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한국의 경제학자들'
[신간] '한국의 경제학자들'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5.0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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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이후 삼성의 미래를 논하다

재벌과의 빅딜? 국가의 개입은 어디까지… 짝퉁 경제 민주화와 주주 자본주의의 양면성.

스타급 경제학자들 총출동, 한국경제 사상 최대의 논쟁이 펼쳐진다.

《한국의 경제학자들 : 이건희 삼성에 관한 7개의 시선들,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를 진단한다》는 지난 10년 동안의 재벌개혁 논쟁의 다양한 쟁점과 층위를 추적·분석하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이른바 사회적 대타협론과 경제 민주화 담론의 실체를 파고들면서 가장 왼쪽에서 가장 오른쪽까지 30여명의 한국의 대표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지형과 주요 쟁점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한 방대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지금 삼성그룹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져 누운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이 한창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최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삼성 3세들에게 경영권을 인정해 주는 대신 경영을 잘못하면 정부가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른바 재벌 빅딜론은 역사가 길다. 정작 삼성은 시큰둥한데 장하준 교수는 계속해서 타협을 제안하면서 논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그런 타협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는 입장이다. 장하준 교수가 주주 자본주의 공세에 맞서 재벌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김상조 교수는 오히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한국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반박한다.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재벌 개혁 쟁점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대타협과 주주 자본주의 찬반 논쟁을 넘어 기업 지배구조와 성장 담론 전반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이재용 부회장,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둘 다 지배하기 불가능.

삼성그룹의 경우 현실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6조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모두 내고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그대로 물려받아 둘 다 지배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일부 언론에서 대안으로 거론하는 지주회사 전환도 법 개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SDS 상장 차익이 최대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삼성전자가 상속 이후 최대한 배당을 늘린다면 상속세 6조원은 큰 부담이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경영권 승수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고 중간금융지주회사가 법적으로 허용돼 있지 않기 때문에 지주회사로 전환하더라도 삼성생명을 계열 분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보다는 삼성생명을 가져가는 게 나을 거라는 관측도 나오는 상황. 딱히 대타협에 목매는 상황은 아니지만 자력으로 아버지의 경영권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재벌이 주주 자본주의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한국 자본주의는 이미 재벌의 총수가치와 주주가치가 독점적 대기업 집단이라는 시스템과 결합해 잡종형 신자유주의 축적 체제를 구축했다”고 반박한다. 김성구 한신대 교수는 김상조 교수를 겨냥해 대자본의 경제력 집중을 비판하면서 경쟁 정책을 주장하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라고 비판한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한국은 시장경제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면서 자신에게 쏟아진 주주 자본주의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한국적 총수 자본주의에 맞서기 위해서는 여전히 정의로운 시장경제, 이를 테면 주주 행동주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편다. 장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사촌동생인 장하준 교수를 겨냥해 “삼성의 경영권은 보호받을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도전의 대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진보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자 Vs. 투기자본의 앞잡이.

서로를 “진보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자”라거나 “명망을 좇는 기회주의자”라거나 “투기자본의 앞잡이”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공연히 꼬투리를 잡거나 공부 좀 더하고 오라며 면박을 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상아탑의 고루한 고담준론을 넘어 실물 경제 최전선에서 부딪히는 백가쟁면의 논쟁은 단순히 순환출자 규제를 하느냐 마느냐, 소액주주 운동이 옳으냐 그르냐의 차원을 넘어 성장과 분배, 그리고 국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 책은 가장 왼쪽의 김성구 교수에서 가장 오른쪽의 뉴라이트 계열의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나 김정호 연세대 교수 등의 스펙트럼을 망라한다. 김정호 교수는 심지어 “낙수효과는 이미 충분하다”면서 “총수의 의결권 괴리가 클수록 경영 성과가 좋았다”는 주장을 펼치기에 이른다. 반면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자본의 소유권과 기업의 경영권을 분리하고 노동자들이 이사회 선출권을 쟁취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장하준 교수와 김정호 교수는 재벌 체제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국가의 개입 범위를 두고는 정반대로 의견이 엇갈린다. 김정호 교수는 시장경쟁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주주 행동주의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지만 김성구 교수는 주주 행동주의 역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독점자본의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비판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처럼 이념적 지형에 따라 전선이 서로 엇갈리고 뒤섞이는 양상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장하준 교수는 주주 자본주의적 압박이 단기 실적에 매몰될 위험을 경계하지만 김상조 교수는 오히려 전문 경영인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주주들의 외부 통제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장하성 교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주주 행동주의 또는 펀드 행동주의를 설파하고 있는데 장하성 교수의 펀드 행동주의는 장하준 교수가 말하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와 전혀 다른 맥락이고 진보 진영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연기금 사회주의와도 전혀 다른 개념이다.

김상조 교수는 가진 것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는 지주회사를 재벌 체제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는데 송원근 경남과학기술대 교수는 지주회사 체제에서도 총수의 전횡이 사라지지 않으며 부당 내부거래도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김상조 교수가 순환출자를 규제하고 금융산업 분리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김정호 교수는 그런 규제는 한국에만 있다고 반박한다.

상아탑의 고담준론을 넘어 정글 자본주의의 현실로.

좌우를 넘나들며 기업 지배구조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풀어낸 이 책의 결론은 떠들썩했던 사회적 대타협 논쟁과 무관하게 삼성그룹은 이미 3세 승계 작업을 대부분 마무리했으며 정치권의 최종 결단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라는 것. 결국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건강과 무관하게 최대한 지금 체제를 유지하면서 버티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설령 죽어도 죽었다고 발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출신인 이정환 기자는 이 책에서 “탈정치화된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탈정치화된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완벽하게 잘 작동하는 효율적인 시장이 김상조 교수의 환상인 것처럼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는 국가를 기대하는 장하준 교수의 이론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국가적인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라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를 사회적 논의의 영역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 이정환/ 출판사 생각정원/ 페이지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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