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어린이집 이용 제한” 파장 예고
“전업주부, 어린이집 이용 제한” 파장 예고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5.0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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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학대해도 폐쇄.‘ 일단 보여주기’ 정책 논란

정부가 보육 교사 자격증 취득 과정을 국가고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최근 정부는 연이어 발생하는 어린이집 폭행을 근절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놓고 있다. 사건 발생 어린이집 즉시 폐쇄,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보육교사 자격 요건 강화 등이다. 이에 대한 찬성과 함께 근본적인 상처를 무시한 일회성 치료법이라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보육체계 전반 개편”

인천 어린이집 학대 사건은 국민 대다수를 충격에 빠트렸다.

보육교사의 폭력에 쓰러진 아이가 곧바로 자세를 고쳐 앉고 친구들은 겁에 질린 듯 조용히 지켜보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미 아이들은 비슷한 공포를 수차례 겪은 듯 보였다.

이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어린이집 학대 사례가 경찰에 신고됐다.

인천 부평에서는 원생의 얼굴을 때린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가 공개돼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한글공부와 선 그리기를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였다.

안양에서는 2시간 동안 원생을 홀로 교실에 방치한 사실이 발각됐다. 부천에서는 원생들의 이마를 때리고 ‘도깨비방’이라는 어두운 곳에서 장시간 벌을 세우는 사례가 각각 신고돼 경찰이 수사중에 있다.

울산 모 어린이집 원장은 22개월 된 남자 원아를 여러 번에 걸쳐 입에 물티슈, 손수건 등을 가득 넣어 장시간 서 있게 학대한 혐의로 조사 받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터지는 어린이집 학대 사건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도 보육체계 전반에 대한 개편을 추진하고 나섰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국 보육진흥원에서 열린 아동 어린이집 아동폭력 근절대책 추진 방안 현장 간담회에서 “보육교사의 실습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필요하면 자격증 취득을 현재의 학점 이수 방식이 아닌 국가고시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고시 전환 제안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간담회에 오기 전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과 관련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글을 보고왔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조선족이라 한글이 좀 어려운데 대행업체에서 과제를 대신 해줬다, 남편이 강의를 대신 들어줬다, 2시간만 동영상 틀어놓고 있으면 된다”는 글을 심심치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육교사 자질 강화를 위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고 국가 고시로 전환한다는 의견은 일부 전문가들이 대안 중 하나로 제시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을 국가고시로 전환하는 것은 짧은 시간 내 진행되기는 어렵다”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올바른 인성을 갖춘 보육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보육교사가 지녀야 할 품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인·적성 검사도 의무화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보육교사 자격증 소지자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부질없는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보육교사 1~3급 자격증 소지자는 120만명으로 현업 종사자보다 4배나 많다. 상당수 자질 없는 보육교사들이 현장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는 자격증 남발과 허술한 양성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대부분은 자질이 떨어지는 보육교사, 보육교사를 관리 감독할 책임을 방치한 원장으로부터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인성과 자질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육교사들이 현장에 곧바로 투입돼 급할 땐 손부터 올라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원장은 원생지도의 편의성 때문에 이를 묵인하는 경우도 있다.

쉬운 문턱, 열악한 환경

현재 보육교사 자격증은 학점은행제를 통해 관련 과목 17개만 이수하면 취득할 수 있다. 심지어 보육교직원 자격증 신청의 탈락률은 5%에도 미치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보육교사가 될 수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별도의 시험이나 검증 없이 일정한 경력만 쌓으면 보육교사 급수가 올라가는 방식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인천 송도모 어린이집 보육교사 A(33·여)씨의 경우 1년 6개월 간 인터넷 강의로 공부해 2010년 2급 보육자격증을 따고 현장 경력을 바탕으로 3년 뒤 1급으로 승급했다.

지난해 이 같은 방식으로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해 어린이집에서 1년간 근무했던 박모(38)씨는 “자격증 따기가 쉽다 보니 주위 엄마들이 ‘나도 한번 해볼까’하고 큰 생각 없이 뛰어드는 경우가 흔하다”면서 “그 중에는 아이들을 잘 보는 교사도 있고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공통점은 일이 너무 고되다보니 대부분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보육교사는 대부분 별도의 식사시간이 없다. 점심 때가 되면 아이들을 먼저 챙겨주고 자신의 식사는 뒤로 미룬다. 이후 잠깐의 시간을 내 서둘러 해결한다.

이들에게 ‘퇴근’은 사실상 제2 업무의 시작이다. 아이들이 가고 나면 평가인증과 지도점검 준비, 일지 작성 등 잡무를 처리하고 청소와 교재 준비를 마쳐야 한다. 총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의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이다.

반면 급여 수준은 매우 열악하다. 10년차 보육교사의 경우 월 150만원을 조금 넘는 정도다. 이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보육교사 1명이 10∼20명의 어린이를 동시에 돌보고 있다.

제대로 된 보육교사의 지도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갖기에 충분하다.

CCTV 찬반 논란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린이집내 폐쇄회로(CC) 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오는 3월부터 전국 어린이집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방안은 국회에서 사실상 확정됐다

보육시설 CCTV 설치 의무화를 주장해온 정부·여당에 이어 새정치민주연합도 찬성 입장을 밝혔기 때문.

새정치연합‘아동학대 근절과 안심보육 대책위원회’는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2월 임시국회에서 심의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남인순 의원과 대책위 소속 의원들은 그동안 어린이집 CCTV 설치가 근본적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며 CCTV 설치에 반대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입장이 여론의 역풍을 맞고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CCTV 설치를 강하게 요구하자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책위는 CCTV 설치로 인한 보육교사의 인권 침해 등의 우려사항에 대해서는 법안심의 과정에서 방안을 마련해 이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남 위원장은 “개인정보보호법에 CCTV 촬영에 따른 인권침해 내용이 명시된 만큼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인권침해 등 우려가 나오는 점에 대해서는 법안 심의 과정에서 최소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보육 현장의 반발은 여전하다. 보육교사 인권 침해뿐 아니라 부모와 함께 아이 양육을 책임지는 동반자 관계가 되어야할 교사들을 감시 대상으로 보는 것이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번에 아동폭행 사고가 일어난 어린이집 역시 CCTV가 설치돼 있었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반면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합회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설치 법안을 반대한 국회의원은 어린이집 폭행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2005년부터 어린이집 CCTV 설치 법안이 세 차례나 추진됐으나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일부 여야 의원들의 반대로 폐기됐다”면서 “따라서 어린이집 폭행 사건까지 이르게 한 책임은 법안을 반대한 국회의원이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합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보육교사의 인권만 중시하고 아이들의 인권이나 학부모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 행태는 지탄을 받아야 한다”면서 “일부를 위한 정치보다 전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번만 걸려도 폐쇄

정부는 어린이집뿐 아니라 전국 유치원과 유아 대상 사설 학원에 대해서도 CCTV 설치를 확대한다. 교육부와 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6개 부처는 22일 청와대에서 국민행복’분야 대통령 업무보고를 합동으로 갖고 같은 아동학대 방지 대책을 놨다.

지난해 68% 수준이었던 CCTV 설치는 올해 80%, 내년 90%까지 늘릴 예정이다. 또 유아 대상 학원도 CCTV 설치를 확대하고 학원강사 채용 시 결격사유도 신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유치원과 사설 학원으로의 CCTV 설치 확대 방안도 인권 침해나 실효성 문제 등으로 후속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아동학대가 1회만 발생해도 어린이집 폐쇄가 가능하도록 한다. 유아대상학원 역시 폐쇄된다. 학대 교사 및 해당 원장은 영구히 어린이집을 설치·운영하거나 근무할 수 없도록 할 방침이다.

이는 지난 16일 보건복지부와 여당이 ‘적발된 어린이집을 곧바로 폐쇄하겠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대책이다. 찬성 의견과 함께 반대편에 선 부모들의 불만도 나온다.

아동학대 문제가 불거진 후 휴원과 폐업에 돌입한 어린이집이 늘어난 상황. 당장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한 부모들의 급박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인천에서는 이미 아동학대로 물의를 빚고 문을 닫는 어린이집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사건에 상처 받은 학부모들은 갑자기 문을 닫게 된 어린이집 때문에 자녀를 맡길 곳을 찾느라 또 한 번 고충을 겪고 있다.

송도 지역 인터넷카페에서는 이웃의 전업주부들이 “직장 다니는 엄마들을 위해 당분간 아이를 대신 봐 주겠다”며 ‘보육 품앗이’에 나서기도 했다.

문형표 장관은 “아동학대는 분명한 범죄로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되어선 안된다”며 “보육제도의 문제점이나 열악한 처우 등 근본 대책도 같이 강구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전업주부, 이용시간 제한

정부는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이용을 줄이는 방안을 개편도 추진하고 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을 통해 “맞벌이 부부에 대해 지원대책을 강화하거나 시간제 보육을 활성화하는 등 구조적인 문제의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제도적으로 불필요한 보육시설 이용을 유인하는 체계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 장관이 언급한 ‘제도적으로 불필요한 보육시설 이용’은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길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전업주부들까지 과도하게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는 상황을 뜻한다.

가정에서 양육했을 경우 월 10만~20만원의 가정보육 지원금을 받지만 보육시설에 맡길 경우에는 22만~77만원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당연히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려는 수요가 커져 어린이집이 난립함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감독도 힘들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업주부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육아에 매달릴 수 없는 경우 대안이 없다고 반박한다. 시간제 보육시설이 집 주변에 있다면 잠깐이라도 편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여유 시간을 갖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다. 시간제 보육시설은 작년 기준 전국 80여곳뿐이다.

특히 0∼2세의 가정 양육이 정책 목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복지부 관계자는 “가정 양육수당을 지금보다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전업주부가 필요할 때마다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시간제 보육’도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이 같은 개편 추진은 현재의 무상보육 체계를 건드리는 것이어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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