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유, 수입 가능해졌다
미국 원유, 수입 가능해졌다
  • 정경화 기자
  • 승인 201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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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업계의 눈길이 전남 여수에 몰렸다. 11일 새벽 여수항에 도착 예정인 원유수송선 ‘BW잠베시’ 때문이다. 미국 텍사스에서 생산된 콘덴세이트(초경질원유) 40만 배럴을 실은 배다. 수치로만 보면 GS칼텍스의 하루 정제능력(77만5000배럴)의 절반을 간신히 넘는 물량이다. 하지만 산업계는 물론 해외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41년 만에 미국에서 수입된 첫 비정제유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첫 수입이 미국의 석유 수급 여건이 달라지면서 생긴 결과로 보고 있다. 1973년 아랍 국가들의 이른바 ‘대(對)미국 석유 금수’ 조치 이후 미국 정부는 원유에 대한 수출을 엄격히 제한해왔다.

하지만 ‘셰일가스 혁명’으로 미국 내에서 석유가 남아돌게 되면서 사정이 변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 7월 휘발유·경유 등 정제유와 마찬가지로 콘덴세이트에 대해서도 ‘제품’이라는 이유로 수출을 허가했다. GS칼텍스가 수입한 물량 역시 이 중 일부다. 이상훈 GS칼텍스 홍보팀장은 “계약조건 때문에 가격을 말할 수는 없지만 운송비 등을 모두 감안해도 중동산보다 싸다”고 말했다.

석유 전문가들은 미국산 콘덴세이트 수입의 길이 열리면 석유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과도한 중동 의존’으로 인한 리스크도 다소 해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2년 ‘이란발 리스크’에 이어 올해도 상반기에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득세로 정세가 불안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인 기자를 살해하는 등 잔인함을 과시하고 있는 IS는 이라크 지역 석유 수급의 최대 불안요소다.

SK이노베이션은 아예 아프리카로 고개를 돌렸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상반기 리비아·콩고 등에서 1100만 배럴을 수입했다. 아프리카산 수입 비중은 올해 7%로 예년(2%)의 세 배를 넘는다. 이는 전체 도입량의 7~8%를 차지하는 이란 리스크에 대한 대비책으로 풀이된다. SK는 원유의 중동 의존도가 72.1%로 최하위 수준이지만 이란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지난해 말 미·이란 핵협상이 타결됐지만 언제 양국이 다시 갈등기조에 들어설지 모르는 일이다. 현대오일뱅크도 수입량의 7~8%가 이란산이다. 이란산은 사우디아라비아산에 비해 배럴당 2~3달러 저렴하다.

한편 그동안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수입이 부진했던 북해산 브렌트유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원유에 부과되던 관세 3%가 사라졌고 해운 운임이 하락한 덕분이다. 에쓰오일은 상반기 도입량의 2.8%인 300만 배럴을 유럽산으로 들여왔다. 이 회사는 전체 수입량의 88.6%를 모기업인 사우디 아람코에서 20년 장기 계약으로 들여오고 있어 느긋한 편이지만 수익성 강화를 위해 FTA 제도를 활용했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동남아·남미 등에서 원유를 도입, 비용 100억원을 절감했다. 올 상반기엔 업계에서 유일하게 정유 부문 흑자를 냈다.

석유협회 박진호 팀장은 “수입처 다변화는 안정적으로 싼 원유를 수입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앞으로도 정유사들의 도입가·재료비를 낮추기 위해 새로운 수입처를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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