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왜 '한국'을 선택했나
프란치스코 교황, 왜 '한국'을 선택했나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4.0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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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77)이 오는 14일 닷새간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함에 따라 온 세계의 시선이 따라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교황 중 종교와 민족, 지역을 초월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즉위 후 이탈리아를 제외하고는 중동순방에 이은 두 번째 해외 방문이다. 더 특별한 것은 아시아지역 첫 발길이자 한 국가를 단독으로 찾는 것도 처음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교황이 어떤 메시지를 전할 것이며, 그의 말과 행보가 국내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전에 없었던 교황

세계인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 한국을 찾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그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포춘>은 '2013년 올해의 인물'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정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다. 어떻게 그는 모든 것을 ‘초월’한 존경을 받게 됐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3월 선출과 동시에 각종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1282년 만의 첫 비유럽권 교황, 미주대륙 출신의 최초의 교황, 첫 예수회 출신 교황으로 기록됐다. 또 빈자를 위한 성인(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을 교황명으로 선택한 최초의 교황이 됐다. 그에게는 이처럼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실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를 보면 언론들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다. 심지어 '완벽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비판도 받았다. 교황은 그래도 그의 길을 계속 가고 있다.

전임 교황들에게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모습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무슬림 여성의 발을 씻기고 입맞추거나 교황 전용 차량인 벤츠의 뒷좌석에 타는 대신 준중형인 포드 포커스 중고를 직접 운전한다.

언제나 ‘가난한 자의 벗’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 이민 가정의 다섯 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교황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배를 타고 죽을 고비를 몇 번씩 넘기며 여섯 달 만에 아르헨티나에 도착해 철도 노동자로 일했다. 교황이 유럽의 반이민 정서를 강하게 비판하고, 시리아 난민 문제에 유독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또 사제가 되기 전 청소부, 술집 문지기, 화학자, 문학 교사 등 소시민의 삶을 직접 경험했다. 사제가 된 뒤에도 교황은 ‘빈자들의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 미혼모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동료 사제들을 대놓고 비판했다.

때문에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전임 교황들과 달리 '노동자 계층'의 교황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고스란히 행보로 이어졌다.

최근의 마르크스주의자 논란도 눈길을 끈다. 교황은 자본주의의 탐욕을 거세게 비판했다. 특히 교황은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아래로 분배가 이뤄진다는 ‘낙수 효과’에 대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경제의 권력이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일각으로부터 “교황의 말은 완전한 마르크스주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에 교황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보다 명확히 말하자면, 모든 형태의 부정의에 도전하고, 그러러니 하며 수동적으로 용납되고 있는 배제의 경제 체제, 광고 전단의 문화 및 죽음의 문화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우 소박한 성직자로 늘 많은 사람들과 가까이 어울렸다"는 주변의 평가가 줄을 잇는 교황은, 대주교로 부에노스아이레스교구를 이끄는 자리에 올라서도 이동할 때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고 손수 음식을 만들어 항상 불우한 이웃과 함께했다.

그는 방한기간 중에도 소박한 숙소에 머물며 바티칸에서 쓰던 차를 가져오는 않겠다고 밝혔다. 교황은 방탄차가 아닌 가장, 작은 한국 소형차를 선택했다.

파격적 행보...‘난민과 함께’

지난해 3월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시국이 위치한 이탈리아를 제외하고 그동안 단 두 차례 외국을 방문했다.

즉위 후 첫 외국 방문지는 작년 7월 가톨릭 세계청년대회가 열린 브라질이었다. 이어 올해 5월에는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중동을 순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주 외국을 찾지는 않았지만, 방문지 선정과 방문 행보에서 이전 교황과 달리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5월 사흘 동안 중동을 방문한 교황은 요르단 방문을 마친 뒤 헬기를 이용해 팔레스타인 영토인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전임 교황들과 달리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거치지 않고 서안지구에 바로 진입한 것이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이 독립국임을 교황이 인정한 것이란 해석이 제기됐다.

교황의 파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베들레헴에서 공개 미사 장소인 구유 광장으로 이동하던 길에서는 갑자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리 장벽 앞에서 차량을 멈춰 세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정에 없이 차에서 내려 5분간 장벽 앞에서 평화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 분리 장벽은 이스라엘에 국가 안보를 상징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점령의 산물'로 인식되는 곳이다.

교황은 방문지에서는 지위 있는 사람보다는 낮은 사람을 찾았다. 고위 성직자나 정치 지도자, 유명인과 식사하는 대신 현지의 가난한 기독교인 가족과 점심을 함께했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의 만찬 초대를 사양한 대신 시리아 난민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해 7월 브라질 방문 때는 차 창문을 내려 사람들이 내민 손을 잡아주는가 하면, 한 신도의 아기에게 축복의 의미로 입맞춤을 해주기도 했다.

교황은 또 브라질 최대 마약 소굴로 악명이 높은 리우데자네이루시 북부 바르깅야 빈민촌을 찾는 모습을 보여 '거리로 나가 신앙을 전파하라'는 그의 철학을 실천했다.

교황은 두 번의 외국 방문에서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에도 방탄차를 타지 않으면서 대중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에 남길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은 전임 교황과도 차별화된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재임 8년 동안 아시아를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 번째 외국 방문길에 한국을 찾는다.

교황의 이번 방한 성격은 사목 방문, 공식 목적은 제6회 아시아 카톨릭청년 대회 참석이다. 외형적으로는 종교적 목적의 방한이지만 사목 방문은 세계 가톨릭의 수장으로서 당연하고도 어쩔 수 없는 명분이다. 그동안 교황이 걸어온 길과 그가 세상에 던진 메시지를 살펴보면 단순한 종교적 차원의 방문만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가난한 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를 외쳐온 교황은 단지 한국이라는 특정 국가에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국가 사람들 중에서도 불안한 미래에 떨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기 위한 방문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또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가 동북아 국제 질서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수차례 밝혔다.

교황은 방한 마지막 날인 18일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다. 그는 미사 강론에서 발표할 평화 메시지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위한 남북 당사자와 국제사회의 노력을 강력히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지난 6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식지 서울 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평화와 화해를 열망하는 상징적 나라이며, 교황의 방한은 평화를 향한 열의를 강하게 북돋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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