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명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성폭행 의혹에 휘말려 매체에서 퇴출됐다. 미국 NBC방송은 19일(현지시간) 빌 코스비 주연의 코미디 연속극 기획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NBC는 자세한 언급을 피했지만 코스비의 과거 성폭행 의혹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코스비는 ‘코스비 가족’ 에서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흑인 가장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4년 결혼해 자녀 5명을 둔 코스비는 실제로도 무탈한 결혼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코스비에게 과거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주장이 꾸준히 나왔다.
주요 방송사들, 퇴출 결정
NBC는 이날 성명을 통해 자세한 설명 없이 “원로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주연을 맡는 새로운 코미디 연속극을 제작ㆍ방영하려 했으나 최근 취소했다”고 밝혔다. NBC는 과거 자사 황금시간대 최고 스타였던 코스비에게 연속극에서 대가족을 이끄는 가장 역할을 맡길 계획이었다. 제작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대본이나 촬영 일정 등은 잡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에는 온라인 영화·드라마 배급사 넷플릭스가 그의 77세 생일을 기념해 제작한 특집 코미디 프로그램 ‘빌 코스비 77’ 공개를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오는 28일 온라인에 공개될 예정이었다
또 비아콤은 케이블채널인 TV랜드를 통해 코스비 가족을 재방영한다는 계획을 취소했다.
주요 방송사들이 일제히 코스비 퇴출 결정을 내린 것은 최근 불거진 코스비의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수십 년 전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등장하면서 추문은 불거졌다.
1980년대 유명 모델이었던 재니스 디킨슨은 18일 미 연예전문프로그램 엔터테인먼트투나잇을 통해 지난 1982년에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디킨스는 “당시 코스비 가족 출연 요청 문제로 만난 코스비가 내 일을 도와주겠다고 불러냈다”며 "생리통이 심해 코스비에게 진통제를 달라고 했다. 코스비가 레드 와인과 함께 약을 줬는데, 이후 기억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이 가운을 벗으며 내 위로 올라오는 코스비였다”고 말했다.
십여 년간 계속된 ‘의혹’
전직 연기자인 바바라 보먼도 이달 초 워싱턴포스트(WP)에 실명으로 게재한 글에서 17세이던 1985년 코스비에게 같은 방식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보먼은 “당시 배우를 꿈꾸던 내게 빌 코스비가 자신을 아버지처럼 여기도록 세뇌시키고 수차례 폭행했다”고 며 “뉴욕에 있는 빌 코스비의 고급주택에서 저녁을 먹으며 포도주 한 잔을 마신 후 의식을 잃었다. 그가 내게 약을 먹인 뒤 강간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보먼은 사건 당시 경찰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 우려돼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7일엔 조앤 타르시스라는 여성도 자신이 코미디 작가 지망생이었던 19살 무렵 코즈비가 술을 준 뒤 구강성교를 강요했다고 밝혔다.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는 연이어 나타났다.
미국 플로리다주 보카러톤에 사는 테레세 세릭니즈(57·간호사)는 20일(현지시간) 자신이 19살이던 1976년 코스비가 자신에게 약을 먹인 뒤 성폭행 한 것을 주장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그녀는 당시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쇼가 끝난 뒤 무대 뒤로 갔는데 코스비가 단둘이 있게 되자 알약 두 개를 물과 함께 건네며 "먹으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다음 기억은 분명히 약에 취한 기분이 들었고 내 옷이 벗겨진 상태에서 코스비가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바바라 보먼, 재니스 디킨슨, 코미디 조앤 타르시스 등 다른 세 명의 진술과 비슷하다.
그녀는 이후 코스비와 한동안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냈으나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두 사람이 다시 성관계를 맺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2005년 그 사실을 필라델피아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지만 기자가 확인한 결과 서류 신고는 접수된 것이 없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금까지 성폭행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모두 7명에 이른다.
다만 이들 중 정식으로 코스비를 고소한 사람은 아직 없다.
코스비의 성폭행 논란이 불거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5년에는 안드레아 코스탄드가 코스비가 자신에게 약을 먹인 후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하며 그를 고소했다. 코스탄드가 익명의 여성 12명과 함께 시작했던 이 사건은 이듬해 합의로 마무리됐다.
한 시대 풍미한 코미디언
‘자상한 흑인 아빠’의 상징. 코스비의 대표작인 ‘코스비 가족’은 1984년부터 1992년까지 NBC에서 방송됐다. 성공한 흑인중산층 가정의 일상을 그린 시트콤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작품이다. 국내서도 방영돼 ‘코스비’는 그 세대의 한국인에게도 정겨운 인물이다.
코스비는 1965년부터 1968년까지 방송된 '아이 스파이'에서 TV시리즈 최초로 흑인 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코스비 가족’에서는 치과의사인 자상한 가장 클리프 헉스터블 역을 소화하면서 미국 내 흑인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그는 코미디로 인종에 대한 장벽과 편견을 허무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마크 트웨인 유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코스비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에도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말이 일각에서 나왔을 정도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흑인 코미디언이었다.
코스비 측은 이번 방송퇴출과 관련해서는 아직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코스비의 변호사인 마틴 싱어는 앞서 디킨슨의 주장이 "허구이며 터무니없고 명예훼손적인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최근 성명을 통해 "이처럼 수십년 된 신빙성 없는 주장들이 자꾸 되풀이된다고 해서 반드시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주 공영라디오방송(NPR)에 부인 카밀 코스비와 함께 출연한 코스비는 성폭행 의혹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침묵으로 부인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로써 재기를 꿈꾸던 노령의 코스비는 큰 타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