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기억의 저편
"나의 연인 J에게" - 기억의 저편
  • 김충교
  • 승인 2011.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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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 일요신문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새삼 기억이라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뜬금없이 갑자기 무슨 기억이냐고 할 겁니다.

기억이라는 단어와 의미를 떠올린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한 달 전쯤입니다.

뉴스검색을 하다가 참 희한한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어느 30대 가장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가방제조업을 하는 A씨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A씨가 순간적으로 기억을 잃은 것은 일요일 오후 6시입니다.

아마도 일 때문에 일요일인데도 출근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당시 경부고속도로 신갈IC 부근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조금 있다가 귀가하겠다고 집에 전화를 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는 이 전화를 끝으로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가족은 애를 태우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습니다.

금방 돌아오겠다고 한 사람이 감감 무소식이니 별 생각을 다 했을 겁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최종 통화가 이루어진 신갈 IC 부근에 대한 수색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서울 쪽과 수도권 인근으로 범위를 확대해도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의 걱정과 안타까움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겠지요.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실종된 지 이틀이 지난 후에 A씨가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것도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가 찾아온 경찰서 소재지가 실종지역에서 400km나 떨어진 지역이었다는 겁니다.

부산에 위치한 영도경찰서였습니다.

그는 영도경찰서를 찾아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전혀 기억이 없다며 울먹였다는 것입니다.

경찰도 처음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찾아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하니 황당했겠지요.

장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겁니다.

별 미친x 다 보겠다고 했을 지도 모릅니다.

결국 경찰은 지문확인과 실종자 검색시스템 조회를 했습니다.

A씨는 분명 실종자로 신고된 사람이었습니다.

경찰은 전국 실종자들을 일일이 확인해 가족을 찾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내려온 가족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색한 표정으로 아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는군요.

담당형사는 영화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혀를 찼다고 합니다.

실제로 담당형사는 하루 종일 가슴이 멍멍 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더군요.

과연 그가 지금은 기억을 찾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이럴 때면 현장에서 발품을 팔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아직 현장에 있었다면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고자 했을 것 같거든요.

이런 영화와 같은 일을 그냥 넘기지 않은 기자의 눈썰미에 찬사를 보냅니다.

매체를 다 훑은 것은 아니지만 이 기사는 한 매체에만 나왔거든요.

사실 이 이야기를 통해 기억 운운하는 것은 참 신기해서 입니다.

이와 아주 유사한 소재를 담은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에 실린 작품입니다.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라는 단편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내용은 기이하고도 참 희한합니다.

소재 자체가 ‘있을 것 같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라고 할 만하거든요.

소설의 내용은 실종과 기억에 대한 것입니다.

중산층의 한 부부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부부입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전형적인 도시인입니다.

아파트 같은 동에 남편의 어머니가 홀로 살고 있습니다.

어느 일요일 남편은 자신이 살고 있는 26층에서 24층 어머니를 뵈러 갑니다.

오전 중 잠시 잠깐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24층에서 26층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그는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아내는 사설탐정을 고용하고 조용히 남편을 찾습니다.

시끄럽고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도시 여성이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결국 남편을 찾게 됩니다.

남편이 발견된 곳은 전혀 엉뚱한 장소였습니다.

20일이 지난 후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라질 당시와 똑같은 옷을 입은 채였습니다.

남편은 20일 간의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20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소설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짐작은 가능합니다.

평소 남편은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싫어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엘리베이터는 갇힌 공간입니다.

어쩌면 현대 도시인들의 생활을 드러내주는 상징일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다는 것은 일상에 갇혀있다는 얘기도 될 겁니다.

사실 현대 도시인들의 삶은 틀에 짜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돌아가는 쳇바퀴처럼 건조한 반복입니다.

그러니 답답할 수밖에 없고 탈출욕구를 갖는 것이지요.

내면의 욕구와 현실은 항상 어긋나 있으니까요.

아마도 작가는 억압된 내면의 욕구를 표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는 24층에서 26층으로 돌아오면서 불현듯 내면의 욕구를 보았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사라진 겁니다.

내면이 시키는 대로 살고 싶은 욕구가 그를 억제하지 못했던 거지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상에 순응하면서도 항상 일상을 벗어나려 합니다.

실제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봤자 상처만 입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기억하지 못할 뿐 우리는 매일 실종되고 있습니다.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모습을 감추기도 합니다.

다만 잠깐 잠깐의 실종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A씨의 실종사건을 접하고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해서 기억에 대해 회의감이 듭니다.

기억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기억의 저편을 들여다보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단지 내일의 기억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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