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값 인상 갈등, 업계간 그저 ‘모르쇠’ 일관
레미콘값 인상 갈등, 업계간 그저 ‘모르쇠’ 일관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4.07.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위가 순천·광양지역 레미콘가격 불법 인상행위를 적발했다. 레미콘 공급중단은 고비를 넘겼지만 가격 인상을 두고 서로 간의 이해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회원사들에게 레미콘을 일정 가격에 판매하도록 강요한 전남 순천·광양 지역 레미콘협의회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8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8일 밝혔다.

순천·광양 지역 레미콘협의회 회원 5개 사업자들은 작년 2월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자신들과 거래하는 건설사들에게 레미콘 판매단가를 가격 단가표의 75%에서 80∼90% 선으로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레미콘협의회는 작년 4월부터 민수 레미콘 판매단가를 각 회원사가 갖고 있는 단가표의 80% 금액으로 팔 것을 결정하고 구성사업자들 문서로 이를 준수할 것을 통지했다. 이는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가격 결정 행위에 해당한다. 공정위는 순천, 광양 지역 레미콘 협의회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8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업자단체가 회원사들에게 상품의 가격을 결정해주는 행위를 규제함으로써 회원사들이 자유롭게 가격 결정을 하는 시장질서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의 이 결정은 지난 4일 광주지방공정거래사무소에서 개최한 지방순회심판에서 내려졌다.

레미콘업계 vs 건설업계

3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레미콘사들은 최근 건설업계 구매담당자 모임인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에 레미콘 공급 가격을 ㎥당 6400원(9.6%) 인상해 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 중 2.2%는 시멘트 가격 인상분을 반영한 것이고 7.4%는 골재값, 인건비, 운송비 등 나머지 원가 상승분을 반영한 것이다.

앞서 레미콘업계는 시멘트 공급 가격을 4월 15일 공급분부터 5.4% 인상하기로 시멘트업계와 합의했다. 건설업계는 레미콘값 인상 필요성에는 일부 공감하지만 시멘트값 인상분이 반영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남석 건자회 부회장은 "유연탄 가격이 떨어지고 원화 가치도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시멘트값 인상 요구를 레미콘업계가 받아들인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시멘트값 인상 철회가 우선돼야 레미콘값 인상을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시멘트ㆍ레미콘ㆍ건설 3자 간 협상을 통해 가격을 합의했던 2012년 이후 시멘트사의 유연탄 구매단가는 15~20% 정도 하락했다.

하지만 시멘트업계는 물가상승률, 전기요금 등 나머지 상승 요인이 유연탄 가격 하락분을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렸다고 주장한다. 2012~2013년 2년 동안 전기요금은 세 차례에 걸쳐 총 18.2% 올랐다. 운송비 역시 지난해 철도운임이 8% 올랐고 해상운임도 2012년 이후 매년 4%씩 올랐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올해 레미콘업계와 시멘트 가격 협상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건설업계도 참석하도록 요청했으나 나서지 않다가 이제 와서 수용 불가 주장만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간에 낀 레미콘업계는 “시멘트값 인상분을 제외하고서라도 가격을 올리고 싶지만 이미 올려버린 시멘트값을 일방적으로 낮출 수도 없다”라고 토로했다.

상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레미콘업계에서는 포스코건설, 쌍용건설, 금호건설 공사현장 일부에 지난 1일 레미콘 공급을 중단했다. 이에 3개 건설사가 개선을 약속하자 레미콘 업계가 공급을 재개해 한고비를 넘겼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금호산업(002990)(10,450원 200 +1.95%)과 쌍용건설, 포스코건설이 공문을 통해 가격 후려치기, 장기어음·부실채권 발행 등을 시정하기로 하자, 레미콘업계는 공급을 재개하고 앞으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동안 레미콘 업계는 건설업계에 만연한 레미콘 가격 후려치기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특히 지난 4월부터 레미콘 원료인 시멘트 가격이 인상됐음에도 레미콘 공급가격은 그대로 유지돼 레미콘 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아울러 레미콘 업계는 시멘트, 골재값, 수송비, 운송비 등의 인상을 이유로 들며 건설업계에 수도권 레미콘 가격을 9% 인상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레미콘 표준가격이 100원이라면 업계 경쟁 심화로 실제 공급가격은 83~87원 불과해 90원대에서 공급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계는 건설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레미콘 가격만 인상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전체 건설비용이 인상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부 비용만 인상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제살깎아먹기식이 되고 말 것”이라며 레미콘 업계의 가격 인상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그에 관해 레미콘업체 관계자는 “레미콘 가격이 전체 건축 비에 10%도 되지 않는다”며 “전체 건축비 인상이 필요하다는 건설업계의 설명은 궁색한 변명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레미콘 업계는 다시 단체 행동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하지만 건설업계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어 레미콘 공급중단 사태는 재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시멘트업계도 가시방석

레미콘 공급 가격 인상 여부를 두고 레미콘업계와 건설업계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시멘트업계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레미콘사와 시멘트사가 협의한 가격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시멘트 가격 협상 무효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지금까지는 레미콘사들이 시멘트 값을 인상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낮출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협상이 장기화로 치닫자 일부 업체서 시멘트 값 인상분을 제외하고 협상에 나서자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레미콘 가격 인상을 놓고 시멘트 값이 뜨거운 감자로 부각한 셈이다. .

시멘트업계는 불안감에 편치 않은 모습이다. 시멘트업계는 유연탄 값이 하락했지만 물가상승률과 전기요금 등 나머지 요인들이 크게 올라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2012년도 물가상승률은 2.2% 이고, 2013년은 1.3%였다. 이 기간 전기요금은 18.2% 올랐다. 철도운송비 역시 지난해 8% 뛰었다.

레미콘가격 인상을 둘러싸고 반복되는 건설사와 시멘트업체, 레미콘회사간의 갈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건설 산업의 뿌리 깊은 상하관계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멘트와 레미콘 가격 자체가 수익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지만, 회사존립과 직결되는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에는 건설업체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레미콘 값을 9%올리면 건설사는 아파트 30평 한 채를 짓는데 60만원 가량 더 소요될 뿐"이라며 "장기간에 걸친 원가상승 요인이 있지만 이를 적시에 적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각자 입장만 ‘되풀이’

레미콘 가격 인상을 둘러싼 갈등이 한 고비는 넘겼지만, 두 업계간 입장 차이는 여전히 크다.

반년 넘게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오고 있는 두 업계가 유일하게 내는 한목소리는 ‘정부가 나서서 합리적인 가격 형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2년 전 공급중단 사태 때 정부가 중재에 나서면서 극적인 타결을 한 바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멘트업계는 레미콘업계와의 가격 협상 이후 목적을 달성했다는 이유로 뒤로 빼고 있는 실정" 이라며 "정부가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 공식적으로 삼자대면을 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미콘업계 관계자도 "건설업계는 레미콘 가격 인상 논의의 전제조건으로 시멘트 가격 인상 철회를 요구하고, 시멘트업계는 인상분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자리를 만들어 각 업계가 양보할 건 양보하고 받아들인 건 받아드릴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레미콘공급이 중단돼 건설현장이 차질을 빚고 국민적 피해로 이어진다면 정부가 당연히 개입하겠지만 아직 양측간 협상이 진행 중인 단계다”라며 “근본적으로는 계약단가를 둘러싼 사인간 협상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맞지 않기 때문에 산업통상부와 공동으로 사태를 예의주시하되 필요하면 적극 나서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업체들의 구체적인 가격 인상 논의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업계간 의견 조율이 초기단계라 정부가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도 ‘각자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라는 것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침체에 빠진 건설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각 업계로선 상대방 입장을 배려할 여유가 없다”고 털어놨다. 시멘트와 레미콘, 건설 측은 모두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지만 각자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중이다.

이렇듯 업계간 서로의 불만과 어려움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자기 주장만 펼친다면, 가격 인상을 둘러싼 잡음은 매년 계속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