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시대 개막이 부른 ‘난타전’
이건희 시대 개막이 부른 ‘난타전’
  • 최수아 기자
  • 승인 2012.02.27
  • 호수 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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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쩐의 전쟁’ 1 - 삼성②

“감히 내 밥그릇에 탐을 내?”
재산을 둘러싼 재벌가의 법정 싸움은 재계의 단골메뉴다. 삼성, 현대, 두산, 금호, 한진, 롯데 등 ‘쩐의 전쟁’을 거치지 않은 로열패밀리는 없을 정도. ‘형제의 난’ ‘모자의 난’ ‘숙부의 난’ 그 종류도 다양하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 일감을 몰아주며 진한 우애(?)를 나누다가도 자신의 밥그릇에 손끝하나라도 스치기라도 하면 그 순간부터 애증의 관계로 변모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경영권 세습을 위한 재벌가의 통과의례라도 한다. 이에 [한국증권신문]은 유난히 ‘피’보다 진한 재벌가의 치열했던 ‘쩐의 전쟁’의 내막을 다시금 재구성해본다. 그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최근 7000억원대의 상속 소송에 휘말린 삼성가의 두 번째 ‘숙질의 난’이다.

지난 21일 삼성물산 직원이 이맹희씨의 장남 이재현 CJ 회장을 미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맹희씨와 이건희 회장과의 ‘상속분쟁’이 본격화 궤도에 오르는 양상이다. 더욱이 이재현 회장이 ‘형제의 난’에 관여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급부상, ‘진흙탕 싸움’으로까지 번질 태세다.

CJ측이 삼성을 상대로 즉각 고소장을 제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집안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다. 삼성측은 사건 당사자인 삼성물산 김 차장이 신라호텔 부지 인근 활용에 대한 사업성 검토를 위해 장충동 일대를 돌다가 접촉 사고가 발생한 것일 뿐이라고 공식 해명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삼성과 CJ의 해묵은 갈등에 최근 불거진 소송까지 맞물려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1995년에도 제일제당 경영권을 둘러싸고 삼성이 이재현 회장의 이웃집 옥상에 CCTV를 몰래 설치, 한바탕 ‘숙질의 난’을 벌인바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건희 회장 시대가 개막하면서 함께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행, CCTV… “끝장 보자”

1987년 12월 1일 호암아트홀. 삼성그룹 사장단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당시 삼성그룹 부회장이었던 이건희 회장의 회장 취임식이 열렸다. 그의 나이 만 45세.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언에 따라 삼남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 행사를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

젊은 나이에 거대 기업을 이끌어가기엔 너무 경륜이 짧다는 지적도 잇따랐지만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회장과 닮은 꼴 경영 행보를 보이며 이 같은 우려를 빠르게 불식시켰다.

88년에는 삼성BP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을 설립해 고분자화학 분야로 진출을 꾀했으며 전자, 반도체, 통신을 하나로 묶는 사업구조 조정을 실시, 이를 ‘삼성전자’로 한데 묶었다. 이것이 바로 향후 삼성그룹을 세계일류기업으로 발돋움 하게 된 성장 동력이다.

이후 삼성가는 별다른 잡음 없이 각자 사업영역을 구축한다. 경영권에서 밀려난 이맹희씨는 제일제당 경영에만 관여했으며, 이창희씨는 새한미디어를 이끌며 첨단산업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다 1991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장녀 이인희씨는 한솔그룹 고문을, 5녀 이명희씨는 신세계그룹 회장을 맡아 운영을 시작한다. 차녀 이숙희씨는 LG가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결혼했으며 삼녀 이순희씨와 사녀 이덕희씨도 출가했다.

반면 이병철 회장의 일본인 처 사이에서 태어난 이태휘씨는 삼성그룹 상무로 재직하다 이병철 회장의 죽음과 함께 홀연히 사라진다.

그러던 1994년, 삼성의 계열분리 작업이 본격화 되면서 제일제당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다.

이건희 회장이 제일제당 사장단 인사를 단행, 측근인 당시 이학수 비서실 차장을 제일제당 대표이사 겸 부사장으로 전격 임명하면서 그야말로 난타전이 벌어진다.

이학수 부사장이 당시 상무였던 삼성가 장손 이재현 회장을 이사진에서 빼내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심지어 이재현 회장과 그의 외삼촌인 당시 손경식 부회장의 의자를 치워 이재현 회장은 이를 이건희 회장이 제일제당 경영권마저 빼앗아가는 것으로 판단, 삼촌인 이건희 회장과 전면전을 벌였다. 자기편 임원들을 불러 모아 결의대회를 하는 등의 갈수록 양측의 대립은 극에 달했다.

이맹희씨도 자신의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를 통해 “창업주 사망 뒤 ‘제일’자가 들어가는 삼성 계열사들과 안국화재를 (아들인) 재현이에게 넘겨주기로 했는데 이건희 회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힘을 보탰다.

그렇게 시작된 양측의 대립은 몰래카메라까지 설치하는 ‘숙질의 난’으로 비화됐다. 삼성 비서실에서 이건희 회장 자택 바로 앞에 있던 이재현 회장 집 정문을 염탐하고자 CCTV를 설치, 감시하다 적발된 것이다. 이에 이재현 회장은 강하게 항의해 CCTV는 철거 됐고, 피 말리는 가문의 전쟁은 결국 이학수 부사장이 한 달 만에 제일제당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로부터 2년 뒤, CJ는 삼성으로부터 완전히 계열 분리된다.

이재현-이재용으로 불씨 옮나

그리고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와 연이은 특검 수사로 지금의 유산 다툼을 야기한 삼성의 차명계좌가 수면 위로 드러나 이건희 회장의 20년 삼성 통치 역사가 막을 내리는 위기를 맞는다.

이와 함께 숙질간의 갈등도 불식되는 듯했다. 이재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 계열 지분을 CJ오쇼핑 등의 인수대금 마련을 위해 처분하면서 정리되는 듯 보였다. 분위기에 휩쓸려 소원해졌던 3세들의 관계도 이재현, 이재용, 정용진 등이 함께 술자리 갖는 등 관계 회복의 기미가 엿보였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삼성 특검’ 의혹을 뒤로 하고 2010년 3월 전격 경영에 복귀, CJ와의 두 번째 전면전을 예고하는 공격경영을 전개한다.

그리고 지난해 6월 대한통운 인수전을 놓고 양측은 불편했던 속내를 다시금 드러낸다. CJ가 인수 자문사로 삼성 계열사인 삼성증권과 계약을 맺고 대한통운 인수에 나선 가운데 삼성이 삼성SDS를 내세워 포스코와 손잡고 뒤늦게 입찰전에 뛰어든 것이다.

당시 CJ측은 삼성이 CJ의 사업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주장, 삼성증권과의 자문계약을 취소하기에 이른다.

더욱이 같은 해 12월 CJ헬로비전 이동통신재판매(MVNO) 사업 시작을 앞두고 스마트폰 공급 문제로 또다시 마찰을 빚어 갈등은 겉잡을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삼성전자가 단말기 공급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CJ헬로비전이 삼성전자 ‘갤럭시 넥서스’를 출시한다고 발표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것이 향후 휘몰아 칠 ‘형제의 난’의 전초전이었던 것일까.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주를 잇고 있다.

경영권을 둘러싼 형 이맹희와 동생 이건희간의 앙금의 역사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2세대의 갈등이 3세대인 이재현-이재용으로 그 불씨가 옮겨 붙는 건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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