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딸들의 전성시대 이면
재벌가 딸들의 전성시대 이면
  • 박종준 기자
  • 승인 2013.0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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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대상, 한진가 자녀들의 초고속 승진...서민 박탈감 커

“그런 거 보면 한 숨만 나오죠”

올해 중소기업 12년차로 과장급인 이지영(가명)씨는 요즘 뉴스를 보면 한 숨만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유명 사립대를 나와 중소기업에 몸 담은지 10년을 훌쩍 넘긴 것은 물론 능력도 인정받은 그녀이지만 ‘여성’, ‘워킹맘’ 등 여러 장벽에 가로막혀 진급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매년 승진 명단에 오르며 ‘초고속 승진’하는 재벌가 딸들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기 때문.

최근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해 기대에 부풀었던 이씨를 다시 한 번 낙담시키는 일들이 최근 대기업들에서 벌어졌다.

지난해 말, 일제히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한 대기업 승진 명단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2, 3세’들이 이름을 올렸다.

대한항공, 3세 나란히 승진

그 중 대한항공은 3세 모두 승진인사에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 대한항공 오너가 3남매가 모두 승진하며 집안잔치를 연출했다. 특히 조현아 부사장과 조현아 상무는 재벌가 딸로 최근 승승장구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4일 조현아·조원태 전무를 각각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53명의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임원 승진인사에는 최준철 항공우주사업본부 본부장 등 6명이 전무A로, 함명래 상무 등 5명이 전무로 각각 한 계단씩 뛰어올랐다.

특히 조현아, 조원태 부사장의 경우 지난 2009년 12월 전무로 기용된 이후 3년 만에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해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조양호 회장의 막내딸인 조현민 상무보를 포함 25명이 이번에 상무로 승진됐다.

조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무는 대한항공의 기내식기판 사업본부와 객실승무본부를 이끌며 경영 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장남 조원태 전무는 경영전략본부장으로 경영전반을 책임지고 있고, 막내딸인 조현민 상무는 통합커뮤니케이션을 맡아 광고 등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주요 계열사 여러 곳에 이사로 등재되어 활동하며 월급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장녀인 조현아 부사장과 조현민 상무는 최근 그룹 내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조양호 한진 회장의 막내딸인 조현민씨는 지난 2010년 12월,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팀장을 상무보(임원) 승진하면서 그룹 브랜드 및 제품 마케팅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조씨는 2007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지난해 2월 27일에는 대한항공의 계열사인 저가항공사 진에어의 전무까지 올랐다. 약 1년 8개월 만에 초고속 승진을 통해 전무 자리까지 오른 조씨다.

그 연장선에서 대한항공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 포석에 들어간 모양새다. 지난해까지 조현아 부사장과 조원태 부사장, 조현민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상무 등은 한진과 대한항공 주식을 장내 매수하는 등 꾸준히 지분을 늘려오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3세들의 경영참여가 본격화되는 것은 물론 이들을 통한 경영권 승계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들 3남매는 직접 매입과 함께 계열사를 통한 간접방식으로도 지분을 늘렸다.

3남매가 각각 33.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싸이버스카이는 지난해 11월 3일 4000주를 시작으로 12월 21일까지 22차례에 걸쳐 대한항공 주식을 장내 매수했다. 두 달여 만에 10만9000주, 지분율 0.15%의 주요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싸이버스카이는 기내 면세품 판매와 광고 판매를 전담하는 기업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조중훈(1세)-조양호(2세)-조현아·조원태·조현민로 경영승계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한진그룹의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고 지주회사나 다름없는 정석기업의 지분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대상그룹 임세령 자매도 스포트라이트

대상그룹 딸들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대상그룹은 지난해 12월 4일 임세령씨를 대상그룹 식품사업부문 크리에티브 티렉터로 발령을 냈다고 밝혔다. 세령씨의 직급은 상무로 지난 2010부터 대상그룹 내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을 담당하는 대상HS 대표를 맡아왔다.

세령씨의 동생인 상민씨는 지난 2009년 8월 대상 프로세서 이노베이션(PI)본부(차장급)에 입사해 2010년 전략기획팀을 거쳐 지난 10월 대상(주) 전략기획본부 부본부장(직급 부장)으로 기용됐다.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인 세령씨는 동생인 상민씨와 함께 지배구조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 발령은 주목받고 있다. 그 이유는 세령씨와 상민씨가 지분을 대거 보유한 대상홀딩스는 대상그룹의 핵심인 대상 등 7곳을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민씨는 대상홀딩스의 지분 38.36%를 가지고 있는 최대주주이고, 세령씨는 20.41%를 보유해 2대주주로 오너(회장)인 아버지 임창욱 회장이나 어머니 박현주 부회장을 앞서고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대상그룹 경영승계는 50% 이상 진행됐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대상그룹의 3세 승계는 하드웨어 구축 작업은 이미 끝나 이제는 소프트웨어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이 뒤따라야할 시점인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가 이부진, 이서현도 약진

여기에 올해 인사 대상자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만 최근 재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재벌가 딸’의 대표 주인공은 바로 삼성가 딸들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기획 부사장이 그 주인공.

이번에 오빠 이재용 부회장에게 ‘삼성 후계자’를 양보하긴 했지만 주목을 받아왔다. 이들은 똑같이 지난해 3월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처음으로 ‘주목해야 할 아시아 여성 기업인 15인’을 선정되기도 했다.

동생인 이서현 제일기획·제일모직 부사장은 2010년 인사 당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한 뒤 2005년 임원으로 승진한 후 2010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꼭 8년만이다.

이부진 사장은 지난 2001년 기획팀 부장으로 신라호텔에 입사한 이후 2010년 연말인사를 통해 전무에서 바로 사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이는 오빠 이재용 부회장보다 빠른 속도였다. 이 사장은 지난 2011년 9월 인천공항 신라면세점에 루이비통 입점을 성사시키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 연장선에서 아버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해 9월 홍콩을 방문했을 때 이부진 사장이 동행하면서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이 사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을 정도다.

 이번에 삼성가(家) 두 딸이 예상됐던 승진명단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삼성가 후계구도는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에게로 굳어진 형국이다.

재벌가 딸들의 골목상권 침투 논란

또한 지난해 재벌의 골목상권 침투 논란을 빚으면서 재벌가 딸들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재벌가 딸들의 빵집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이 사장이 지난해 4월 아띠제 사업권을 대한제분에 매각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 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 불리스 대표도 베이커리 브랜드인 ‘포숑’을 매일유업과 영유통에 지분 매각했다.

또 다른 ‘딸들의 전성시대’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신세계 정유경 부사장의 베이커리 사업도 ‘일감몰아주기’ 논란으로 사정당국의 조사까지 받고 있다.

정 부사장은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딸로 지난 1996년 신세계 계열사인 조선호텔 마케팅 담당 상무보로 입사해 지난 2009년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1977년생인 현정은 현대그룹의 회장의 딸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도 눈에 띈다. 그는 2005년 설립 당시 평사원으로 입사했지만 3년 만에 전무로 승진했다. 여동생도 지난해 8월 같은 회사에 대리로 입사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재벌 총수들이 회사에 입사하거나 창업하던 시절의 평균 나이는 28.63세다. 반면 2, 3세들은 27.2세로 그룹 총수 보다 입사 나이가 1.4살이나 어리고 임원, 등기이사로 승진까지도 더욱 빨랐다.

이들은 하나같이 어린 나이에 입사해서 총수 보다 더욱 빠른 시일 내 임원과 등기이사가 된다. 그룹내 경영 수업을 받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이들은 입사 직후 또는 일정기간 근무 후 유학을 가며 이 기간은 근무 경력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게 보통이다. 이는 일반 사원들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재벌가 딸들도 일부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여기에 우리 대기업들의 여성 홀대가 두드러진다. 이미 유럽 등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임원 등 고위직에 진출해 있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세계적인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그만큼 여성 인력 육성이나 투자에 인색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따르면 작년 여성 경제활동 인구가 48%를 넘은 상황에서 직원 1000명 이상 국내 대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4.7%에 그쳤다. 작년 대졸 출신 여성이 27%를 차지한 이부진 사장의 삼성그룹 삼성전자의 여성 임원 비율이 1.5%에 지나지 않을 정도다.

그럼 이들이 초고속 승진의 종착지인 경영권을 손에 거머쥘 수 있을까? 이전까지 재벌 승계 전통을 보면 다소 부정적이다. 특히 남자 형제가 있는 재벌가 딸들은 가능성이 더 적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9월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20대 재벌기업들의 2세 승계율을 조사에서 삼성, 현대차, LG 등은 아들보다 딸들의 수가 많았으나 승계된 자산 규모는 아들 쪽이 더 많았다. 이는 재계에 전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장자상속’ 원칙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경우 정성이, 정명이, 정윤이 씨 3명의 딸들은 5% 정도의 재산상속을 받는데 그쳤다. 정 부회장에게 3조6000억원의 상속됐으나 장녀 딸들은 1970억원에 머무른 것.

정몽구 현대차 그룹의 맏딸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은 지난 2005년 회사 설립 당시 전무로 입사해 현대 폭넓은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물이다. 이는 또한 재벌가 딸들은 ‘초고속 승진’ 등을 통해 인사 등에서는 어느 정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실질적인 지분 상속을 통한 경영권 승계에서는 아들 형제보다 덜 따라주고 있다는 반증이다. 딸들의 초고속 승진이 궁극적으로 ‘경영권으로의 골인’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것.

특히 현재 우리 사회에서 경제민주화 아젠다가 공감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초고속 승진이나 경영권 승계에도 앞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밑바탕에는 서민들의 심리적 박탈감이 자리한다.

지난해 한 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7∼8명은 최근 대기업 인사에서 두드러진 창업주 2∼3세들의 초고속 승진에 대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인크루트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재벌가 자제의 초고속 승진에 대한 반응을 조사에서 73.4%가 ‘비정상적인 현상이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답했다.

문제로 삼는 이유는 ‘일반 사원들에게 박탈·위화감을 준다’가 48.4%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업들의 족벌경영 체제 고착화’(34.9%),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13.7%) 등으로 나타나 아직까지 이들에 대한 사회 인식이 다소 부정적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경영전면에 본격적으로 부상하면서 부쩍 늘고 있는 이들 관련 뉴스는 자연스레 서민들에게는 다른 세상, 남의 이야기 밖에 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역으로 재벌들이 최근 그간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시키기 위해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을 꾀하고 이들 자녀들도 자연스레 사회와의 소통을 넓혀가고 있는 상황에서 숙제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이에 따라 ‘재벌가 딸들의 전성시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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