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아버지의 마음
나의 연인 J에게 - 아버지의 마음
  • 김충교
  • 승인 2011.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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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 일요신문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처연한 기분이 들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아들과 단 둘이 외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일부러 날을 잡아 밖에서 밥을 먹은 것은 아닙니다.

아내가 일 때문에 늦는다고 해서 귀가를 서두르려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일이 생겨 저도 약간 늦고 말았습니다.

귀가길 시간을 보니 저녁 식사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더군요.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때 꺼리도 마땅찮으니 집근처 식당에서 한 끼 때우자고.

가족끼리 가끔 가는 돼지갈비 집에 마주앉았습니다.

음식주문을 하고 평소처럼 소주 1병을 시켰습니다.

고기반찬에 반주 한 잔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아들 역시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시비를 거는 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아빠, 나도 탄산음료 끊었는데 술 좀 끊어보지.

술과 담배는 몸에 나쁜데 아빠는 둘 다 하잖아.

살짝 찔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제가 아닙니다.

몸에 나쁜 것은 사실이지만 정신건강에는 좋을 수 있어.

군색한 변명에 억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 나가면 말발이 딸릴 것 같아 “한번 생각해 볼게”하고 급히 수습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아들의 말에 그만 처연해져 버렸습니다.

아빠들이 술 마시는 것은 눈물을 마시는 것이라던데.

“아빠도 그래?”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얘긴가 하고 잽싸게 머리를 굴렸습니다.

워낙 뜬금없는 소리라 순간 당황하고 말았거든요.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을 아느냐고 되묻더군요.

잠시 머리를 갸우뚱했지만 잘 모르겠더라구요.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도 그렇고 시인 김현승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시의 내용이 대충 어떤 것이냐고 묻자 “아빠가 찾아 봐”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잠깐 동안 김현승은 동시작가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아는 시이고 시인이니까요.

다음날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검색창에 김현승 시인을 치고 뜨는 화면을 보면서 큰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시인이었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로 시작하는 시를 아실 겁니다.

‘낙엽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그 유명한 <가을의 기도>입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시일 겁니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지만 혼자 많이 무안해졌습니다.

새삼 옛 시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건조함에 가슴이 쓰렸습니다.

시 한 줄도 읽지 않고 사는 삶이 남루하게 느껴지더군요.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인데 말입니다.

술은 아빠들이 눈물을 마시는 것이라는 대목이 나온다는 시를 찾아봤습니다.

아버지이기도 한 김현승 시인은 <아버지의 마음>을 담담하게 말합니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중략)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일찍 여읜 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합니다.

그리움이나 원망 따위를 말하기 어색할 정도이니까요.

단편적인 기억들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가물가물해 사실여부가 확실치 않은 게 대부분이구요.

그래도 확실한 기억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어디를 가던 길인지는 몰라도 아버지 손을 잡고 논둑길을 걸은 기억이 있습니다.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든든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마 아버지라는 존재는 김현승 시인의 말처럼 쓸쓸함이나 외로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삶 자체가 쓸쓸하고 외로운 것이겠지요.

어디 아버지들만 그렇겠습니까.

그렇지만 아빠들이 마시는 술은 눈물이라는 말은 다 맞지는 않습니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아빠들도 있으니까요.

술은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마십니다.

즐거워서 한 잔, 열 받아서 한 잔이 술꾼들의 전매특허입니다.

물론 술잔에 회한이 조금씩 묻어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머쓱해지면서 한편으로 두려워지는군요.

어린 아들이 벌써 아버지의 자리가 갖는 무게에 생각이 미쳤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평소 비쳐진 모습을 반추하고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세상 부모들의 마음은 다 같을 것입니다.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다를 바가 없으니까요.

해서 삶이 힘에 부쳐도 내색하지 않고 버텨냅니다.

하긴 달나라 얘기 같은 일도 있긴 하더군요.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건립 논란이 바로 그렇습니다.

백지화 발표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는 뭔가 석연치 않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는 대통령인 아버지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인 시형 씨와 경호처 간에 이뤄진 일이라는 겁니다.

전체 거래금액이 52억 원에 이르고 시형 씨가 부담한 것은 11억 2천만 원이라고 합니다.

시형 씨는 이중 5억 2천만 원을 논현동 사저를 담보로 대출받았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어머니인 김윤옥 여사의 지분만을 담보로 했다고 하네요.

퇴임 후 대통령이 자연인으로 돌아가 거주할 사저입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대통령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일이 추진됐다는 겁니다.

시형 씨는 ‘아버지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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