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승 전 SK 회장, 11년만에 재계 복귀
손길승 전 SK 회장, 11년만에 재계 복귀
  • 손부호 기자
  • 승인 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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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산업화 효과적으로 일궈내는데 일조해 나가야 할 때, 강한 의욕 비춰...한국 펜싱계를 이끈 숨은 공로자 매년 20억 원 투자 펜싱 강국으로 세워

손길승(74) SK텔레콤 명예회장이 재계로 복귀했다. 지난 2003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 11년 만의 귀환이다. 40여 년 가까이 SK그룹에 몸담으며 지금의 글로벌기업 SK를 만든 ‘영원한 SK맨’이기도 하다.

통일문제 지대한 관심

지난 달 21일 손 명예회장이 전경련 통일경제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에 선임됐다. 전경련은 정부의 통일준비위원회 공식출범에 맞춰 통일경제위원회를 만들었다. 정부와 함께 기업인들도 통일시대의 한국을 준비하겠다는 의지다.

전경련은 1997년 ‘남북경제협력위원회’를 발족해 각종 대북연구 및 인도적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다 2005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중단됐다.

손 명예회장은 이날 “한국경제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데 일조한 기업인들이 이제 그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산업화를 효과적으로 일궈내는데 일조해 나가야 할 때”라고 밝혔다.

손 명예회장은 과거 전경련 회장 시절 남북경협 활동에 참여한 경험도 있다. 평소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새로 출발하는 통일경제위원회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흔쾌히 승낙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에 손 명예회장이 할 거면 열심히 하자고 의욕을 보였다”고 밝혔다.

셀레리맨에서 동업자로

손 명예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다. 1965년 최초의 대졸 신입사원으로 SK그룹의 전신인 선경직물에 입사해 1998년 전문경영인으로 처음 5대 그룹 회장에 선임됐다.

입사 후 SK그룹 경영기획실장, SK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 SK구조조정본부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20년 동안이나 회사의 핵심조직인 기획실에서 근무했다. ‘직업이 기조실장’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그의 평생동지로 불린다. 최종현 전 회장은 손 명예회장에 대해 “사원이 아니라 나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동업자”라고 밝혔다.

최태원 회장의 스승

손 명예회장은 1998년 SK그룹 회장이 됐다. 최종현 전 회장이 세상을 뜬 지 6일 만에 오너 일가의 합의로 회장을 맡은 것이다.

SK는 SK텔레콤 부회장이었던 손 명예회장이 그룹 회장을, 최태원 회장이 SK(주) 회장을 맡는 투톱체제를 5년 동안 유지했다.

손 명예회장은 5년 동안 최태원 회장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 최 회장은 손 명예회장을 스승처럼 생각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손 명예회장은 당시 만 39세였던 최 회장이 그룹에서 확고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뿐 아니라 손 명예회장은 최종현 전 회장의 부탁을 받아 최태원 회장이 고려대에 입학했을 때부터 대학원을 거쳐 입사할 때까지 모든 뒷바라지를 했다.

지난 2003년 SK사태로 최 회장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자 손 명예회장은 “내가 갔어야 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당시 최 회장은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태 등으로 배임과 증권거래법, 외부감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조용한 후퇴

SK사태가 최태원 회장과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손 명예회장은 임원들에게 “줄을 서고 싶거든 차라리 최 회장에게 가서 서라”고 말해 두 사람 간의 신뢰를 강조했다. 당시 그는 “최 회장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최종현 회장)의 아들이고, 내 생명과도 같은 SK를 이끌고 가야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손 명예회장은 1941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1965년 입사 후 최종현 전 회장을 도와 지금의 SK그룹을 만드는 발판을 마련했다. 1980년대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와 1990년대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를 진두지휘했다.

손 명예회장은 2003년 2월 28대 전경련 회장에 취임해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최고의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SK글로벌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전경련 회장과 SK그룹 회장에서 모두 물러났다. 그 뒤 별다른 외부활동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2009년 SK텔레콤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한국 펜싱의 영원한 조력자

지난 20일 고양체육관에서는 펜싱 남자 에페 종목 경기가 열렸다. 이날 체육관을 찾은 관중은 5천 명이 넘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 입구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할 정도였다.

이날 에페 종목에 출전한 정진선(30·화성시청) 선수는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관중석을 가득채운 시민들의 응원 덕이 컸다. 펜싱 관계자들은 이런 응원열기를 보고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펜싱은 이제 더 이상 비인기종목이 아니다. 개인전이 끝난 22일까지 펜싱경기장에는 관중 1만 5천여 명이 다녀갔다. 한국 선수들은 압도적인 기량으로 메달 잔치를 벌여 성원에 답했다. 펜싱은 이번 대회에서 금 8, 은 6, 동 3개 등 총 18개의 메달을 따내는 아시안게임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4년 전 광저우 대회 때는 금 7개, 은 2개, 동 5개를 땄었다.

한국은 펜싱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펜싱선수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운동을 해야 했다. 그랬던 펜싱이 국제무대에서 화려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펜싱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펜싱인들은 한국 펜싱의 성공원인을 손길승 대한펜싱협회장과 SK텔레콤에 돌린다. 손길승 협회장은 현재 SK텔레콤 명예회장이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는 그는 1965년 최초의 대졸 신입사원으로 SK그룹의 전신인 선경직물에 입사해 1998년 전문경영인으로 처음 5대 그룹 회장에 올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그의 평생동지로 불렸다. 그는 2009년 1월 협회장에 취임하면서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SK텔레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임 첫 해 12억 원을 지원한 뒤 매년 평균 20억 원을 투자해 왔다. 부임 전 연간 최대 5억 원 정도였던 투자금의 4배였다.

또 SK텔레콤은 한국 펜싱 저변 확대를 위해 2010년과 2011년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유치했다. 이번 아시안게임 준비과정에서도 농구장인 고양실내체육관을 아시안게임의 위상에 걸맞는 펜싱 경기장으로 개조하면서 2억여 원을 투자했다. 열혈응원단을 모집해 응원을 주도하며 분위기도 끌어올렸다. 또 펜싱 유망주들을 초청해 꿈을 품게 했다.

손길승 협회장은 인천아시안게임 대회 기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이른 아침부터 경기장에 나와 모든 경기를 챙겨보고 선수단과 관계자들을 격려해 왔다. 기업인이지만 진정으로 펜싱을 사랑하는 스포츠인의 모습이었다.

각종 국제대회 참여 지원, 성과 향상

손길승 협회장은 취임 이후 한국 펜싱 발전을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다. ‘비전 2020’이다. 지난 2010년 열린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준비한 이 계획은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한 개, 2016 리우 올림픽 금메달 두 개, 2020 도쿄 올림픽 세계랭킹 1위’ 등을 목표로 삼았다.

이후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세계대회 출전 횟수를 늘려 펜싱 선진국의 기술과 경험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국제대회에 자주 참가하면 랭킹 상승과 함께 경험을 쌓을 수 있다. 펜싱은 랭킹에 따라 시드배정을 한다. 국제 대회 출전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포인트가 높아진다. 이는 곧 시드 획득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예선을 거르면서 체력을 아끼고, 랭킹이 높은 선수를 피할 수 있어 호성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밖에 선수들은 루마니아, 헝가리 등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유럽선수권대회에 각 종목 두 명씩 지도자를 보내 전력분석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선수들의 기량과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하기 시작했다. 1년에 열두 차례씩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국가대표 선수들의 국제펜싱연맹(FIE) 랭킹이 급상승했다. 남자 사브르의 구본길(25)과 김정환(31·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각각 국제펜싱연맹 랭킹이 1, 2위에 올랐다.

현재 남자 플뢰레를 제외한 전 종목에서 세계 10위권 안에 한국 선수들이 진입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금 2개, 은 1개, 동 3개를 따내는 등 목표를 뛰어 넘는 훌륭한 성적을 냈다.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자신감은 강해졌다. 결과는 더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실력 향상 가시화

펜싱환경이 좋아지자 펜싱 종목별·선수별 실력도 늘었다. 그동안 한국이 가장 강세를 보였던 세부 종목은 남현희가 이끄는 여자 플뢰레와 정진선을 필두로 한 남자 에뻬였다.

그러나 남녀 사브르도 2012런던올림픽 여자 개인전(김지연)과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계기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네 종목 모두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했다. 펜싱 종목 전체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특히 여자 사브르의 약진은 눈부시다. 사브르는 아시안게임(2002년)과 올림픽(2004년)에 뒤늦게 도입돼 초창기 선수들이 꺼려했던 종목이다. 우리나라에선 1990년대 들어 처음으로 여자 중·고교 선수들이 나왔고, 플뢰레나 에뻬에서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이 전향하는 종목으로 여겼을 정도다.

그러나 남들보다 두 발은 늦게 출발했던 한국 여자 사브르가 어느새 세계 정상권의 실력을 갖추고 아시아 정상이던 중국까지 꺾었다. 충분히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단체전에서의 성과가 눈에 띈다. 4년 전에는 단체전 금메달 6개 가운데 2개만 가져왔다. 이번에는 단체전에서도 개인전과 똑같은 수의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에이스 이외의 다른 선수들까지 폭넓게 성장한 덕분이다. 그만큼 저변이 확대됐다. 손길승 협회장과 SK텔레콤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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