치단체까지 부정 단속에 참여한다니 경제살리기가 방해받을까 자못 걱정스럽다.

가뜩이나 경기가 침체된 어려운 판국에 경제의 활성화와 민생경제의 회복에 걸림돌이 되는 부작용 등을 감안해 정부는 이번 수사를 단기간에 끝내야 한다.

또한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전면사정의 대상과 범위를 둘러싸고 현정권과 전정권간의 충돌과 새누리당 친박, 비박, 친이 간의 계파 갈등을 예상하고 있다. 결코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현정부 사정당국은 만의 하나라도 정치적 표적사정의 오해를 받을 만한 수사는 절대금물(禁物)이다.

공정하고 엄정한 관련법의 집행과 원칙 있는 수사를 진행하여 정치적으로 중립하는 검찰의 명예를 지켜야한다. 검찰은 현재권력의 유지관리 및 영향력 행사에 절대 초(超然)하면서 부정부패 없는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사정 본래의 사명에 충실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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