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인생의 반환점"
나의 연인 J에게 - "인생의 반환점"
  • 김충교
  • 승인 2012.04.09
  • 호수 8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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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곳에서 사귄 친구와 술을 마셨습니다.

저를 형님이라 부르니까 물론 친구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동갑이긴 한데 띠 동갑 정도 되니까요.

실제로 아이들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입니다.

아이들을 매개로 알게 됐지만 서로 말이 통해 친하게 됐습니다.

얼추 코드가 맞아 가끔 만나 한 잔 걸치곤 합니다.

술기운이 오르면 정치 얘기를 하면서 중앙정치무대를 향해 삿대질을 합니다.

우리의 실제 삶에 정치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데 견해를 같이 하니까요.

이날 퇴근길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입이 궁금하던 터라 반색을 하며 달려갔습니다.

약속시간 보다 조금 늦게 오더군요.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 약속장소에 걸어오면서도 전화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리에 앉아 한숨을 돌리면서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정신없이 사는 줄 모르겠다고.

오늘 하루도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고 푸념하더군요.

바쁘게 사는 게 좋은 거라고 응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쁜 게 아니라 치여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을 하는 중에도 하루에 업무와 관련된 수십 통의 전화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누구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라는 겁니다.

무책임한 상사들과 대거리를 하기도 하지만 진만 빠진다고 했습니다.

복지부동이 몸에 밴 윗사람들의 행태에 혀를 내두르더군요.

실무진만 죽어난다는 겁니다.

업무를 분담할 후배를 키우는 것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끌어안고 있는 업무에 치여 짬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십 줄에 접어든 그는 매우 지쳐보였습니다.

조직에서 중간에 끼인 사람들의 비애입니다.

힘들여 일을 완수해도 표는 나지 않습니다.

성과의 열매는 중간에 불쑥 숟가락을 얹는 상사의 차지가 됩니다.

그러려니 하지만 허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긴 큰 조직의 샐러리맨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자신만 피해가는 것 같은 로또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피곤함을 핑계로 술만 들어붓는 생활이 되기 십상입니다.

때려치우자고 마음을 먹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눈에 밟히고 이내 어깨를 늘어뜨리고 말지요.

우린 직장생활의 경험과 애환을 나누며 술만 죽였습니다.

그런데 불쑥 그가 말했습니다.

자신의 30대 시절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학창시절이나 군대생활은 조목조목 꺼내 놓을 수 있는데 30대는 날아가 버렸다고.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조각을 끼워도 백지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올려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처음엔 그저 먹고살기 위해 정신없이 살았다는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뭔가 다른 뉘앙스가 풍겼습니다.

삶에서 10년의 공백이 생긴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의 나이를 따진다면 10년은 살아온 인생의 4분의 1입니다.

그걸 통째로 잃어버렸다는 말에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해서 머릿속으로 과거를 반추해 보았습니다.

우선 10대와 20대 시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몇몇은 구체적이고 선명한 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로 어제 일처럼 느껴지는 장면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어 30대와 40대를 추억해 보았습니다.

훨씬 가까운 기억인데도 10대나 20대 때보다 확연하지 않더군요.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컬러사진처럼 선명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뿌옇게 빛바랜 흑백사진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생기는 노안처럼 먼 것 보다 가까운 것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돋보기를 쓰거나 안경을 벗어야 잘 보이는 노안 말입니다.

그렇다고 가까운 기억을 선명하게 해주는 안경은 없으니 당황스럽더군요.

문득 인생을 관리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생각입니다.

설사 인생을 잘 관리했다 해도 지금이 보다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 <풀 사이드>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인생을 제대로 관리하는 모범적인 35세 남성이 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에스컬레이터 식의 인생을 산 그는 중상류층의 가장입니다.

쟁쟁한 학벌과 탄탄한 직장, 좋은 집안 출신의 아내가 있습니다.

사는 것에 부족함은 없습니다.

아내 모르게 사귀는 20대의 젊은 애인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70 세로 산정하고 인생계획을 세웁니다.

35세의 생일 날 그는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고 여기게 됩니다.

골인지점까지 35년이 남은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는 인생의 나머지 반을 보다 타이트하게 관리할 생각을 다지며 생일을 보냅니다.

치아관리를 위해 그는 양치도 정성을 기울여 합니다.

수영선수 출신인 그는 몸매관리를 위해 여전히 규칙적으로 수영을 합니다.

남은 인생을 사는 첫날인 일요일 아침 그는 샤워를 하고 거울에 자신의 벗은 몸을 비쳐봅니다.

철저하게 관리한 덕분에 대체로 만족스럽습니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잘 될 것이라고 고개를 끄떡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완벽한 삶입니다.

거실 저쪽에서는 아내가 음악을 들으며 다림질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정경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더 바라야 될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그는 소파 위에 드러누워 담배를 피우면서 천장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옵니다.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고 있는 겁니다.

도무지 그는 자신이 우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사실 누구에게나 인생이라는 시간의 한계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인생은 관리되어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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