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겨울이여 안녕"
나의 연인 J에게-"겨울이여 안녕"
  • 김충교
  • 승인 2012.03.26
  • 호수 8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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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좀처럼 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습니다.

꽃샘추위가 한겨울 보다 더 사람을 움츠리게 만듭니다.

자연은 섣부른 사람들의 기대를 외면합니다.

절기의 흐름을 앞서가는 심리에 경고를 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추위는 한겨울 보다 봄의 문턱이 더 매섭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알 겁니다.

심야에 경계근무를 나가면 이맘때가 가장 춥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한겨울엔 으레 춥겠거니 하고 포기를 합니다.

하지만 봄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가 얹어지면 자만하게 되지요.

꽃샘추위는 그런 심리에 일격을 가하고 맙니다.

그래서 겨울이 길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더해가면서 갖게 되는 생각이 있습니다.

겨울이 점점 길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구 온난화와는 무관하게 겨울은 왜 그리 춥고 긴지 불쑥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무기력해집니다.

앞으로 또 견뎌낼 세월이 아득함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탈이 없다면 앞으로 살아야 할 세월은 부지기수로 남아있습니다.

날로 늘어만 간다는 평균수명만 봐도 어림으로 짐작할 수 있거든요.

지금 나이로 가늠해도 20~30년은 너끈해 보입니다.  

또 건강을 핑계로 정기적으로 검진도 받습니다.

가족력을 겁내며 위 내시경 검사는 매년 합니다.

아버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지난 겨울에는 대장 내시경 검사까지 받았습니다.

음주 흡연자는 반드시 검진이 필요하다는 의학정보에도 차일피일 미루었던 터였습니다.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허랑방탕했던 젊은 시절 탓에 은근히 걱정을 하기도 했거든요.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세월이 아득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기엔 좋은 세월이 온다 해도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체념이 깔려있습니다.

솔직히 좋은 세월이 올 것 같지도 않습니다.

가끔 세상을 향해 삿대질이나 해대며 부실한 정체성을 합리화나 하겠지요.

그러면서도 등 따시고 배부른 것에 항상 목이 마를 거구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는 게 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처지는 기분을 어쩌지 못하겠더군요.

어쩌면 햇빛 쏟아지는 낙원을 꿈꾸며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봄을 시샘하는 찬바람 속에서 허덕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돌파구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지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지난 해 아이와 약속했던 일을 시작했습니다.

함께 글을 읽어 보자는 약속을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

학습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뜻에서 쉬운 영문 글을 읽기로 했습니다.

해서 어떤 게 적당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내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궁리를 했습니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그런 내용을 담은 영문으로 저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꼽습니다.

단행본은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입니다.

판매부수가 엄청난 독보적인 매체입니다.

과거 한때 정기구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사보는 매체입니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지구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문화의 보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들이 찍은 사진은 정말 일품입니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와 닿을 정도이니까요.

다행히 정규판본 이외에 10대 초 중반을 대상으로 하는 아동용 판본도 발행되고 있습니다.

아이의 친한 친구도 함께 하겠다고 해서 매주 한번 같이 읽고 있습니다.

최근 발행본은 바다거북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와 고대 이집트 얘기도 있습니다.

팩트의 세계와 상상력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영문이기 때문에 사전을 뒤져야하는 번거로움은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낯선 단어가 부지기수일 겁니다.

그래도 내용이 워낙 흥미가 있어 무척 재미있어 합니다.

학교에서 배웠거나 앞으로 배우게 될 내용이니까요.

함께 읽으며 저 역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니 움츠려졌던 마음이 다소 펴졌습니다.

푸른 바다거북이 물속에서 5시간 동안 숨을 참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읽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내용이야 사전의 도움을 받으면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사진을 바탕으로 짧은 기사로 편집돼 있거든요.

하지만 역사나 문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으면 바닥이 드러나게 됩니다.

밑천이 딸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 벼락치기를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도 속독으로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이집트의 역사와 파라오의 생활에 관한 책도 찾아보게 되더군요.

인간의 횡포와 환경의 영향으로 위협받고 있는 바다거북들의 세계도 살펴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실감나더군요.

살짝 괜히 시작했구나 하는 후회가 없지도 않습니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벼락치기하던 학창시절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살아 움직이는 맛이 납니다.

아득함도 조금씩 걷혀가고 있습니다.

지겹던 겨울의 기억이 조금씩 잊혀져갈 듯합니다.

봄날 아지랑이처럼 기지개를 펴 볼 생각이 드는군요.

답보 상태에 머물면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가을이면 나무들은 몸에 달고 있던 잎을 땅으로 떨어뜨립니다.

눈보라와 거센 겨울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잎을 벗는 것입니다.

몸을 가볍게 해서 혹독한 겨울과 싸우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겨울과 한판 맞장을 뜨려고 준비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맨몸으로 부대낀 나무는 새봄에 짙푸른 잎으로 다시 치장을 합니다.

이젠 지겹게만 느껴지던 겨울과 잠시 이별을 하려 합니다.

아쉬움은 없지만 다음엔 맞장 한번 떠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겠지요.

따스한 햇볕에 취하기보다는 양분으로 담아볼 생각입니다.

아득함은 벼락치기로 해소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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