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개한 최수부 광동제약 창업주는 누구?
최수부 광동제약 회장이 24일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광동제약과 그의 일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고인은 과거 TV 광고에서 '최씨고집'이라는 광고멘트로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최수부 회장은 대구 달성 출신으로 넉넉치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8남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갖은 일을 다했다. 이후 참외장사 등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제대 후 고려인삼 산업사에서 일을 하면서 어깨 너머로 배운 제약 관련 지식을 익힌 최 회장은 28세되던 지난 1963년 10월 장사 등을 통해 모은 돈 300만원을 가지고 오늘날의 광동제약을 있게 한 광동제약사를 열었다.
이후 창업한지 꼭 10년 되던 해인 지난 1973년 9월 한방의 과학화를 내걸고 광동제약이라는 이름으로 제약업계에 본격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의 ‘최씨 고집’과 집념이 담긴 ‘우황청심원’을 출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제약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최 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90년대 후반 ‘위기’를 겪은 후 본격적인 사업다각화를 꾀했다. 이때 탄생한 것이 바로 ‘비타500’이다. 이타500은 쓰러져 가던 광동제약을 다시 일으키며 대성공을 거뒀다.
이러자 광동제약은 2004년 60억원을 투자해 전문 생산시설 등을 만들기도 했다. 이후 광동제약은 ‘옥수수 수염차’ 등 음료 시장에서 잇따라 ‘히트제품’을 만들어내면서 '메이저 제약사' 반열에 올라섰다.
최근에는 전문의약품보다는 일반드링크음료 등 음료사업에 주력하면서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제약사가 전공인 전문의약품 개발보다는 음료시장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연장선에서 광동제약은 레몬녹차 신제품을 선보이더니 올 2월에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인 드롭탑을 런칭하기도 했다. 또한 캔 커피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미는 등 사업 다각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15일 삼다수 판매권을 가져오면서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를 통해 광동제약은 올 1분기 매출액이 전년동기보다 무려 33.3% 증가한 98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업계 7위권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전까지 10위권 밖에 있었던 광동제약이 수직상승한 것이다. 이 중심에 고 최수부 회장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고 최수부 회장은 이날 오후 강원도 모 골프장 라커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