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인연 끊겠다”…‘외화 반출 사건’은 ‘형제의 난’ 신호탄
“동생과 인연 끊겠다”…‘외화 반출 사건’은 ‘형제의 난’ 신호탄
  • 최수아 기자
  • 승인 2012.06.05
  • 호수 8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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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쩐의 전쟁’ 7 - 한화 ②

“감히 내 밥그릇에 탐을 내?”재산을 둘러싼 재벌가의 법정 싸움은 재계의 단골메뉴다. 삼성, 현대, 두산, 금호, 한진, 롯데 등 ‘쩐의 전쟁’을 거치지 않은 로열패밀리는 없을 정도. ‘형제의 난’ ‘모자의 난’ ‘숙부의 난’ 그 종류도 다양하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 일감을 몰아주며 진한 우애(?)를 나누다가도 자신의 밥그릇에 손끝하나 스치기라도 하면 그 순간부터 애증의 관계로 변모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경영권 세습을 위한 재벌가의 통과의례라 한다. 이에 [한국증권]은 유난히 ‘피’보다 진한 재벌가의 치열했던 ‘쩐의 전쟁’의 내막을 다시금 재구성해본다. 그 일곱 번째 주인공은 화약 산업의 산실 한화그룹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과 김호연 빙그레 전 회장

한화가의 재산다툼은 1992년 4월 13일, 김호연 전 한양유통 사장(현 국회의원)이 형을 상대로 상속재산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엄청난 ‘형제의 난’ 화약고를 터뜨렸다.

이는 김승현 회장이 적자경영의 책임을 물어 김호연 전 사장을 대표이사직에서 강제 퇴진 시킨 것이 도화선이 됐다. 퇴출 통보에 발끈한 김호연 전 사장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룹재산을 형이 독차지하려고 한다며 즉각 반발했다. 인수시절부터 재무구조가 좋지 않았던 데다 증자가 없어 회사 사정이 악화된 것인데 그 책임을 자신에게 전가한다며 분개했다.

뿐만 아니라 김승연 회장이 자신에게 한양유통을 비롯해 빙그레, 서소문 옛 사옥 및 경인에너지의 석유판매회사 등 4~5개 계열사를 넘겨주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이를 지키기는커녕 부채비율이 높은 빙그레만 남겨두고 한양유통까지 빼앗아갔다며 재산상속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김승연 회장의 말을 믿고 1989년 제일증권 등의 계열사 지분을 고스란히 넘겨줬지만 오히려 김승연 회장이 자신의 인감을 이용해 제일증권 등의 지분을 떼어간 뒤 당초 약속했던 계열사 주식을 넘겨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1981년 김종희 창업주가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별세하는 탓에 당시 상속인들이 김승연 회장에게 인감을 위탁했는데 김승연 회장이 이를 이용, 자신의 동의 없이 인감을 사용해 재산을 배분했다며 그룹 총 재산 중 40%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상속재산 분할에 관해 그동안 어떤 협의도 없었기 때문에 김승연 회장에게 상속재산을 명의 신탁해 놓은 것에 불과, 이를 반환해야 마땅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의 입장은 달랐다. 1989년 5월 김호연 전 사장이 인감을 되찾아 가면서 계열사 정리에 관해 몇 차례 서로 의견을 나눴고 이에 따라 모든 상속 절차가 끝났다고 반박했다.

한양유통의 경우도 결손누적이 680억원에 이르는 등 경영이 엉망인 상태라 계열사 관리차원에서 경영권을 되찾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빙그레가 보유하고 있던 제일증권 지분을 김호연 전 사장으로부터 매입했던 것도 정부의 계열분리 지시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으며 지분이 전혀 없는 김호연 전 사장에 한양유통 경영을 맡긴 것 자체도 경영권을 준 것이지 소유권까지 넘겨준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계열사들을 김호연 전 사장에게 넘길 경우 막대한 증여세를 물어야 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대기업이란 결코 특정인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며 대립각을 분명히 했다.

“동생 공작” vs “내부 제보”

그렇게 두 사람은 한 치의 양보 없는 공방을 이어갔고, 대화마저도 끊긴 채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러던 1992년 8월, 김승연 회장이 김호연 전 사장에게 빙그레의 경영참여를 제의하면서 재산싸움이 새 국면을 맞이한다.

형제간의 재산다툼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을 우려해 사태해결 냉각기를 갖자는 의미였다.

일단 김호연 전 사장은 김승연 회장이 사태해결 의지를 비춘 것으로 판단, 빙그레 대표직을 수락했다. 다만 경영참여로 유산에 대한 권리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기대와 달리 반목을 거듭했다. 상속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김승연 회장의 외화 유출 혐의가 포착, 구속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화그룹마저 비자금으로 불법 실명 전환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화해를 통해 해결될 희망마저 사라져 버렸다.

김승연 회장은 검찰 수사의 시작이 김호연 전 사장의 제보에서 비롯됐다고 믿었다. 미국에 갖고 있던 거액의 예금계좌가 밝혀진 점이나, 반실명제 사범 조사와 관련해 그룹 비자금 담당자들의 불법 실명 전환 사실이 낱낱이 밝혀진 점 등 검찰 수사의 고비 때마다 터져 나오는 그룹 핵심 정보의 배후에 김호연 전 사장이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김호연 전 사장은 제보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유산분쟁 외에 대외활동은 모두 중단한 상태라며 한화그룹 내부의 제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의 의지는 단호했다. 사내 방송을 통해 생중계 된 그룹 창립 기념식에서 “동생과 인연을 끊겠다”고 공언, 김호연 전 사장과의 화해의 여지를 모조리 잘라냈다.

프로야구팀인 ‘빙그레 이글스’의 구단명도 ‘한화 이글스’로 전격 교체했다. 빙그레 이글스의 모든 지분을 한화그룹이 갖고 있었던 터라 김승연 회장은 망설임 없이 적극대응했다.

어머니 칠순잔치 계기로 극적 화해

그만큼 두 사람의 감정 대립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며 지루한 법정공방만을 이어갔다.

양쪽 모두 ‘상속의 합법성’ 여부를 둘러싸고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제출했지만 어느 쪽도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김호연 전 사장은 상속재산 분할에 대한 협의가 없었다는 어머니와 누나의 녹취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은 끝까지 합의하에 작성한 상속재산 분할합의서가 존재한다고 맞섰다. 합법적으로 상속재산분배가 됐고 10년 시효가 끝났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게 없다며 같은 입장을 되풀이, 31차례나 진전 없는 공판이 계속됐다.

더욱이 유산싸움의 핵심 증인인 어머니와 누나마저도 출두 명령에 묵묵부답으로 일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타협 가능성도 점점 희박해져 갔다.

그러던 1995년 3월 1일, 두 형제에게 예상치도 못한 화해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할머니장례식에서 만남 두 사람이 친지들의 권유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간 얽혔던 앙금을 풀어내기 시작, 묵은 감정싸움을 끝내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고조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6월 뒤, 어머니 강태영 여사의 칠순잔치를 계기로 드디어 3년 6개월간 이어져 오던 갈등의 마침표를 찍는다. 주변의 계속되는 화해의 권고에 김호연 전 사장은 재산분할에 합의, 모든 소를 취하한다.

현재 두 사람은 김종희 창업주의 선영을 함께 방문하는 등 그간의 갈등을 깨끗이 씻고 보란듯이 ‘형제애’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김호연 전 사장이 빙그레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확실한 앙금을 털어낸 모습이다.

2010년 7·28 재보궐 선거에 나선 김호연 전 사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김승연 회장이 직접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응원을 아끼지 않는 등 다른 재벌들과는 사뭇 다른 끈끈한 우애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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