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
"나의 연인 J에게"-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
  • 김충교
  • 승인 2011.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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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충교 일요신문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이라는 분이 그랬다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외로워서 죽었다고.
서울에 살다가 임기가 끝나고 지방으로 가니 외로워서 그랬다고 말입니다.
퇴임 후 사저가 서울이 아닌 경남 진영이어서 죽었다는 겁니다.
이건 그냥 말도 아니고 기가 막힐 뿐입니다.
실제로 변방에 사는 입장에서 듣고 보니 이게 뭔 소린가 싶더군요..
지난 주말 승용차로 집에서 40여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외식을 했습니다.
목적지로 가던 중 이었습니다.
아내가 불쑥 이젠 서울에서 못 살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복잡하고 답답해서 생각만 해도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서울 태생으로 40여년 넘게 서울에서 산 토박이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만큼 변방생활이 주는 심적 여유가 크다는 것이겠지요.
사실 처음엔 조금 외롭기도 했습니다.
아는 사람과 장소가 거의 없어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탁 트인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너무 좋았습니다.
서울이라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해서 꿈에서라도 죽을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차창 밖을 내다보며 아내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만한 사람이 없다고.
어떻게 시골에 가서 살 생각을 했을까 하면서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없는 그에 대한 아쉬움이 배인 목소리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서울 내곡동으로 화제가 옮겨졌습니다.
논란 속에 원점으로 돌아간 이명박 대통령의 사저 터가 있던 지역입니다.
아내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고 저 역시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외식에 대한 기대로 들떴던 분위기가 가라앉더군요.
흥분한 목소리는 탄식이 되었고 욕설이 튀어나오기 일보직전까지 갔습니다.
결국 ‘에이!’라는 말로 얘기를 끝냈습니다.
그런데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이라는 분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매도하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계층이나 이념, 지역과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한다는 취지로 설립됐다더군요.
그것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09년입니다.
아무리 물러서 생각해도 그런 기관의 수장이 할 말이 절대 아닙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대통령의 사저 문제를 가지고 논란이 많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는군요.
그것도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이 대통령 사저 터가 다시 들썩이고 있는 시점에 말입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청와대는 제3의 사저 터를 물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청와대는 내곡동 논란 후 원래대로 논현동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울 강북지역과 경기도 지역 등에서 새로운 장소를 찾고 있다는 겁니다.
도무지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퇴임 후에도 여전히 서울에 살았더군요.
망명길에 오른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국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명을 다하지 못한 박정희 전 대통령도 있습니다.
이외의 모든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 후 본거지가 서울이었습니다.
아직 생존해 있는 김영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그렇습니다.
모두 태어난 곳은 말 그대로 변방인데도 말입니다.
이들은 대한민국 중심인 서울에 살면서 여전히 건재합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권을 향해 불쑥불쑥 한 마디를 던지기도 합니다.
본인은 정치훈수라고 할 지 모르지만 듣기에는 노추에 가깝습니다.
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후 낙향은 빛이 나는 일이었습니다.
호불호를 떠나 전직 대통령이 고향마을에서 유유자적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습니다.   
손녀딸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모습엔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허름한 마을 구멍가게에서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기도 했지요.
담배를 피우던 모습은 노동에 지친 농부의 휴식을 보는 듯 했습니다.
밀짚모자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대로 그렇게 살아가면서 노후를 보내려니 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퇴임 후 저렇게 사는 대통령을 볼 수 있구나.
평화로운 전원의 경치와 잘 어울리는 풍경이라 여겼습니다.
정치적 공과는 역사에 맡겨두고 쉬시라.
그동안 애 많이 썼으니 그런 정도의 휴식은 당연하다.
언젠가 얘기했지만 저는 노 전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80년대 후반 한때 유행했던 비판적 지지자라고나 할까 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봉하마을에서의 그의 생활상은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서거이후 매체를 통해 보게 된 영상과 사진은 가슴을 아리게 했습니다.
당시 그가 남기고 간 생전모습은 신동엽 시인의 바람과 오버랩 됐거든요.
신동엽 시인은 지난 1968년 11월 <월간문학> 창간호에 <산문시(1)>을 발표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든가 뭐라고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중략)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
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
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중략)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물론 원작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스칸디나비아라고 되어 있는 것을 제가 살짝 바꿔 놓은 겁니다.
상상이고 기대며 희망이기도 하지만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전혀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통령은 퇴임 후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과오가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설사 과오가 없었다 할지라도 후임자는 전임자를 흔듭니다.
계승 발전시켜야 할 가치마저도 깡그리 뭉개기 일쑤입니다.
권력의 속성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자리를 향한 이전투구가 계속되고 있으니 참 희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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