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불편한 진실
"나의 연인 J에게" - 불편한 진실
  • 김충교
  • 승인 2012.03.12
  • 호수 8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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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는 나른한 시간대입니다.

소파에 드러누워 빈둥거리는 맛이 그만이지요.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리고 정지돼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흐르는 시간이 아쉬워 잠을 청하는 게 아깝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만큼 일상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데가 있습니다.

멍한 채로 있다가 그마저 싫증이 나면 책을 읽습니다.

틈나는 대로 취향에 맞는 읽을거리를 준비해 두는 편이거든요.

두 다리 뻗고 마음 편하게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치워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독서란 집중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겉도는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피곤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면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곤 합니다.

채널을 돌리다가 마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간혹 낚이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중 한 프로그램에 눈이 갔습니다.

최근에 시작됐다는 역사 드라마였습니다.

고려말기의 무인정권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신>이란 역사극입니다.

본방송을 본 적이 없는 터라 재방송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60년간이나 이어진 최씨 무인정권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관련 뉴스를 살펴보니 최씨 정권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최씨 정권을 무너뜨린 김준이라는 무인이 주인공이더군요.

그는 철옹성 같았던 최씨 정권을 무너뜨리고 1인자로 등극한 사람입니다.

최충헌의 가노였던 김윤성이 그의 아버지입니다.

그런 김준이 주인 가문을 뒤엎고 최고 권력자에 오른 스토리를 그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일테면 천출인 김준의 성공과 좌절이 주 내용인 셈입니다.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최고 권력자에 오른 김준.

드라마는 그의 삶을 다이내믹하게 펼쳐 보일 모양입니다.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고 비상하는 김준의 사랑과 야망.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배신.

왕정복고를 꾀했다는 역사의 긍정적 평가도 한 몫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려 무인정권시대는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변칙이었습니다.

하급 무인들이 체제를 전복하고 장기 집권한 기형적인 사례입니다.

무인정권 기간 내내 집권자들은 자신의 잇속만 챙겼습니다.

역사의식이 결여된 채 개인의 안위만을 위해 매진했기 때문입니다.

최충헌을 시작으로 최우, 최항, 최의로 이어진 최씨 정권의 폐해는 우리 역사의 얼룩입니다.

김준 역시 권력을 탈취한 후 탐욕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습니다.

또 다른 정적에게 제거되기 전까지 부패와 탐학으로 백성의 원성을 샀습니다.

그것은 무인정변의 시작부터 답습된 행태였습니다.

정변의 주인공들은 무인차별에 대한 분노에만 집착했습니다.

문신만을 우대하는 사회를 갈아엎었을 뿐입니다.

정변초기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이의방은 독불장군이었습니다.

이고와 채원과 함께 그는 정변의 주역이었습니다.

권력은 나눌 수 없는 법입니다.

그는 동지인 이고와 채원을 죽입니다.

그 역시 정중부의 아들의 칼에 날아갑니다.

원로그룹에 속하는 정중부 역시 아들의 전횡을 막지 못하고 추락합니다.

무인정변을 부정했던 젊은 장군 경대승의 집권은 설익기 짝이 없었습니다.

결국 권력은 이의민이라는 왈패무인에게 넘어갑니다.

이의민은 의종을 직접 살해한 이의방의 수하로 천민출신입니다.

<무신>의 김준과 비슷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사리사욕만 채우다 그도 결국 비명횡사하는 운명을 맞습니다.

이처럼 고려 무인정권시대는 한마디로 국정농단의 시대였습니다.

해서 <무신>이라는 드라마는 재미와는 상관없이 묘하게 불편한 기분을 들게 합니다.

권력을 놓고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은 그들의 일이었다고 제쳐둘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1천년이 넘은 옛날 일이 오늘을 보는 거울처럼 느껴집니다.

대한민국의 최근 현대사가 오버랩 되고 있으니까요.

무인이라는 단어가 군인으로 바뀌었을 뿐 대한민국도 비슷했습니다.

오래 동안 군인출신들이 통치를 했습니다.

5.16 군사 쿠데타를 시작으로 군 출신이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군사정부는 이후 30여년이 넘게 지속됐습니다.

그러다 10.26으로 박정희 정권은 무너졌습니다.

잠시 문민의 봄이 찾아오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정치군인들은 틈새를 이용해 무대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이들의 한결같은 기치는 구국의 신념이었습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겐 분기탱천도 없었습니다.

고려시대 무인들처럼 홀대를 받은 경험도 없습니다.

군사정권 하에서 누릴 것은 다 누린 그들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을 향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강변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습니다.

고려시대 무인들이 정변을 추인받기 위해 행한 방식마저 답습했습니다.

당시 무인정변의 주역들은 쿠데타를 추인받기 위해 강대국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금나라에 위조문서를 보내고 로비를 벌였습니다.

한국의 정치군인들 역시 마찬가지 행태를 보였습니다.

미국의 동의나 방조를 얻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였지요.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되었다는 현재도 무언가 깔끔한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무력을 통해 정권을 탈취한 사람들에 대한 심판은 없습니다.

쿠데타의 주역들은 아직도 떵떵거리며 세상을 희롱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고려무인시대는 이 점에서는 달랐습니다.

가문이 소멸될 정도로 떨려 나갔습니다.

물론 정적들에 의한 것이었지 백성들의 의지는 아니었습니다.

권력만을 놓고 서로 물고 물리는 게임을 벌인 것이니까요.

일요일 오후 나른함에 지쳐 본 드라마의 재방송이 오늘을 다시 보게 합니다.

개그 프로그램의 인기코너처럼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싹 가시지 않은 불편함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군사정권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아직 우리는 밀어붙이기식의 논리 아래 살고 있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불도저로 국토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라를 위해서’라는 말이 덧붙여집니다.

제주도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만 해도 그렇습니다.

구럼비 바위를 깔아뭉개고 있습니다.

힘만 믿는 군사적 문화의 유산은 오늘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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