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진보와 도덕성
"나의 연인 J에게" - 진보와 도덕성
  • 김충교
  • 승인 2011.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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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skyeapril@naver.com)일요신문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낙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돌팔매질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세상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일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서울시 교육감 얘기입니다.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곽노현 교육감이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지난해 선거 시 단일화 과정에서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이번 검찰수사가 타이밍 상 석연치 않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닙니다.

저간의 사정이야 앞으로 밝혀지겠지요.

법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남는 문제는 적지 않습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대포식 질주는 일단 제동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자칫 이번 일로 의미가 희석될 수도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학부모나 학생들이 받을 상처일 겁니다.

이제 조금은 달라질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던 그들입니다.

그런데 믿었던 진보적 리더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시 ‘그들만의 리그’였다고 한숨을 쉴 수도 있거든요.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앞서 가는 게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실수는 하는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입니다.

실수의 배경에 선의가 깔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선의도 구린 뒷거래의 냄새를 풍기면 선의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이죠.

교육감은 지자체 교육계의 수장입니다.

그의 판단과 결정이 미치는 영향력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아이들 개개인의 미래가 아닙니다.

교육은 대한민국이 향후 어떤 마인드를 가지느냐는 잣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진보와 보수 얘기를 많이 합니다.

사실 저는 진보나 보수의 개념적인 의미에 대해 확실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저 가치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겠지요.

그래도 지향점은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속도의 문제는 있겠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테니까요.

기본적으로 진보이든 보수이든 간에 상식이 통해야 할 겁니다.

독불장군식의 주의주장은 공감을 얻기 힘들 테니까요.

바탕에는 도덕성이 깔려있어야 함은 물론이구요.

특히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도덕성은 필수불가결의 요소입니다.

도덕성의 상실은 진보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결과를 놓고 따지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불가피한 과정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구요.

이번 곽노현 교육감의 일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그러더군요.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말자고.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전제가 틀렸습니다.

그렇다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윤동주 시인조차도 말했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그렇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진보입니다.

저는 진보와 도덕성의 관계를 정확하게 짚은 사람으로 박노자 교수를 꼽습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의 유일한 무기는 도덕성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도덕성이 무너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도덕성과 관련해 진보진영을 비판하는 그의 잣대는 매섭습니다.

북한의 3대 세습 문제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3대 세습은 사회주의와 무관하다.

근대적인 합리성은 검증된 사람이 통치하는 것이다.

북한은 그것까지 못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진보진영이 그에 대한 말을 못한다.

그것은 도덕성이 무덤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일부 진보진영은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말문을 닫고 있습니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며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보수진영으로부터 종북주의라는 말을 듣습니다.

박 교수는 보수 세력으로부터 ‘좌빨’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그는 도덕성을 내세워 북한의 3대 세습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과연 진정한 진보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지난해 5월 동영상을 통해 도올 김용옥 교수의 강의를 본 적이 있습니다.

김 교수의 강의 주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였습니다.

장소가 서울 봉은사였거든요.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명진 스님의 일요법회 초청강의였습니다.

당연히 불교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강의 중 김 교수는 잠깐 참여정부시절 북한을 방문했던 얘기를 했습니다.

자신이 묵었던 호텔에서 본 대동강 철교의 모습을 말했습니다.

가만히 바라보니 다리 위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똑같더라고 했습니다.

전시용이었다는 겁니다.

같은 복장의 같은 사람이 하루 종일 다리 위를 왕복하더랍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일행의 방문에 맞춰 보이기 위한 연출을 한 것이지요.

김 교수는 말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사회냐.

만약 내가 하루 종일 저렇게 다리 위를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해보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겠느냐.

참으로 북한이라는 나라는 형편없는 사회이다.

그러면서 그는 청중인 봉은사 신도들에게 호소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을 깔보고 무시해서 되겠느냐.

그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지금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처님의 대자대비 정신이라고.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말자거나 사정을 이해하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진보진영인사들은 도덕성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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