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옹’ 세금폭탄 피해 지분정리
‘눈 가리고 아옹’ 세금폭탄 피해 지분정리
  • 박수진 기자
  • 승인 2011.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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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 부의 승계 ‘일감 몰아주기’ 논란

“내 세금을 올려주세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비즈니스 쇼셜네트워킹사이트 링크트인과 함께 자리한 ‘가상 타운홀 미팅’에서 한 남자가 말했다. 그는 구글의 전 직원 더글러스 에드워드이다. 펠 그랜츠(Pell Grant, 연방정부의 무상급식), 사회간접자본, 직업훈련프로그램 등에 투자하는 나라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세계적인 부자인 워런 버핏, 릴리안 베탕쿠르 등도 정부의 재정 적자 해소를 위해 부자 증세를 요구했다.

부자증세는 재정적자를 줄이는 효과는 실제 크지 않다. 하지만 부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으로 국민 모두에게 공평한 성공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정치·사회적 효과가 크다.

한국은 어떤가. 전경련 등 굵직한 재벌들이 감세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 오너 일가들의 ‘일감몰아주기’ 형태에 대해 과세에 나서자 ‘세금폭탄’을 피하기 위해 지분정리에 나섰다. 이것이 대한민국 재벌의 현실이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는 2011년 세법개정안에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방안’을 포함키로 했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방안’이란 일감을 몰아 받은(매출액 30%) 계열사의 지분을 3~5% 이상 소유한 기업에게 증여세 등을 부과하는 것.

정부는 지난 2004년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방안’을 추진하려 했으나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흐지부지 끝났다. 이어 2007년에는 과세 방안을 검토하는 단계까지 진입했으나 대기업의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다.

MB정부는 국민 모두에게 공평한 성공기회를 주기 위해 재벌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단호한 입장이다. 이 때문에 재벌들도 편법적인 부 상속 방법인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대기업, 세금폭탄 피해 지분정리

정부의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방안’은 추진 할 당시부터 많은 허점이 제기 됐다. 결국 일부 대기업의 계열사 지분 정리를 통해 올해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주)영풍의 공시에 따르면 장형진 회장의 세 자녀인 장세준·세환·혜선씨가 보유하고 있던 비상장사 에스메텍 지분34%(13만6000주) 전량을 최근 지주회사격인 영풍으로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27억원. 그동안 에스메택은 계열관계에 있는 영풍과 케이지엔지니어링 등으로부터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60%에 달하는 등 지원성거래에 의심을 받아 왔다.

동국제강그룹에서 또한 지분정리가 있었다. 동국제강그룹의 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사장 형제는 지난 24일 자신들이 최대주주였던 비상장시 DK유엔씨 지분 중 각각 15.1%(2만7369주), 14.2%(2만5689주)를 67억원에 동국제강에 매각했다. 이로써 DK유엔씨 보유지분 합계는 59.2%에서 30%로 축소됐다. 반면 동국제강은 51.9%로 확대됐다.

지난 8월, 계열사인 DK유엔씨와 174억5천만원, DK에스앤드와 175억1천만원 등 총349억6천만원 상당의 상품·용역거래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 올해 동국제강의 상반기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계열사를 포함한 연결 재무제표 기준이 상반기 매출액 4조5천764억원, 영업이익 3천408억원, 당기순이익2천575억원, 영업이익률 7.4%를 달성하는 등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 형태를 보였다.

처벌은 기업의 몫, 이익은 오너의 몫?

영풍, 동국제강 등 재벌들의 지분정리 속셈은 따로 있다.

일각에선 정부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방침이 정해지자 세금폭탄을 피하기 위해 ‘눈가리고 아옹식’ 지분정리라는 분석이다.

재벌의 지분 정리에 본질은 편법적인 부의 상속 수단인 일감몰아주기가 철퇴를 맞게 되고, 여기다 과세로 이어질 전망이어서 미리 ‘세금폭탄’을 막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일감몰아주기는 회사기회의 유용에서 시작된 것이다. 회사가 가져야 할 기회를 오너 일가가 투자한 회사가 가져갔다. 특히 일감몰아주기로 기업이 성장했다. 이는 주주들에 이익을 오너일가가 훔쳐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과세 방침이 정해지자 지분정리를 통해 세금폭탄을 막고자 하는 것은 한국 재벌들에 도덕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에 발표된 경제개혁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9개 대기업의 지배주주일가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증식한 규모는 10조원에 달한다. 그만큼 일감몰아주기가 재계에 만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허점투성이 과세방안 실현 가능성 낮아⋯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과세 정책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19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과세방안’은 편법 상속을 막는데 효과가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일감 몰아주기는 행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총수 일가가 수혜 기업 지분을 과다 보유하는 것이 문제”라며 “총수 일가 지분을 줄이면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비율도 감소한다”고 말했다.

이어 “총수 일가 지분을 줄이는 데 과세의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정부 과세안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은 “일감몰아주기 과세가 실효성이 없고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며 “일감을 몰아 받은 기업의 주식가치가 계열사의 일감몰아주기에 의한 것이라고 명확히 증명하기 어렵고 또한 같은 이익에 법인세와 배당소득세를 부과해 이중과세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성곤 의원도 “현행법상 과세대상, 과세표준, 납세의무자 등 과세요건이 미비한 상태이고 실무적으로도 정상적인 경영으로 늘어난 이익과 일감몰아주기로 일어난 이익을 구분하기가 어려워 실제 부과시 논란과 다툼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질의했다.

이와 관련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문제는 2004년에 제기된 이후 너무 오래 지체됐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열리는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논란이 많은 채 일이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을 볼 때 올해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STX, CJ내부거래 철퇴

공정위도 내부거래에 대한 제재에 나섰다.

공정위는 현대자동차, STX, CJ가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29일 밝혔다.

공정위는 3개의 기업집단 소속 32개 계열회사의 대규모내부거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이행 여부 점검을 실시한 결과 미공시, 공시내용 누락, 지연공시 등 적발하여 총 8억4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한 금융관계자는 “이 3개의 회사 말고도 드러나지 않은 부당내부거래가 곳곳에 만연하다”면서 “이들도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방안’에 따라 지분정리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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