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치사하게 먹는 것 가지고
"나의 연인 J에게" - 치사하게 먹는 것 가지고
  • 김충교
  • 승인 2011.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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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skyeapril@naver.com)일요신문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뉴스를 대하기가 겁나는 요즘입니다.

방송 뉴스는 좀 덜하지만 활자매체는 보기가 두렵습니다.

내 편 네 편을 갈라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는 모습이 일상이 됐더군요.

단순한 정책사항도 이념화시키는 게 일반화 되었습니다.

의미도 애매한 ‘좌빨’이니 ‘꼴통’이니 하는 단어가 난무합니다.

최근에는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이슈더군요.

‘무상’이라는 말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

‘복지’라는 말에도 붉은 색칠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한물 간 매카시의 후예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일부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는 도저히 복음으로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있습니다.

보수 진영의 정치권은 이런 분위기를 묘하게 부추기며 즐기더군요.

판세를 주도해야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겠죠.

요즘 들어 생각을 가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이 아프게 느껴집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면 내 편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면 네 편입니다.

나의 주장에 동의하면 내 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형편없는 놈이 되어버립니다.

생각을 강요하고 따르지 않으면 경원시합니다.

하긴 자신의 생각과 의지만을 최선이라고 믿는 게 인간의 기본 심성이라고 하더군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이런 심성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국가를 경영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그동안 저는 직간접적으로 리더들을 옆에서 바라볼 기회를 가진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것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근거를 내놓고 반대하는 이들이 많아도 그들은 요지부동입니다.

‘니들이 월 알아’라는 식입니다.

한때 억지주장을 끝까지 고수하던 유력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중량급 인사입니다.

결과가 뻔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데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당시 잘 아는 선배가 그 인사의 참모였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참모들도 말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인의 주장을 국가와 민족을 위한 최선이라 굳게 믿고 있다는 겁니다.

불철주야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얻은 결론인데 무슨 소리냐고 하더랍니다.

나만큼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고 국민을 위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랬답니다.

국민이 어리석어서 몰라준다는 얘기였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가르치려 드는 거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런 정치인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개인의 비전을 국가의 비전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이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사실 저는 변방에 사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서울 얘기를 하기가 조금은 민망합니다.

그래도 전 서울시민으로서 서울에 대해 관심을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오세훈 시장은 개인의 비전을 서울시민 전체의 비전으로 몰아가려 했습니다.

시장 직 사퇴라는 배수진까지 치면서 서울시민을 흔들었습니다.

눈물도 훔치더군요.

그래도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보수단체들이 전위대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투표가 있기 전에 서울에 사는 지인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결과는 보나마나라고 말하더군요.

그들이 ‘좌빨’이었냐구요.

그들은 ‘좌빨’도 ‘꼴통’도 아닌 그저 평범한 선남선녀들이었습니다.

그때 지인들이 빼놓지 않고 한 말이 있었습니다.

‘치사하게 먹는 거 가지고’ 난리를 친다고 말입니다.

그것도 애들 먹는 거 가지고 그런다고.

밥은 곧 생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명을 나누자는데 포퓰리즘 운운하니 기가 막힐 뿐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들은 국민을 철없는 학생으로 보고 가르치려 들고 있습니다.

아예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화를 내는 형국입니다.

깃발을 들고서 무조건 따라오라고 호통을 칩니다.

소통은 고사하고 안하무인입니다.

맹자는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습니다.

뜬금없이 웬 맹자냐구요.

요즘 시간이 나면 고전을 읽거든요.

한두 살 나이가 들어가니까 자꾸 고전에 손이 가게 되더라구요.

솔직히 예전엔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현실이 그대로 펼쳐져 있더군요.

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人之患在好爲人師.

사람의 고질적 문제로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한다는 점을 꼬집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남을 얕보고 무조건 가르치려 든다는 겁니다.

사실 그런 사람은 대부분 시원찮은 사람들입니다.

타인의 일에는 감 놔라 배 놔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일에는 전전긍긍하기 일쑤입니다.

일이 헝클어지면 안절부절 못하면서 남 탓하기 바쁘게 됩니다.

人病舍其田而藝人之田.

사람들은 자기 밭은 버려두고 남의 밭에서 김매기를 하는 병폐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남에게는 엄격함을 요구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일과 그에 따른 책임은 가볍게 여깁니다.

자기를 갈고 닦는 수양 보다는 남이 똑바로 하기만을 바라거든요.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서 잠시 자신을 돌아다 봤습니다.

과연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고 있지 않나.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 생각하는 습성에 젖어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작심했습니다.

적어도 먹는 거 가지고 치사하게 굴지는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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