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사막의 신기루
"나의 연인 J에게"-사막의 신기루
  • 김충교
  • 승인 2011.11.28
  • 호수 8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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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 일요신문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포연이 가득한 전쟁터를 보았습니다.

눈과 귀를 막고 허공을 향한 빈 손짓이 난무합니다.

보고 또 보아도 늘 별 감흥이 없습니다.

한 두 번 본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삿대질과 몸싸움이 가득합니다.

소식을 전하는 앵커의 목소리가 졸리게 느껴집니다.

사막을 가 본 적은 없지만 헷갈리는 신기루를 보는 것 같습니다.

눈에 아주 익숙한 장면이지만 항상 비현실적인 느낌을 줍니다.

대한민국 국회의 풍경입니다.

똑같은 색의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셔츠와 타이를 풀어 제낍니다.

술에 취한 남자가 흐느적대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슬로우 비디오와 비슷합니다.

마이크를 목에 걸고 테이블에 오른 취객 같습니다.

두루마리 화장지를 이마에 두르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착각이 생깁니다.

의사봉을 손에 쥔 국회의장 석 주변에서 국회의원들이 연출한 풍경입니다.

누군가는 끌고 누군가는 끌려가고 있습니다.

기습이니 날치기니 하는 수식어는 무감하게 느껴지는군요.

한미 FTA는 그렇게 처리되었습니다.

공방은 있었지만 왠지 머쓱한 기분이 듭니다.

여와 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다고 하는데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보였거든요.

뒤바뀐 처지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는 여야 의원들이 많았습니다.

각자 해명은 천연덕스러웠습니다.

저간의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뻔뻔스럽게 느껴지더군요.

사실 개인적으로 FTA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총론은 어느 정도 짐작하겠는데 세세한 각론은 모른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말 그대로 자유무역협정입니다.

그런데 자유무역이란 경쟁이란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겁니다.

시장경제 하에서 경쟁이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기본에 속하는 상식이지요.

하지만 FTA가 말하는 경쟁은 문제가 있습니다.

덩치에 따른 체급은 상관하지 않고 붙어 보라는 겁니다.

어찌됐든 이기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남으려면 이기라는 거지요.

덩치도 있고 기술도 있는 씨름선수가 있습니다.

반면 왜소한 체격에 씨름이라곤 해보지도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맞붙어서 승패를 가리라고 합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게임이 공정하다고 주장합니다.

왜소한 체격을 가진 사람은 보호받아야 마땅합니다.

트레이닝을 통해 몸집을 불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체격도 갖추고 기술도 익힐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합니다.

그리고 체급에 맞는 선수와 맞서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정한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란 사람이 사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약육강식이 진리인 정글의 법칙을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국민은 무엇이고 국가는 왜 존재하는 건가요.

FTA가 대세이고 피할 수 없는 선택이란 주장을 전면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성립될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템포는 조절해야 합니다.

시간을 두고 밀고 당기면서 손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정부여당은 골치 아픈 일은 후딱 해치우자는 심산인 모양입니다.

한미 FTA도 일종의 성과로 여기는 듯합니다.

반대급부를 선전하며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OECD 국가, G20와 같은 겉치레에 올인하는 버릇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번영을 숫자로 자랑하기에 급급합니다.

국민들은 정부에서 떠들어대는 자화자찬에 지친지 오래입니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정도입니다.

현상에 걸 맞는 풍요로운 삶은 항상 사막의 신기루 같습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멀어지고 있거든요.

정부의 청사진과 실제 삶은 어긋나 있습니다.

설사 수입이 늘어도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내 집 장만을 위해 이를 악물어도 집값은 저 멀리 달아나 있습니다.

큰 맘 먹고 집을 장만해도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고 맙니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취업난은 이제 이슈로 올리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반값 등록금 공약은 잊혀진지 오래입니다.

오히려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학생들을 백안시 합니다.

빨간색의 옷을 입히며 좌파로 몰아갑니다.

공짜를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이러다가는 사회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에 이상이 생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젊은이들이 정상적인 사회시스템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조짐들이 이곳저곳에서 엿보이기도 합니다.

사회 이슈에 대한 젊은 네티즌들의 반응에 체념이 묻어 있는 느낌이 있습니다.

욕설 섞인 비난에도 허무가 배어 있습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고 분석입니다.

그러면서도 때론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기성세대와 확실히 선을 그으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게 분명하거든요.

적지 않은 젊은이들은 우리나라 사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회의하고 있는 듯합니다.

발만 담근 채 몸까지 빠질 것인지 고민하는지도 모릅니다.

쌍팔년도를 살아온 기성세대들은 그런 그들이 이해가 안되겠지요.

한미 FTA 관련 국회영상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밀고 당기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무척 낯설다.

가슴 속에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하고 있다.

저들이 지금 왜 저러고 있는 것인가.

앵커의 멘트를 지우면 기가 막힌 무언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죽자고 달려드는 저 모습은 가짜가 아닐까.

신기루 같은 젊은이들의 생각이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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