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진정성과 저돌성
"나의 연인 J에게" - 진정성과 저돌성
  • 김충교
  • 승인 2011.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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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skyeapril@naver.com)일요신문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평소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케이블TV를 통해 미국에서 방송되고 있는 범죄수사극을 자주 봅니다.

물론 최신판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케이블 TV에서는 미국에서 방송중인 드라마를 동시방영하지는 못하거든요.

주로 보는 프로그램은 <CSI>와 <NCIS>입니다.

미국 CBS 방송에서 제작한 인기 범죄수사 시리즈입니다.

항상 시청률 상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도 최근 케이블 TV에서 아류작들이 나오고 있을 정도로 인기입니다.

우리에게도 과거 한때 인기를 끌었던 <수사반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쉽게 <수사반장>의 미국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스토리 구성이나 소재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배경이 현대 미국사회이니까요.

<CSI>는 과학수사대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요.

DNA 분석을 통해 범인을 가려내는 방식이 눈에 띕니다.

<CSI>를 보면 범죄현장에 출동해서 증거물을 수집하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털끝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조사요원들의 열의가 대단하거든요.

범죄수사는 저렇게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입니다.

모든 범죄사실을 증거로 입증한다는 기본방침이 공감을 일으킵니다.

<NCIS>는 우리말로 하면 해군 범죄수사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 해군과 해병대와 관련된 범죄를 수사하는 특수수사대라고 할 수 있거든요.

같은 수사물이지만 <CSI>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군대를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아무래도 <CSI>보다 총격장면이 많습니다.

요원들 간의 시시콜콜한 얘기를 코믹하게 다루는 것도 특징이구요.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저는 <NCIS>보다는 <CSI>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CSI>요원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리얼리티가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영상으로 비쳐지는 끔찍하게 훼손된 사체들이나 그 사체들을 부검하는 장면은 끔찍합니다.

하지만 요원들의 자세나 마인드는 마음에 와 닿습니다.

특히 리더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CSI>에서 반장으로 나오는 인물들은 대체로 진정성이 있어 보입니다.

<CSI:라스베이거스>의 길 그리썸 반장은 곤충학자 출신입니다.

그는 학자답게 시골스럽지만 진지합니다.

꼼꼼하게 현장을 조사하고 자료를 체크하는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CSI:마이애미>의 호레시오 케인 반장은 폼 잡는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폼생폼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허리에 양손을 받쳐 든 모습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항상 멋진 모습인 그는 열정과 인간미가 넘쳐납니다.

<CSI:뉴욕>의 맥 테일러 반장 역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는 매력이 있습니다.

뉴욕커 답게 도시적이고 세련된 감성을 지녔습니다.

그 역시 스마트하고 심플합니다.

상념에 젖는 모습에선 속 깊은 인간미가 느껴집니다.

그리썸, 호레시오, 테일러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표시내지 않지만 부하들을 진정으로 대한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아픔도 공유하며 공감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진정이라는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거든요.

제리 브룩하이머라는 거장이 연출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CSI>요원들 간에는 소통이 존재합니다.

엄연히 상하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원활한 의사표현이 이뤄집니다.

상사와 다른 생각이나 의견도 허심탄회하게 제시합니다.

팩트를 들이대기도 하지만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자기주장을 펼칩니다.

그럼에도 상사는 절대 노여워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가능성을 열어놓고 귀 기울여 듣습니다.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주장에도 잘라 말하지 않습니다.

증거를 찾아내서 사실관계를 밝히라고 격려합니다.

<NCIS>의 리더는 보스로 불리는 리로이 제쓰로 깁스입니다.

그 역시 매력적이고 뛰어난 인물입니다.

부하들에 대한 애정도 뒤지지 않습니다.

고뇌하는 모습 역시 스토리의 탄력을 더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캐릭터는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일에 있어서는 아주 독선적인 구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며 앞으로 내달립니다.

부하들에게는 명령과 지시만 내립니다.

그것도 사실관계 보다는 자신의 감에 의존합니다.

경험과 예를 들어가며 순전히 자신의 스타일로 팀을 이끕니다.

애정을 표시하는 것도 부하들의 뒤통수를 치는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해서 부하들은 알아서 기는 데 익숙합니다.

부하들은 어떤 명령이나 지시가 떨어질 것인지 압니다.

깁스의 스타일을 훤히 꿰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부하들이 하는 대사에는 작위적인 냄새가 풍깁니다.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않은 대목이 보이는 겁니다.

가령 어떤 조사에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고 보스가 묻습니다.

그러면 부하들은 일부러 시간을 늘려 얘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10시간 걸릴 것을 하루가 걸린다고 얘기하는 식입니다.

돌아올 대답은 뻔하거든요.

10시간 내에 처리하라고 하니까요.

공기를 단축하려고 서두르면 부실공사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간혹 저는 <NCIS>를 보다가 생각합니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깁스는 한국의 건설현장에 투입해야겠다고 말입니다.

사실 제가 <CSI>나 <NCIS>와 같은 범죄수사극을 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스릴이 넘치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냥 재미로 보고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리더의 스타일이 조직의 분위기는 물론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성을 가진 리더가 수장이면 조직은 살아 움직입니다.

반면 ‘나를 따르라’는 식의 저돌성을 무기로 삼는 리더가 있는 조직은 눈치만 봅니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아래만 있고 좌우를 살피지 않는 사회나 국가는 꽉 막히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소통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살아왔습니다.

잊어버리고 살다가 이젠 숨이 막혀오고 있습니다.

막히면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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