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 되면 산에 오르고 싶어집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등산 욕구가 생긴다는 것은 아닙니다.
소요하고 싶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겁니다.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니고 싶은 욕망이 생기거든요.
소요하기 좋은 곳이 바로 사찰입니다.
그러나 첩첩산중에 터를 잡은 곳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오르는데 힘을 빼버리게 되어 심신에 여유가 없어지거든요.
평지보다는 약간 높은 야트막한 산자락에 자리한 사찰이 안성맞춤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소요할만한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사찰이 많습니다.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만으로도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지요.
제가 아는 대표적인 곳은 5곳 정도입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끼고 돌아다녀 봤거든요.
거의 두 세 번씩은 가봤을 겁니다.
충남 서산의 개심사, 전남 강진의 무위사는 말 그대로 정원입니다.
전북 부안의 내소사, 경북 청도의 운문사와 경북 영주의 부석사는 걷기 좋습니다.
‘명찰 5경’이라고도 하더군요.
이중에서도 제 취향에는 강진의 무위사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매번 들어설 때마다 깜짝 놀라거든요.
사실 적당한 표현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억지로 말하자면 ‘나른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가 본 시기가 매번 한여름이었기 때문인 지도 모릅니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대웅전 앞마당 나무 그늘이 무척 정적으로 비춰지더군요.
어슬렁거리는 개 한 마리는 나른해 보입니다.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더군요.
제 취향 탓일 겁니다.
신혼 초 아내를 끌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시큰둥하더군요.
나름대로는 이런 곳이 있었나 하며 감탄하기를 바랐는데 허사였습니다.
처음엔 유홍준 교수 말대로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빗대봤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허상일 지도 모릅니다.
풍경이나 사물을 볼 때 알아야 볼 수 있다는 건 왠지 설득력이 떨어지거든요.
보는 순간 무언가 느낌이 와야 의미를 가진다는 게 제 생각합니다.
한여름 휴가철이 가까워지면 늘 사찰에 가 볼 궁리를 합니다.
그러나 궁리로 끝날 뿐 실천에 옮기기는 힘들었습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과 함께하게 되는 휴가는 제 취향을 고집할 수 없게 하거든요.
그렇다고 혼자 떠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번 여름에는 한 두 곳이라도 다시 가볼 작정입니다.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몰라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아내에게 새로운 일터가 생겨 출근한 지 얼마 안 되거든요.
아무리 경력직이라도 출근하자마자 휴가를 주는 곳은 아마 없을 겁니다.
처음엔 아예 작심하고 ‘템플 스테이’를 신청할 생각도 해봤습니다.
오래전부터 ‘템플 스테이’를 함께하기로 한 후배가 있거든요.
때는 이 때다 싶었습니다.
서울에 사는 후배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후배는 8월초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휴가는 7월말부터 8월초까지입니다.
서로 스케줄이 맞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배도 아쉬웠던지 말 나온 김에 아예 미리 약속을 하자고 하더군요.
더위가 물러가고 가을바람이 부는 10월쯤으로 못을 박자고 했습니다.
자기가 알아보고 서울과 변방의 중간쯤에 자리를 알아보겠다고 말입니다.
미리 부킹을 해놓겠다는 얘기였습니다.
서로 바쁘니까 긴 시간은 그렇고 주말 단기 프로그램으로 계획을 잡겠다고 했습니다.
좋다고 했습니다.
생각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면 후회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후배나 저는 불교신자는 아닙니다.
오히려 후배는 철저한 무신론자입니다.
지금도 현역 기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구요.
그는 때때로 권력자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특종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도 한 건(?) 했더군요.
신기할 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회의하는 친구거든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템플 스테이’를 잠시 잠깐 스님 흉내를 내는 것으로 압니다.
때문에 부킹은 무슨 부킹이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거든요.
예전부터 후배와 저는 만날 때마다 서로를 위로하는 한 가지 멘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팔자에 맞지 않게 속세에 나와 고생이 많다고 상대에게 너스레를 떨거든요.
그래서 후배와 저는 잠시라도 좋으니 팔자를 경험하자고 말하곤 했습니다.
한 10년여 전이었을 겁니다.
강원도에 위치한 조계종의 한 대교구 본사에서 ‘템플 스테이’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팔자를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손뼉을 쳤습니다.
한걸음에 달려가 신청을 하려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구체적인 요람을 보고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선 참가기간이 4주 동안이어서 현실이 따라주지 않았거든요.
후배와 저는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의기투합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래도 그때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TV방송국에서 당시 4주간의 ‘템플 스테이’ 기록을 다큐로 방영했거든요.
산사의 일상은 말 그대로 고행이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틈이 없어 보였습니다.
먹을거리를 직접 가꾸는 울력에서부터 까다로운 공양의식까지 만만한 게 없더군요.
힘든 과정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에 산문을 떠나는 참가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수행 마지막 날 참가자들은 서로 마주보고 108배를 하더군요.
절하는 횟수가 더하면서 이곳저곳에서 흐느낌 소리가 들렸습니다.
PD가 눈물을 흘리는 50대의 한 여성참가자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천대 받으면서 참 힘들게 살아왔다.
그런 내게 앞 사람은 매번 정성을 다해 108번이나 절을 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느껴 울컥했다고 대답하더군요,
한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인데 제 마음은 벌써 가을을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