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오류, 정의선 리더십 구축 실패
판단 오류, 정의선 리더십 구축 실패
  • 손부호 기자
  • 승인 2015.0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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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부지 고가매입, 글로비스 블록딜 무산 ‘안일한 판단’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한전 부지는 시가 4조원이 예상되는 부지를 10조원대의 고가매입으로 주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소송도 당했다.

현대글로비스 블록딜은 ‘일감몰아주기 회피용’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무산됐다. 설상가상 정의선 부회장 ‘디자인 경영’이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 총체적 난국에 비유할 만큼 현대차그룹은 위기에 봉착했다.

과욕의 ‘한전부지 고가매입’구설

당초 한전부지 인수 직후 현대차 안팎에서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낙찰가를 놓고 그룹 실무진의 정보력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 회장은 당시 “금액이 과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한전부지 인수는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투자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이 같은 정 회장의 발언은 실무진에 대한 독려와 함께 그룹의 도약을 위한 강력한 의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두 달 남짓 만에 모든 비난의 화살이 최종 결정권자인 정 회장을 향하게 됐다.

정 회장이 잘못된 판단으로 회사에 재무적 부담을 안겼고 주주들에게 금전적 손실을 입혔다는 주장이다.

결국 소액주주로 알려진 A씨는 지난해 9월 현대차그룹이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를 감정가의 3배가 넘는 10조5천500억원에 낙찰받자 매입을 주도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정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송규종 부장검사)는 한전부지 매입과 관련해 배임 혐의로 고발당한 정 회장을 불기소 처분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검찰은 고발 내용이 한전부지 매입에 대한 언론보도를 인용했을 뿐 배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갖추지 못했다고 보고 사건을 각하했다.

글로비스 프리미엄 증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매각이 무산됐다. 지배구조 관련주가가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최대 수혜주로 분류됐던 현대글로비스의 프리미엄은 증발했다.

금융투자시장에서는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로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 또는 주식 스왑을 꼽아왔다.

하지만 현대차는 현대글로비스 주식 매각이라는 카드를 제시했다.

현대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벗어나려는 조치라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대주주 일가의 지분율이 30% 이상인 기업이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 규모가 200억(또는 연매출의 12%)를 초과할 경우 위반금액의 최대 25%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 시장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두 회사를 합병하면 세금 낼 필요 없이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식 매각으로 인한 양도세(매각 차익의 20%) 부담이 일감몰아주기 증여세보다 훨씬 크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시장엔 현대차 대주주가 이번 매각을 시작으로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모두 정리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팽배했다. 이렇게 되면 계속 떨어질 게 뻔한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살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이 블록딜을 무산시킨 것이다

정의선 디자인경영 ‘우려’

지난 3일 로이터는 ‘불도저(정몽구) 이후 승계과정을 밟고 있는 현대차의 상속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의선 부회장의 현대차그룹 승계와 과제를 집중적으로 분석ㆍ보도했다.

로이터는 현대차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그동안 정몽구 회장의 그림자 아래에서 부단히 노력해 왔지만 여전히 현대차그룹 수장으로서 야망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의 경직된 기업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이터는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을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서 ‘트렌드 세터(trend setter)’로 탈바꿈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는 이와 함께 현대차는 중국산 저가 차량과 차별화를 위해 고가모델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정의선 부회장은 기아차 대표를 지내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보다 경영수업을 더 받긴 했다. 그러나 모든 투자자들이 현대차그룹 3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초조한 마음이다.”고 밝혔다.

정 부회장은 그동안 언론사와 인터뷰를 피해왔으며 이번 로이터 보도와 관련해서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로이터는 정 부회장이 신형 제네시스에 팝업식 네비게이션과 변속기를 장착할 것을 제안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정 부회장의 ‘디자인경영’이 현대차 안에서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부회장은 신형 제네시스 디자인과 관련한 회의에서 고급 유럽 브랜드들이 채택하고 있는 이 기능들을 신형 제네시스에도 적용하자고 제안했지만 양웅철 연구개발본부 담당 부회장이 기술력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정 부회장은 더 이상 뜻을 피력하지 않았고 지난해 말 출시된 신형 제네시스에서 이 기능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주주이탈 심각

전문가들은 “현대ㆍ기아차가 한전부지 인수 이후 부진한 주가 띄우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이 생각보다 냉담하다. 정몽구 회장의 이번 피소가 투자자들의 이탈을 가속화시킬 가능성도 영향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의 한전부지 인수자금이 연구개발(R&D) 투자 등 본연의 핵심역량을 키우는 데 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기회비용 측면에서 부정적인 시각이 상존하고 있다. 현대차가 한전 부지를 매입하는 데 투자한 금액은 폭스바겐의 1년치 연구개발비와 맞먹는 수준이다.”고 덧붙였다.

한전부지 인수의 후폭풍은 임단협 등에 복병이 되기도 했다.

올해 임단협에서 현대ㆍ기아차 노조가 한전부지 인수 문제로 협상기간을 끌면서 생산차질이 확대돼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한편 최근 정 회장은 세계 200대 부자 순위 안에 이름을 남기지도 못했다. 업계는 최근 일본의 ‘엔저 공습’으로 연일 주가가 하락한 데다 한국전력 부지 고가매입 논란으로 외국인의 집중 매도 대상이 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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