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진보의 재구성
나의 연인 J에게 - 진보의 재구성
  • 김충교
  • 승인 2012.05.22
  • 호수 8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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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막 가자는 얘기일 겁니다.

단상에 뛰어올라 의사진행을 방해하고 폭력을 행사합니다.

사진기자들이나 영상기자들의 카메라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쌍 팔년도 구닥다리 정당의 모습을 담은 낡은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닙니다.

21세기, 그것도 진보의 기치를 내건 정당의 회의장 모습입니다.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TV를 꺼버렸습니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의혹이 제기되었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습니다.

물 만난 보수언론들의 합창에 귀를 막으려고도 해 봤습니다.

헷갈렸기 때문입니다.

NL이니 PD니 하는 아득해진 용어들이 난무했습니다.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 운운하는 얘기도 들리더군요.

NL계인 당권파가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고 해서 일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하지만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정선거의혹이 있으면 사실관계를 따져 밝히면 그만입니다.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구요.

물론 이로 인해 입는 상처는 크겠지요.

진보진영의 외연확대를 바라는 사람들은 좌절감을 맛보았을 겁니다.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을 당한 셈이 되니까요.

그래도 치부를 드러내 놓으면 상처는 아물게 마련입니다.

맞을 땐 아프지만 매는 먼저 맞는 게 약이 됩니다.

걸음은 더뎌지겠지만 털고 갈 것은 털고 가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돌아가는 모양새는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당권파라는 사람들은 상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절차상의 민주주의는 도외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가장 생경했던 부분은 당심이 민심에 우선한다는 주장입니다.

당원의 뜻을 존중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당권파가 다수의 당원을 지지 세력으로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겠지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언뜻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북한의 구호가 연상되더군요.

북한의 구호라고 해서 부러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구호는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성립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어떤 체제도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하지 않은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실제 진행과정에서 변질 왜곡될 수는 있겠지만 민주주의는 원칙입니다.

어떤 명분으로도 국민 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체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들과 북한을 연결시켜 생각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일부 보수진영에서 몰아가고 있는 북한추종 운운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들이 낡은 프레임에 갇혀 세상과 등지고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일 뿐입니다.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불통의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시간을 견뎌왔습니다.

해서 소통에 목이 말라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해봐서 다 안다는 지도자가 운전대를 잡고 질주를 해 왔습니다.

교통법규나 신호등은 무시되었습니다.

길이 아니면 돌아갈 생각을 하기 보다는 불도저로 밀고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공정사회라 하고 정의라 했습니다.

브레이크 없이 달리다 엉뚱한 곳에 길을 내고 멀쩡한 산과 강을 조각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제자리로 돌아갈 날 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갈 곳을 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다시 돌아갈 일이 막막하지만 괜찮은 사람들이 운전대를 잡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다음 운전대를 서로 잡겠다고 싸우기 보다는 협력해서 같이 잡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앞을 가립니다.

야권연대의 한 축인 통합 진보당의 어두운 본색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당권파가 안쓰럽습니다.

낡은 틀을 깨겠다고 하는 그들이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정의라고 굳게 믿는 듯합니다.

정의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도 정당화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모습입니다.

그들에게서 또 다른 불통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도 헷갈리고 답답해서 운동권 출신의 친한 후배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스토리냐고.

초창기 NL멤버였던 그는 어이없어 했습니다.

세상의 변화와는 동떨어진 채 암울했던 시절의 마인드로 살고 있는 그들이 안타깝다고.

그는 당권파가 힘주어 자랑하는 진성당원입니다.

통합 진보당의 의사결정과정은 폐쇄적이라고 합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상향식 의사결정 보다는 하향식 의사결정이 지배하고 있다 하더군요.

이의를 제기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일쑤라고 합니다.

특히 잘못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하더군요.

바른 길로 가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식이라는 겁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기존 보수정당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기존 보수정당들은 보스의 의중에 맞춰 움직입니다.

집권 여당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집권 초 중기에는 모두 대통령만 쳐다봅니다.

대통령의 의중을 몰라 중구난방으로 소리를 내다가도 한 말씀에 조용해지기 일쑤이지요.

너무 많이 보아온 우리 정치권의 풍경입니다.

지금은 차기 대선 유력주자의 입만 쳐다보고 있지요.

그런데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유사한 행태를 취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더욱이 우스운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입니다.

물론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풍문으로 떠도는 얘기들은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통합 진보당의 미래를 걱정하는 후배가 그러더군요.

대기업들도 국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구요.

그런데 진보진영이 운동권 시절의 언더 써클 수준의 의식을 가져서 되겠냐구요.

그들의 태생적 한계의 불가피성을 알기에 이해는 하지만 이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맞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진보는 앞서 가는 것입니다.

그들에겐 엄정한 도덕성과 실천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절차상의 민주성은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지 않으려면 진보진영은 뼈아픈 성찰을 시작해야 합니다.

아직 그들을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남아있습니다.

환골탈태하는 진보의 재구성만이 그런 시선을 머물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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