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당신들의 대한민국
"나의 연인 J에게" - 당신들의 대한민국
  • 김충교
  • 승인 201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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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skyeapril@naver.com)일요신문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북유럽은 저에게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유유자적 하는 사람들.

복지의 천국으로 알려진 만큼 아등바등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곳.

잘하면 놀고먹을 수도 있겠다(?).

해서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 봐야겠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물론 세상에 파라다이스가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북유럽 정도면 살 만한 곳이 아닌가 여기고 있었습니다.

특히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박노자 교수의 진단이 한몫 했지요.

평등의식의 보편화와 복지체계 구축, 인종주의 근절 등을 위한 북유럽 국가들의 노력.

부를 과시할 필요도 없고 과시해서도 안된다는 사회적 분위기.

감명 깊었습니다.

버스기사나 배관공이 대학교수나 정부공무원 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나라.

그만큼 노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얘기입니다.

차별은 없고 차이만 인정하는 것 이지요.

자본가 보다는 소비자를 중요하게 보는 것이 일반화 돼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에겐 정말 토끼가 방아를 찧는 ‘달나라’ 풍경입니다.

거창하게 사회민주주의를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 개혁은 벌써 70년 전의 일이니까요.

정치적으로 청정지역이라 평가받고 있는 곳이 북유럽입니다.

소득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면서도 불만을 표시하는 이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 세금으로 복지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은 기본이구요.

그런데 노르웨이에서 대형사고가 터졌습니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노벨상의 나라에서 참사가 빚어졌습니다.

테러와 무차별 총격으로 76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유럽에 대한 동경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피의자로 지목된 베링 브레이비크의 말은 참으로 가관입니다.

무슬림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여성차별의 부활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한마디로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선민의식이 부른 재앙이었습니다.

현대판 십자군 전쟁의 선포나 마찬가지인 선언서도 만들었더군요.

겉으로는 평화와 진보의 가치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북유럽입니다.

그곳에도 여전히 뿌리 깊은 기독교의 선민의식과 백인 우월주의가 남아 있는 겁니다.

집권 노동당의 이민정책에 대한 경고라는 피의자의 말은 명분에 불과합니다.

잠재돼 있던 유럽인들의 순혈주의가 표출된 거지요.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단일민족이기에 긍지를 가지라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외침에도 굴하지 않은 민족정신을 자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거지요.

그러면서도 상대에 따라 작아지기도 하고 거만해지기도 합니다.

이중성의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마음속에는 엄연히 나라차별의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백인들에 대한 선망과 유색인에 대한 멸시의식이 흐르고 있습니다.

개인이 가진 생각의 내면보다는 그가 가진 국적이나 피부색을 보고 외국인을 평가합니다.

노르웨이 참사가 전해진 뒤 일부 보수진영의 반응이 이를 증명합니다.

일부 보수진영 네티즌들은 브레이비크의 테러에 동조의사를 표시했더군요,

외국인 노동자들을 몰아내자며 궐기하자고 선동하는 문구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식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말이 없더군요.

지식노동자로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은 주로 북미나 유럽인들입니다.

이들은 선망의 대상일 뿐입니다.

브레이비크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주 타깃은 따로 있습니다.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육체노동자들이 표적이 됩니다.

이들은 주로 3D업종에서 일합니다.

말 그대로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합니다.

그리고 한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것도 아닙니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대체된 측면이 강하니까요.

통계숫자를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중소기업이나 농어촌에 가면 어디서나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을 쉽게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그들을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개그프로의 유행어처럼 과연 ‘소는 누가 키우냐’구요.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도 민족을 우선시하고 순혈주의를 고수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으니까요.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고정된 생각의 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념이나 생각은 각자 자유이니까요.

그렇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상표가 괜찮은 국가의 외국인은 우리와 동등하게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우대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반면 한국 보다 못살고 후진국인 나라출신은 안 된다는 논리 말입니다.

사실 제가 일하는 곳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20대의 베트남 청년들입니다.

대체로 순박하고 선량합니다.

물론 각자 성향은 다릅니다.

부지런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게으른 친구도 있습니다.

작업에 대한 이해도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단박에 알아듣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친구가 있습니다.

반면 흔히 군대에서 말하는 고문관 노릇을 하는 친구도 있지요.

우리가 그렇듯 단지 개인적인 성향이나 능력의 차이는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꼼수를 부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천진난만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가끔 노는 것에 취해 일을 등한시 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혈기가 넘치는 젊은이들입니다.

몸은 다 자랐지만 마음이 자라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노르웨이에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인 박노자 교수는 좌파 지식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그를 가리켜 ‘좌빨’이라고 하더군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사대주의와 멸시주의가 공존하는 이상한 사회라고.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고 비판합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이중성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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