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家 상속·증여세 ‘폭탄’…가업승계 위기
재벌家 상속·증여세 ‘폭탄’…가업승계 위기
  • 박태현 기자
  • 승인 2012.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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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재벌 우회증여 제동 ‘후폭풍’

하이트진로, 효성家, 동국제강 등 국세청과 행정 소송
대신증권, KG, 효성家 주가 하락 틈타 지분율 늘려

자녀회사를 통한 우회 증여 방식에 제동이 걸렸다.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건물을 증여해 회사의 주식가치가 올랐다면 ‘포괄증여’에 해당돼 대주주 개인에게도 과세할 수 있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조일영 부장판사)는 비상장법인 H사 주주 지 모씨 등이 “증여세 2억3000만여 원 등을 취소해 달라”며 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 등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지씨 등의 조부는 2006년 H사에 서울 봉천동의 3층 건물을 증여해 H사는 63억원 규모의 이익을 회계상 이익금으로 계산, 법인세 15억6000만여 원을 납부했다. 하지만 2011년 국세청은 H사에 대한 주식변동조사를 실시한 뒤 “부동산 증여에 따른 주식가치 증가분이 있다”며 지씨에게 2억3000만여 원의 증여세를 과세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부동산을 회사에 증여해 회사 주식가치가 상승했다면 이는 부동산 증여에 따른 부수적 효과일 뿐 증여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원은 증여세 부과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 ‘증여’는 거래의 명칭ㆍ형식ㆍ목적을 막론하고 경제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유ㆍ무형의 재산을 타인에게 이전해 타인의 재산 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이라며 “주주들의 조부가 부동산을 증여하는 방법으로 주식의 가치를 높여 증여 전후의 차액만큼 이익을 자손들에게 증여했으므로 과세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국세청, 우회증여 “꼼짝마”

이에 따라 우회증여를 통해 경영승계 작업을 끝내려던 기업들의 승계 전략에 차질이 예상된다.

주식증여는 탈세 없는 합법적인 승계방식으로 일부 기업에선 각종 우회증여를 통해 부의 승계를 이어 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 여야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경제민주화’와 국세청의 감시가 맞물려 재벌들의 편법적 부의 상속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재계의 관심은 국세청과 증여세 문제로 행정소송을 벌이는 하이트진로그룹, 효성家, 대양금속 등의 소송에 주목하고 있다. 향후 재벌들에 부의 승계에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문덕 하이트진로(000080) 그룹 회장은 2008년 장남인 태영 씨와 차남 재홍 씨가 주주인 삼진이엔지에 본인 소유의 주식 100만주를 증여했다.

국세청은 “주식 증여로 삼진이엔지의 주식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에 총 463억원을 증여한 것과 같다”며 박 회장의 두 아들에게 각각 242억원과 85억원의 증여세를 내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하이트진로측은 “이미 증여와 관련해 법인세를 냈기 때문에 주주에게 다시 증여하는 것은 이중과세”라고 주장, 현재 행정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오는 17일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효성家 또한 조석래 회장의 막내 동생인 조욱래 디에스디엘(옛 동성개발) 회장의 세 자녀가 100% 지분을 보유한 디에스아이브이(옛 광문타워)에 주식을 물려준 것이 문제가 됐다. 조욱래 회장은 2007년 디에스아이브이에 디에스디엘 주식 61만5793주(93.9%)를 넘겨줬다. 과세당국은 장남 현강씨, 차남 현우씨, 장녀 윤경씨에게 각각 116억원, 89억원, 49억원 등 총 254억원의 증여세 부과 처분을 내렸다.

대양금속(009190) 오너 일가도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증여세 문제가 발생했다.

강석두 회장이 지난 2007년 10월 비상장계열사인 대양디엔씨에 대양금속 주식 488만5110주(17.9%)를 증여했는데 이 회사는 강 회장의 아들인 강찬구 대표와 그의 자녀들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세청은 강 대표와 그의 자녀들에게 40억원의 증여세를 납부토록 했다.

효성그룹과 대양금속은 조세심판원에 불복 청구를 냈지만 기각 결정이 내려졌고, 현재 행정소송 등 후속 절차를 밟고 있다.

하이트진로그룹 등의 오너 일가에 대한 과세 결정은 모두 정부가 2004년부터 시행한 증여세 완전포괄주의에 따라 국세청이 강도 높게 과세하고 있는 사안이다.

주가 하락 때 경영권 승계

최근 국세청의 관심이 최대주주등소유주식변동신고 공시에 쏠리고 있다. 주가 하락을 틈타 부정한 방법으로 증여에 나설 수 있어 감시의 눈길을 강화한 것.

최근 최대주주등소유주식변동신고 공시가 부쩍 증가했다. 경영승계를 위한 최대주주 일가의 주식매입과 주식증여가 증가한 탓이다. 주가 하락은 작은 자금으로 주식을 매입해 지분율을 늘릴 수 있는 기회이며, 세금을 줄인 증여 방안이기 때문이다.

대신증권의 오너일가도 주가하락을 기회삼아 지분율을 높였다. 대신증권 창업주인 故 양재봉 회장의 손자이자 대신증권 최대주주인 양홍석 부사장은 지난해부터 주식 수를 늘리고 있다.

7월 17일에도 1200주를 매수해 지분을 3.8%(337만6462주)까지 늘렸다. 지난해 7월 대신증권 주가는 1만3000원대였지만 올해 7월엔 8000원대이다.

양 부사장의 어머니 이어룡 회장과 양정연 부사장 역시 지분을 꾸준히 늘려 대신증권 대주주 지분율은 2010년 8.3%대에서 9.6%까지 늘렸다.

곽재선 KG그룹 회장 2세인 곽정현씨, 신라교역 2세인 박성진씨, 경방 3세 김지영씨도 장내매수를 통해 지분율을 높였다.

최근 주가가 하락하면서 증여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 6월 초 이재연 전 LG그룹 고문(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사위)의 아들인 이선용 베어트리파크 대표에게 LG와 LG상사 주식 30만주를 증여했다. 지난해 7월 LG 주가는 8만6000원대, LG상사는 6만3000원대였던 것이 올 6월 각각 5만원, 3만원대로 떨어졌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손자들에게 현금을 증여한 뒤 효성 지분을 매입하게 했다. 조현준 사장의 딸인 인영 양(10)·인서 양(6)과 조현문 부사장의 아들 재호 군(6)이다. 이들은 지난 5월 5만원대에 각각 9880주(0.03%)씩 장내 매수했다.

재계 증여 트렌드 변화

완전포괄주의 정착에 따라 재벌가의 ‘부의 상속’트렌드가 변화될 전망이다.

적극적으로 세금을 내겠다는 자세로 상속·증여세에 대한 장기적으로 체계적인 플랜을 통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조세전문가는 “국세청이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될 소지가 있어 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주저해오다가 최근 적극적으로 과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법원에서 새로운 과세 논리를 얼마나 수용해주는지 여부에 따라 기업 증여의 트렌드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속·증여세는 납부세액이 많아 최소 10년 이상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부모의 연령이나 자녀의 연령에 따라 적절한 재산 이전 시기를 파악해야 한다. 시기를 정해 두고 가업 승계 절차를 밟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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