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처음처럼
"나의 연인 J에게" - 처음처럼
  • 김충교
  • 승인 2011.0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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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 일요신문 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울컥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눈이 부어버렸습니다.

때 이른 폭염에도 불구하고 방문을 닫았습니다.

반팔 셔츠의 소매로 붉어진 눈 가의 물기를 찍어냈습니다.

아내와 아이에게 보이기 싫은 모습이었거든요.

저는 힘들고 지칠 때면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펴 듭니다.

아무 쪽이나 펼쳐들고 읽습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명징한 한 남자가 걸어 나옵니다.

처음 만나게 되는 그는 20대의 청년입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는 어느새 30대의 장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랬나 싶으면 곧 40대의 중년남자가 말을 걸지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신 교수는 20년 20일을 감옥에서 산 사람이니까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 길었던 징역살이의 기록입니다.

옥바라지 하는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세상에 대한 그리움.

갇힌 자의 갈망.

그러나 분노나 노여움은 없습니다.

오직 각성과 성찰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도 신 교수의 글을 읽었습니다.

사실 요즘 변방에서의 삶이 주는 무력감이 일종의 무게로 다가오고 있거든요.

제멋대로인 날씨 탓인지도 모릅니다.

폭우에 이은 땡볕이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 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곳은 한여름을 무색케 하는 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르락내리락 한다는 장마전선은 용케도 이곳을 비켜갑니다.

한낮의 햇빛은 그야말로 원시적입니다.

거칠 것 없이 그대로 쏟아지는 광선총의 빛 같습니다.

빛의 강렬함에 공기도 밀도를 잃었습니다.

변방임을 몸으로 느낍니다.

해서 때론 소외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변방으로 밀려온 지 어느새 만 2년이 돼 갑니다.

밀려온 게 아니라 처음엔 낙원을 찾아 떠나온 것이었지요.

좋았습니다.

조용한 변방 외곽에 거처를 정하고 기대에 들떠 있었습니다.

낯설고 물 설은 곳에 있다는 묘한 긴장감이 싫지 않더군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성가시지도 않았습니다.

서울만큼이나 불편도 없었습니다.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대도시거든요.

필요한 것은 다 있습니다.

차가 밀리는 일도 없습니다.

바다도 가까이에 있구요.

부지런을 떨면 한 걸음에 바닷바람을 쐴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일이 생소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배우고 익히면 세상 일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거든요.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호기심도 생겼구요.

그렇게 이곳에서의 일상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역시 일상은 기대한 것처럼 한가하거나 평화로운 것이 아니더군요.

풍경은 풍경일 뿐입니다.

변방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적지 않은 이들이 존재하더군요.

부대끼게 됐습니다.

낯선 생각을 배우고 익히라는 강요 아닌 강요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기계의 조작법을 배우는 게 아니거든요.

공감하지 않는 생각을 배울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고민스러웠습니다.

마음 터놓고 소통할 수 있는 친구도 없는 변방이니까요.

지난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변방을 찾은 후배가 있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소통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난거지요.

대화내용이야 신변잡기 수준이었지만 마음은 편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서울로 향하는 후배 배웅을 위해 변방의 역사에 갔을 때였습니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역사 앞에서 그만 마음이 흔들리더군요.

밭을 매다 호미를 집어던지고 기차역으로 달려가는 꽃순이가 된 겁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가.

서울행 열차에 올라타고 싶더군요.

복잡하고 분주했던 생활이 그리워 졌던 겁니다.

변방으로 내려오려 했던 애초의 마음이 살짝 잊혀지더군요.

신 교수는 역경을 견디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이라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처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밭을 매는 호미에 힘을 주려 합니다.

아마 낙원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믿고 기원하다 보면 발 딛고 있는 이 땅이 낙원이 될 지도 모릅니다.

소주 ‘처음처럼’을 한잔 해야겠습니다.

소주 맛에 통달해서 특정상표의 소주를 좋아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처음처럼’은 신영복 교수가 직접 쓴 붓글씨입니다.

취하기보다는 각성과 성찰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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