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조씨家의 경영행보가 심상치 않다.
10개월 넘게 정리해고 문제로 파업이 이어진 한진중공업 사태가 지난 10일 노사의 극적인 합의로 마무리됐다. 사태 해결과정에 ‘희망버스가 출범했고, 국회까지 나섰다.
3남 조남호 회장이 이끄는 한진 사태가 끝나자마자 한진家의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 이끄는 대한항공과 삼남 고 조수호 회장 부인 최은영 회장이 이끄는 한진해운에서 각각 희망퇴직제와 임금삭감제를 실시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한진가 문제에 대해 노동계에선 ‘희망’이란 이름을 ‘절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희망에는 미래가 있지만 퇴직은 절망을 뜻한다는 것.
대한항공, 경영부진으로 희망퇴직 실시
대한항공이 고유가, 경기부진으로 영업환경이 악화된 대한항공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지난 10일, 희망퇴직제 실시를 통해 100명이 퇴직한 사실이 13일 알려졌다. 희망퇴직은 2006년 80여명이 회사를 떠난 이래 5년만이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18일에 40세 이상, 근속 15년 이상 된 직원을 대상으로 이달 말까지 희망퇴직제를 실시한다는 공고를 냈다.
희망퇴직을 한 직원들에겐 퇴직금 이외에 정년 잔여기간에 따라 최대 24개월 월급과 퇴직 후 최장 2년 동안 자녀 학자금이 지원된다. 다만 운항승무원과 해외근무자, 해외현지 직원 등은 희망퇴직제 대상자에서 제외시켰다.
현재 대한항공 직원은 총 1만7500여명이다. 이중 일반직(일반관리, 재무, 영업, 운송 등)이 4600명, 승무직(운항승무 2100명, 객실승무 3700명)이 5800명, 기술직(항공·생산기술, 통신시설, 운항관리 등) 5000명, 해외 현지 직원이 1700명, 기타(전산, 연구, 조리, 기타) 400명이다.
이번 퇴직인원은 전체 인원의 0.6%에 불과하다. 대부분 직급과 급여가 많은 중견직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와 증권계에선 이번 인사에 인사적체 해소와 생산성 향상을 이유로 보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270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대규모 신규 채용이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 희망 퇴직을 실시함에 따라 평균 근속연수가 낮아지고 인력 생산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3세 경영을 위한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대한항공은 고 조중훈 회장(창업주)-조양호 회장(2세)-조원태, 조현아, 조현민(3세)로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에 입사하여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3세들은 2030세대이다. 신규채용은 이들을 위한 배려차원의 인사라는 분석이다.
증권업계에선 인력 구조조정은 실적은 좋은데 영업이익 감소와 부채 때문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보고 있다.
대한항공의 실적은 화려하다.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올 상반기 143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3분기 영업이익을 놓고 봤을 때 전년 동기대비 46.5% 감소한 2393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반토막 수준이다. 당기순손실도 524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적자 전환했다. 올 영업이익은 당초 계획한 1조 2800억원에서 크게 줄어든 6000억원 내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409.1%이다.
대한항공은 “구조조정이 아니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시행되는 제도로 희망퇴직이란 말 그대로 본인이 희망해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희망퇴직이라고 하지만 직원들의 반발은 거세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최대 실적을 냈다. 인금 인상은 4%에 그쳤다. 당시 노조는 회사에 9.5%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불황기(2008~2009년)에도 연봉을 동결해도 참았다. 열심히 해서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돌아온 것은 별로 없다. 물가 인상률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쥐꼬리만큼 올랐다”면서 “최근엔 회사사정이 나빠졌다며 희망퇴직제까지 시행됐다. 직원들 사기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이어 “기업이 희망퇴직 명분으로 직원을 회사 밖으로 내쫓을 것이 아니라 기업 경영에 다른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했다.
한진해운, 회장 등 임원 임금 삭감
한진해운은 상황은 대한항공보다 좋은 편이다.
기업의 경영실적이 악화되자 최은영 회장, 김영민 사장 등 임원 51명이 이달부터 임금 10%를 회사에 반납하기로 한 것. 이는 회사 경영을 잘 못한데 대한 책임이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리며 호황을 누렸지만 올해 3,4분기 총 5005억원에 당기순순실을 기록한 탓이다.
3분기는 컨테이너 성수기임에도 불구, 선박공급 과잉에 따른 운임세 약세로 실적이 부진, 재무구조 악화가 지속되고 있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261.2%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300%를 넘겼다. 해운업종의 특성상 부채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해도 높은 수준이라는 것.
이에 대해 한진해운 관계자는 “어려울 때 함께 허리띠를 졸라 매자는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노동계와 재계 반응 민감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의 문제에 대해 재계와 노동계는 민감한 반응이다.
연말 인사철을 앞두고 노동계 눈치를 보던 대기업들에선 대한항공의 추이를 보면서 구조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계열사들이 14일, 1000명 가량을 희망퇴직 형태로 감축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정했다. 올해 실적이 나쁜 LG등 다른 기업으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노동계에선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이다.
노동단체의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희망퇴직는 노동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상생정책으로 눈치를 보던 기업들이 대한항공의 영향을 받아 구조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희망퇴직이 아니라 노동자에겐 절망퇴직이나 다름없다”면서 “경영환경과 경제여건이 나빠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상생경영이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