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당신들의 천국
"나의 연인 J에게" - 당신들의 천국
  • 김충교
  • 승인 2012.02.13
  • 호수 8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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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을 앞두고 정당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지고 있습니다.

새 인물들을 영입하고 공천심사를 위한 진용까지 갖추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이라는 이름의 정당도 등장했습니다.

한나라당은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의지를 다지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감동은 없습니다.

민주통합당은 벌써 샴페인을 터뜨리는 분위기입니다.

정부 여당이 죽을 쑤고 있으니 자만하고 있는 듯합니다.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양상마저 감지되고 있습니다.

여야는 모두 복지를 핵심 이슈로 들고 나오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마저도 좌클릭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입니다.

이들 정당들이 내놓는 복지안을 보자면 어깨가 들썩여집니다.

멀지 않아 천국에 살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모두 국민만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겠다고 합니다.

태평성대에 천국이 임박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느낌은 와 닿지 않습니다.

고뇌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제 살을 깎는 희생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말의 잔치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정치권을 싸잡아 매도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현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해법을 찾는 정치인도 많을 겁니다.

진정성을 가지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도 있겠지요.

사실 각자 기치를 내걸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바탕에는 선한 의지가 깔려 있을 겁니다.

정치에 발을 담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한 의지에 기초합니다.

중간에 희석되고 퇴색되더라도 초심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어차피 선택은 유권자인 국민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정치인 또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가지는 선한 의지가 타당한 것인가.

일방적인 개인적 가치기준에 기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유명한 소설이 있습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소설은 소록도 나환자촌이 배경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픽션을 가미한 것으로 선한 의지의 실체를 파고듭니다.

주인공은 이곳에 나환자들의 천국을 건설하려 합니다.

나환자들을 위한 그의 마음은 애틋하고 선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 나환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타자와의 구체적인 교감 없이 선한 의지에만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설정한 천국을 꿈꾸었기에 천국은 의미를 잃었습니다.

타자들과의 교감이 전제되지 못한 까닭입니다.

새삼 <당신들의 천국>을 들먹이는 이유가 궁금할 겁니다.

뉴스를 서핑하다가 우연히 설악산 신흥사 조실 오현 스님의 말씀을 만났습니다.

팔십 노구의 오현 큰 스님은 동안거를 마친 선승들을 상대로 말씀하셨습니다.

대장경의 글과 말속에 무슨 진리가 있느냐.

산문을 나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진리를 찾아라.

노숙자들의 가슴 아픈 삶 속에서 진리를 찾아라.

불가에서 동안거란 말 그대로 겨울집중참선수행을 말합니다.

선승들은 90일 동안 가부좌를 틀고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정진합니다.

불가에서는 득도를 위해서는 먼저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큰 스님의 매서운 죽비소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절집 안에 무슨 진리가 있느냐.

절집은 승려들의 숙소일 뿐이다.

당신들만의 천국을 만들지 말라.

세상에 함께 천국과 극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세상 속에서 진리를 찾고 세상과 함께하라.

상대는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고 이제 막 몸을 일으킨 선승들입니다.

오현 스님은 동안거의 끝을 알리는 해제법회의 법주입니다.

그저 선승들에게 덕담이나 하고 용매정진을 격려만 해도 그만입니다.

아니면 애매모호한 화두를 던지고 선문답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스님의 위치에 걸 맞는 모습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현 스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깨달음을 얻으려 하기 보다는 세상 속으로 나가라 했습니다.

노망기 있는 노승의 설법보다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동해바다의 파도소리, 설악산의 산새소리, 계곡 물소리를 듣는 게 낫다는 겁니다.

오현 스님은 일갈합니다.

진리는 없다.

절마다 교회마다 방송마다 신문마다 진리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진리를 말하는 소리는 시끄러운 소음이 된 지 오래다.

종교라는 보호막에 숨어 선한 의지만을 말하지 말라는 뜻일 겁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천국을 외치고 극락을 기원해도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서로 교감 없는 소통은 메아리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들의 천국>은 당신들만의 것이 될 수밖에요.

<당신들의 극락> 역시 당신들만의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같은 오현 스님의 일갈은 그저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그동안 선문답 보다는 실천에 앞장서온 실천가의 삶을 살아왔더군요.

민주화 운동을 하다 고난을 겪는 이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왔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다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유가족과도 인연을 맺었습니다.

지난 해 작고한 이소선 여사가 대표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집안이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일도 했습니다.

이론가가 아니라 실천가였습니다.

의례적인 법문 대신에 추상같은 일갈을 들은 선승들의 기분은 어떠했을까요.

면벽을 하고 화두만을 쫓던 자신을 돌아봤을 겁니다.

실체도 없는 깨달음을 위해 몰입한 자신을 질책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만의 극락을 찾았던 이기심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을 겁니다.

물론 불가의 선 수행은 진리를 추구하는 한국불교의 전통방식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고승들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기여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오현 스님의 말씀은 조용하지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천국이나 극락은 누구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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