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재계 '빅5' 신년사서 찾은 '평행이론'
[기자의 눈]재계 '빅5' 신년사서 찾은 '평행이론'
  • 박종준 기자
  • 승인 2013.0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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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재점화된 위기론 2013년 ‘선도경영’으로 활활

“삼성의 앞길도 순탄치 않으며 험난하고 버거운 싸움이 계속될 것”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현실진단이자 올해 전망이다. 지난해 사상 최고의 실적을 내며 명실상부 글로벌 기업의 입지를 다진 삼성 수장의 이 말은 ‘현실직시’ 혹은 ‘엄살’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아직까지 유럽발 금융위기가 엄존해 있고, 내수 경기 짐체가 지속되고 있는 대내외 현실 인식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지난해 ‘가장 잘 나갔던’ 삼성이기에 ‘엄살’이라는 주변의 눈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

이러한 이 회장의 현실인식은 다른 국내 대기업 수장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바로 언제부터인가 재계에서 빈번하게 회자되고 있는 ‘위기론’이다. 그 뿌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수출이 호황을 이뤘던 1980년대 후반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심심치 않게 신년사 등을 통해 재생산되거나 반복돼 왔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IMF와 최근 들어 미국 리먼브라더스 사태, 유럽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그 빈도가 잦아졌다. 지난해 재계 수장들의 신년사에 공통적으로 이 ‘위기론’이 다시 등장하더니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수준을 넘어 강조되고 있다. 그 전제는 역시 위에서 열거한 이유들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내 기업들의 수출이나 계열사수는 1980년대 수준을 뛰어넘어 현재 정점에 다다르고 있는 상황. 재계 입장에서 보면, 이제는 질적 성장과 최근 '경제민주화'라는 정치사회적 아젠다 등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사회로 진입하면서 대기업들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 2012년 신년사에서 “앞으로 예상하지 못한 변화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밝히면서 정신무장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존의 틀을 깨고 오직 새로운 것만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동종 경쟁에서 이종 경쟁으로, 기업 간 경쟁에서 기업군 간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경쟁력”이라면서 화두로 ‘창조’를 꼽기도 했다.

이런 이 회장의 선견지명이 통했는지 삼성은 지난해 스마트폰(태블릿 PC) 등 모바일 시장에서 노키아 등 그동안 세계 모바일 시장을 주름잡았던 공룡들을 잇따라 제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애플을 상대로 치른 특허분쟁과 삼성가(家) 분쟁 등으로 골머리를 치르기도 했지만 이를 상쇄할만한 선전이었다. 오히려 이번 일은 세계 최고의 기업 애플과 대등한 위치까지 오른 삼성의 네임벨류를 확인시켜준 사례였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 연장선서 이 회장은 2013년 신년사를 통해 “성공은 잊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재무장을 주문했다. 이는 지난해 취임 기념식에서 이 회장이 말한 “아직 갈 길이 멀다”와 일맥상통한다. 그 배경에는 “세계 경제는 올해에도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론 반영이 자리한다. 그런 현실 인식을 통해 이 회장은 “삼성의 앞길도 순탄치 않으며 험난하고 버거운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이 회장은 “삼성의 앞날은 1등 제품과 서비스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면서 “더 멀리 보면서 변화의 흐름을 앞서 읽고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신사업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래를 위한 확실한 투자는 인재 육성이며 우수한 인재를 뽑고 각자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계 수장들의 최근 래퍼토리 중 하나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어김없이 역설했다.

이 회장은 “협력회사의 경쟁력을 키워 성장을 지원하고 지식과 노하우를 중소기업들과 나눠 국가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어려운 이웃 그늘진 곳의 이웃들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사회공헌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각계와 소통하고 많이 협력해 나갈 때 삼성이 믿음 주는 기업, 사랑받는 기업이 될 것”이라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미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특히 고 정주영 회장 때부터 현대가의 전통처럼 굳어진 ‘품질 경영’이 눈에 띈다.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2013년 그룹 경영방침을 ‘품질을 통한 브랜드 혁신’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정 회장의 ‘품질 경영’은 지난해 신년사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정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품질경영’과 관련 “글로벌 일류기업 도약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소재에서 완성차까지 철저한 품질관리를 통해 고객에게 만족과 감동을 주는 품질 고급화에 더욱 주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 정 회장은 “그동안 품질은 고객 최우선의 중심에 자리해 왔다”며 “앞으로도 최고의 품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모든 접점에서 고객에게 만족과 감동을 제공함으로써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대차가 세계 시장에서 저가, 물량공세 수준에서 벗어나 이제는 고품질 브랜드로 승부해야한다는 정 회장의 생각이 깔린 것이다.

특히 정 회장은 한 해 목표치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주기로 유명하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정 회장은 “세계 시장에서 70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ㆍ판매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목표 대로 현대차는 북미, 중국 시장 등에서 고성장을 지속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난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불거진 연비 과장 사태라는 직격탄을 맞기도 했지만 FTA 체결 이후 현대차는 세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성공을 발판으로 올해 자동차 생산·판매 목표를 741만대로 상향조정했다. 지난해보다 40여만대나 높게 잡은 것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을 주는 혁신적 품질경영 추진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와 고용 확대 ▲부문간 의사소통 및 협력으로 741만대 판매목표 달성 ▲국가 경제와 사회발전에 공헌하는 모범적인 기업 역할 등을 주요 추진 과제로 설정했다.

정 회장의 신년사에서도 ‘위기론’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정 회장 “2013년은 유럽재정 위기와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국내외 시장환경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하고 “올해 질적인 성장을 통해 내실을 더욱 강화하고 미래를 위한 경쟁력 확보에 집중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의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고삐를 늦춰서는 안된다는 것.

또한 정 회장은 국민 행복과 국가 발전을 위해 ‘모범적인 기업’으로서의 역할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빠트리지 않았다. 정 회장은 “어려운 때일수록 소외된 계층을 보살피며 협력업체와 동반성장에도 적극 앞장서서 국민의 행복과 국가경제 발전에 공헌하는 모범적인 기업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 회장은 “2013년 새해는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통해 우리의 꿈을 성취하는 희망찬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새로운 각오로 힘차게 시작하자”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신년사의 특징은 ‘차별화’이다. 구 회장의 신년사도 다른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변화, 혁신 등이 주요 골자이지만 여기에 ‘고객가치’를 강조한 부분이 눈에 띠는 것. 지난해 구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남다른 고객가치를 만들기 위해선 구체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경쟁사들이 한다고 무조건 따라 해서는 차별화된 가치를 영원히 만들 수 없으며 지난해 3D TV와 LTE에서 보여준 것처럼 남보다 앞서 우리의 방향을 정하고, 한발 먼저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 회장의 ‘고객가치’는 올해 ‘시장선도’로 재탄생했다.

구 회장이 2013년 신년사를 통해 “세계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시장선도 상품’, 한발 앞선 기술과 남다른 생각으로 고객의 만족을 넘어 감탄을 자아내는 상품을 반드시 만들어 내야 한다. 고객의 상상 속에 머물러 있거나 아직 인지하지 못한 것까지도 끈기 있게 찾아내야 한다. 상품의 완성도에 있어서도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수준이라 생각하고 멈춰서는 안되고,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과 혼신을 다해 완벽한 품질과 세계 최고의 성능을 구현해야 한다. 고객의 마음마저 사로잡는 창의적인 마케팅은 물론 상품의 적기 출시부터 고객의 사용에 이르는 모든 활동에 한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계 전반에 깔려있는 ‘위기론’의 현실인식은 구 회장에게도 마찬가지. 그는 “더욱 예측하기 힘든 앞으로의 경영환경에서 이제 일등기업이 아니면 성장이나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 냉엄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SK 최태원 회장의 경우는 이들 수장들과 또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현재 재판(1심 재판 1월 예정)이 진행 중이고, 지난해 말 전격적으로 ‘그룹사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등 상황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아예 신년사나 시무식을 갖지 않았다. 이는 SK그룹 59년 만의 일이다. SK는 지난해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발표하며 전문 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꾀했다.

그런 까닭에 올해 SK는 수펙스협의회 김창근 부회장과 최 회장이 각각 신년사를 발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최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주회사를 새롭게 변모시키고 포토폴리오 고도화에 힘쓰겠다”며 “그룹 내 회사들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데 서포터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의 ‘위기’라는 현실인식도 다른 수장들과 비슷했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올해에는 2% 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돼 생존의 문제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최 회장은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사회에 나서기 전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며, 짐이 된 것도 사실”이라며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핵심방법은 사회적 기업이며, 사회적 기업이 영리기업처럼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데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거화취실’을 좌우명으로 삼는 오너답게 내실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이를 두고 다소 보수적인 경영스타일이라는 지적도 하지만 그의 후계자인 신동빈 회장이 최근 각종 M&A에서 수완을 발휘하며 성공적인 경영승계로 롯데의 보수적 이미지를 차츰 바꿔놓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올해도 세계경제가 어렵다는 말만 듣고 주저하기 보다는 위기 속에 찾아오는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한 걸음 한 걸음씩 전진해 달라”고 당부하며 위기 극복론을 설파했다.
특히 신 회장은 ‘내실경영’이라는 경영철학으로 유명하다. 그의 경영 좌우명인 ‘거화취실(去華就實, 겉치레를 삼가고 실리를 추구한다)’이라는 단어는 비공식적인 롯데의 슬로건으로 인식돼 왔다. 작년 신년사에서도 이런 신 회장의 자기색깔을 엿볼 수 있었다.

신 회장은 “불확실한 상황일수록 경영 효율을 높여 핵심사업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튼튼하게 구축된 핵심역량을 바탕으로 이 시기를 지혜롭게 이겨낸다면 새로운 기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 이 대목에서 그의 지론인 내실경영이 그대로 녹아있다.

더 나아가 신 회장은 ‘위기’를 넘을 방안 역시 자신의 ‘내실경영’에서 찾은 듯 하다. 올해 신 회장 신년사의 핵심도 ‘내실경영’으로 집약되기 때문인 것. 신 회장의 신년 주문은 “내실경영을 통해 핵심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달라”는 것이다.

신 회장은 2013년 신년사에서 “위기가 상시화되는 불확실한 시장상황 하에서는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투자 관리를 통해 내실경영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신 회장은 사회적 책임 부분도 강조했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 것”이라면서 “지속적으로 실천해 오던 사회공헌 활동과 중소기업 및 지역상권과 동반성장하고자 하는 노력에 더욱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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