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낙향’이 불러온 형제간 ‘지분 경쟁’
‘장자의 낙향’이 불러온 형제간 ‘지분 경쟁’
  • 최수아 기자
  • 승인 2012.07.24
  • 호수 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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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쩐의 전쟁’ 10 - 한라그룹 ②

“감히 내 밥그릇에 탐을 내?”

재산을 둘러싼 재벌가의 법정 싸움은 재계의 단골메뉴다. 삼성, 현대, 두산, 금호, 한진, 롯데 등 ‘쩐의 전쟁’을 거치지 않은 로열패밀리는 없을 정도. ‘형제의 난’ ‘모자의 난’ ‘숙부의 난’ 그 종류도 다양하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 일감을 몰아주며 진한 우애(?)를 나누다가도 자신의 밥그릇에 손끝하나 스치기라도 하면 그 순간부터 애증의 관계로 변모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경영권 세습을 위한 재벌가의 통과의례라고도 한다. 이에 [한국증권]은 유난히 ‘피’보다 진한 재벌가의 치열했던 ‘쩐의 전쟁’의 내막을 다시금 재구성해본다. 그 열 번째 주인공은 ‘오뚝이 경영신화’ 한라그룹 형제의 간의 ‘지분 분쟁’이다.

 

1997년 12월 6일, 한라그룹은 외환위기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최종 부도 처리되는 비운을 맞이한다.

당시 한라그룹은 자산 6조2000억원, 매출 5조3000억원의 재계서열 12위를 자랑하던 건실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계열사간 상호출자와 지급 보증 등으로 인해 자금 위기를 겪던 중 외환위기까지 도래, 대부분의 계열사를 매각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사실 정인영 창업주의 중공업 과잉투자가 화를 자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바뀐 경영 환경은 생각 못하고 과거에 사로잡혀 사업 확장 의욕만 불태운 것이 결국 소용돌이를 몰고 왔다.

정인영 창업주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현대양행을 빼앗기면서 좌절됐던 ‘중공업 왕국의 꿈’을 재건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삼호조선소를 비롯, 산업기계공장 플랜트설비 등을 건설하는데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 부었다.

뿐만 아니라 3년 가까이 200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냈을 만큼 해외 사업에 유난히 심혈을 기울였다.

초창기에는 세계적인 조선 경기 호조 덕분에 대량수주에는 성공했으나 이후 가격덤핑으로 채산성이 크게 악화, 적자가 이어졌다. 여기에 동남아 등지의 경기침체로 중장비 플랜트 수출마저 크게 줄었다. 실제 착수된 건수도 평균 20%에도 못 미쳤다.

故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왼쪽), 정몽국 엠티인더스트리 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제2의 왕자의 난’ 촉발

그리고 이는 구조조정과 함께 더 큰 불행을 야기시켰다. 막무가내식 확장 사업으로 적자가 지속되던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정몽원 회장이 그룹 위기를 뒷수습하는 과정에서 형인 정몽국 회장의 지분을 자신의 임의대로 이전해 ‘왕자의 난’을 불러 일으켰다.

한라시멘트 등 그룹계열사들이 부도처리 된 후 구조조정회사인 RH시멘트를 설립한 정몽원 회장은 미국 투자금융회사로부터 브릿지론(외환 시장에서 장기차관 도입시 자금소요시점과 자금유입시점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단기차입 등을 통해 필요자금을 일시적으로 조달하는 자금) 4000억원을 대출받아 한라시멘트의 영업권을 사들인 뒤 세계적인 시멘트사인 라파즈에 RH시멘트 지분 70%를 매각, 브릿지론을 갚고 나머지 30%는 자신의 지분으로 남겨뒀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정몽국 회장이 가지고 있던 지분 2만5740주(3.86%)를 형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양도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미국 유학중이었던 정몽국 회장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 2001년 3월 강남세무서로부터 ‘한라시멘트와 한라콘크리트 주식을 양도한데 따른 증권거래세 납부 통지서’를 받으면서 뒤늦게 자신 명의가 무단 도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 정몽국 회장은 결국 2003년 1월 한라시멘트를 상대로 주주지위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 동생과의 법쟁 분쟁에 돌입한다. 그리고 3월 정몽원 회장을 상대로 주식반환 청구소송까지 제기, 깊어진 형제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정몽국 회장은 창업자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순순히 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동생으로 인해 재산상의 피해가 막대해 소송을 결심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몽원 회장이 회생 가능성 없는 한라중공업을 불법 지원해 그룹 전체를 부실화시켰을 뿐 아니라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신의 한라콘크리트 주식을 편법으로 이전했다며, 자신의 주식을 반환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정몽원 회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주식 양도는 정인영 창업주의 지시에 따라 행한 것이며 주식을 돌려주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정몽국 회장이 주식을 가져가지 않은 채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법원 또한 정몽국 회장이 주식의 관리 처분을 부친인 정인영 창업주에게 위임한 상태에서 정인영 창업주의 지시에 따라 정몽원 회장이 정몽국 회장 소유 주식을 처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문서 위조 부분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다만 주식반환 청구 소송에 대해서는 정몽국 회장에게 라파즈한라시멘트 주식 390만여주, 한라건설 주식 22만여주를 인도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제2라운드 ‘배당금 분쟁’…기싸움 ‘팽팽’

이에 정몽국 회장은 그 여세를 몰아 2005년 12월 13일, 한라시멘트 주식 배당금 몫을 돌려달라며 주식배당금 청구소송을 또 다시 제기한다.

주식반환청구 일부 승소판결에 의거, 회사가 발행한 정몽원 회장 명의의 보통주식 1356만여주중 자신의 몫인 450여만주를 돌려달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1심은 정몽국 회장의 승리였다. 법원은 기존 한라시멘트 주식 비율에 따라 정몽원 회장 소유의 라파즈한라시멘트 등 관계 회사의 지분을 정몽국 회장에게 돌려주라고 명했다.

하지만 정몽원 회장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는 전혀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회사 구조조정을 통해 이익을 취득한 자가 있을 경우 이익을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반환해야 하는가에 대한 마땅한 법률이 없어 주식 반환 대상을 임의로 정할 수 없다고 판시, 정몽국 회장에게 주식을 돌려줄 구체적 근거가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결국 두 형제의 재산다툼은 대법원 판결만을 남겨둔채 극한의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

더욱이 2006년 7월 20일 정인영 창업주가 별세, 분쟁의 변수로 떠올랐다. 형제의 골이 더 깊어져 전면전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대법원 결과의 승리는 정몽원 회장에게로 돌아갔다. 정몽국 회장도 대법원 판결을 끝으로 더 이상의 법정 분쟁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라그룹 ‘형제의 난’은 일단락 됐다.

하지만 망가진 형제애를 다시 되돌리기엔 두 사람의 골은 깊고도 깊었다.

정몽국 회장의 장남인 정태선씨가 한라그룹 계열사가 아닌 정주영 명예회장의 막내동생인 KCC에 입사해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분분쟁의 후유증이 지속, 씁쓸함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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