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껍데기는 가라
"나의 연인 J에게" - 껍데기는 가라
  • 김충교
  • 승인 201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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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skyeapril@naver.com)일요신문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시인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 했습니다.

알맹이만 남으라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그만큼 알맹이가 없다는 얘기도 됩니다.

젊은 시절 저는 그의 열혈독자였습니다.

7080시대에 20대를 거쳤다면 거의 그랬을 겁니다.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저항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저는 그를 ‘대한민국 최고의 서정시인’이라고 평가합니다.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가 자꾸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얼마 전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국민참여경선이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박원순 변호사가 단일후보로 결정됐습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이긴 것입니다.

정당은 조직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선거 때 후보자들이 정당공천을 받으려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런 조직을 가진 정당후보가 경선에서 패했습니다.

해당 정당에게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당으로부터 ‘불임정당’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도 도리가 없는 일이지요.

유권자들이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고 있는 겁니다.

사실 민주당은 그동안 정체성이 모호한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정부여당의 막무가내 식 질주에 브레이크조차 걸지 못했습니다.

그저 떨어지는 감이나 받아먹으려는 심사나 내보였습니다.

인기가 떨어지는 정부여당을 비난하며 반사이익이나 챙기려 했습니다.

속으로 대안은 자신들 뿐이라고 미소 지었을 지도 모릅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보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사실 일반 국민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박영선 후보에게는 찬사를 보냅니다.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인 아름다운 승복이 보기 좋았습니다.

당내 예선을 거쳐 치고 올라온 박 의원의 기세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정치적 성향이나 대응방식도 긍정적인 측면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민주당이 가지는 한계를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민주당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일반 국민들의 의식은 저만치 가 있는데 따라갈 생각을 못하는 겁니다.

따라만 가도 본전치기는 할 텐데도 천하태평이었습니다.

오히려 아직도 자신들이 국민들을 끌고 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부여당과의 차별성을 주장합니다.

소가 웃을 일입니다.

이번 참여경선투표장의 분위기는 이채로웠다고 전해집니다.

정당의 전당대회와는 사뭇 달랐다는 거지요.

일사분란하고 경직된 구호나 외침은 빛을 바랬다고 하더군요.

당원들은 당대표의 등장에 ‘손학규 손학규’를 외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반국민들은 이 구호를 ‘김어준 김어준’으로 받았다고 하네요.

이날 그는 경선장에서 사인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김어준이 누구냐구요.

그는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기득권층에게 펀치를 먹이는 스타입니다.

일명 딴지일보 총수로 잘 알려진 그의 일갈은 촌철살인이지요.

최근 인터넷 라디오 패러디 ‘나는 꼼수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진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손학규와 정동영이라면 모를까 난데없이 김어준이라니 조금 이상합니다.

바로 이 점이 기성 정치권이 일반국민들의 의식을 따라잡지 못하는 핵심입니다.

손학규 대표는 민주당 대권 1순위 후보입니다.

물론 당내에도 경쟁자가 있습니다만 현재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김어준 총수는 정치권 진입은 꿈도 꾸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정치권인사들의 잘못된 의식에 딴지를 걸뿐입니다.

때문에 ‘김어준 김어준’을 연호한 것은 민주당을 향한 확실한 야유입니다.

딴지걸기 식의 장난기가 섞인 비아냥거림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을 독해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의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국민의식이 진화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정치권을 향해 힌트도 주었고 학습도 조언했습니다.

오피니언 리더들에게도 간접적인 언질을 주었음은 물론이구요.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있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새삼 광우병 운운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여지는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트렌드의 변화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니까요.

대기업에 중간간부로 있었던 후배가 있었습니다.

그는 소위 운동권 출신입니다.

그는 당시 거의 매일 촛불시위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몸은 속세에 담고 있지만 여전히 이상을 꿈꾸는 스타일이거든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촛불시위가 가라앉았을 즈음이었습니다.

술자리에서 그가 말했습니다.

촛불시위 현장에서 한없는 외로움을 느꼈다고.

그는 시위라고 하면 한판 붙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밀고 당기며 진압부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익숙했을 테니까요.

시위현장에서 그는 할 일이 없었다고 한탄했습니다.

자전거에 엠프를 싣고 나와 노래판을 만들더랍니다.

춤판과 토론이 즉석에서 이뤄지고 그것을 즐기는 모습에 혼란스러웠다고 한탄하더군요.

삼삼오오 모여드는 그런 젊은이들을 보며 묘한 소외감과 질투가 느껴졌답니다.

서울 강남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아가씨들.

그런 쭉쭉빵빵 아가씨들이 플래카드 뭉치를 어깨에 이고 오더랍니다.

아들놈이 저렇게 크면 어쩌나 싶었던 모습의 젊은이들이 즐비했구요.

찢어진 청바지 정도가 아니라 힙합에 레게 머리는 기본이었답니다.

그들이 비록 덜 진지해 보였지만 후배는 넘치는 생명력을 느꼈다고 부러워했습니다.

형, 이젠 트렌드가 달라졌어.

젠 체하고 고민하는 척 하는 건 더 이상 통하지 않아.

미국산 쇠고기가 중요한 게 아닐 지도 몰라.

위정자들의 억지와 자기기만은 곧 바닥이 드러날 거라구.

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면 큰 일이 날 수도 있겠어.

우선 우리부터 정신차려야 할 거 같구.

후배가 그날 술자리에서 뱉어낸 말의 의미를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모든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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