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움직인 동력은 ‘삼성家 위기’
이건희 회장 움직인 동력은 ‘삼성家 위기’
  • 이수영 기자
  • 승인 2011.0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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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체제’ 굳히고 ‘비자금 의혹’ 사전 진화 노림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비리척결 드라이브가 ‘광폭’적이다. 이 회장이 격노한 삼성테크윈의 내부 비리가 지나친 전관예우였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며 일부 궁금증은 풀렸지만 이건희 회장이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배경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자정(自淨) 노력이 ‘이재용 체제’를 위한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이 회장이 ‘구세대 인사’들을 솎아내기 위한 구실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최근 ‘오리온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홍송원 서미겔러리 대표가 이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리움 관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과 관련, 삼성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일련의 상황을 종합했을 때 이건희 회장이 전면에 나선 것과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는 평도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건희 회장이 전에 없는 ‘독설’로 그룹 정비에 나선 원동력은 ‘위기감’이라는 얘기다.

- 비리척결 광폭 드라이브, 경영권 승계 전 ‘인물 솎아내기’ 일환
- ‘오리온 비자금’ 홍송원, 홍라희 관장에 소송···시기·배경 ‘의심’
- 지난해부터 삼성전자 등 계열사 8곳 샅샅이 뒤져 ‘예정된 검문’


이건희 회장을 격노케한 삼성테크윈의 내부 비리 내용을 놓고 설왕설래가 오간 가운데 지난 10일 ‘전관예우’와 관련된 내부 부정이 특히 심각했다는 매체 보도가 잇따랐다. 그간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불거진 K-9자주포의 ‘납품비리설’과 ‘매출조작설’ 등이 문제 아니었느냐는 분석이 주를 이루던 상황이었다.


전임 공장장 회사에 일감 몰아줘

<이데일리>의 지난 10일 보도에 따르면 경영진단에서 드러난 삼성테크윈의 가장 큰 부정은 전관예우였다. 특히 카메라 부문 전임 공장장이 퇴직한 직원들과 세운 회사에 물량을 몰아줬던 것이 이번 경영진단에서 적발됐다는 것이다.

해당 관계자는 “이 같은 이유 등으로 오창석 삼성테크윈 대표이사 사장이 사의를 표명하기 전 이미 관련 사업장장과 방산부문 부장급 등 9명이 강제 퇴직한 상태였다”고 이 매체 인터뷰에서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논란으로 80명에 달하는 임직원이 징계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도 “어떤 부정이 적발됐는지는 밝힐 수 없다”며 정확한 언급을 꺼렸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7일 삼성테크윈 경영진단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고 격노하며 “부정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이어 지난 9일에도 이 회장은 “삼성테크윈이 우연히 (부정부패 사례가) 나와서 그렇지 (그룹 전반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는 것 같다”고 말해 앞으로 대대적인 감사 후폭풍이 이어질 것으로 시상했다.

이 회장은 특히 “향응, 뇌물도 있지만 가장 나쁜 것은 부하직원을 닦달해서 부정을 시키는 것”이라며 “자기 혼자 부정하는 것도 봐줄 수 없는데 부하를 시키는 것은 부하를 부정에 저절로 입학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 사장은 감사 결과에 대해 사장으로서 지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으며, 삼성테크윈은 오는 22일 임시주주총회에서 김철교 삼성테크윈 대표이사 내정자를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할 예정이다.

이번 사태 이후 삼성은 미래전략실의 감사팀을 별도 조직으로 떼어낸 뒤 계열사를 상대로 강도 높은 감사를 벌일 전망계획이다.


“경영권 승계 작업 일환” 분석도

이 회장의 강경발언은 연일 수위를 높여가며 이어졌다. 지난 9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출근하는 길에 로비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 회장은 “과거 10년간 한국(삼성)이 조금 잘되고 안심이 되니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더 걱정이 돼서 요새 바짝 이 문제를 챙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대적인 사정 바람이 불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부터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SDS, 삼성카드, 삼성테크윈, 에스원 등 최소한 계열사 8곳에 대해 광범위한 감사를 벌여 각종 비리를 적발한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은 계열사는 물론이고 1, 2차 협력업체까지 샅샅이 뒤져 최근 1년간의 부당행위 등을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리 유형은 횡령부터 향응 수수, 협력회사에 대한 부당행위, 근태 관리 부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장은 또 그룹 감사를 맡고 있는 경영진단팀이 봐주기 감사를 해왔다며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그룹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에 대한 우수 인력 보강은 물론 현재 전무급으로 돼 있는 경영진단 책임자의 직급을 부사장급으로 높여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할 예정이다.

또 현재 경영지원실 소속으로 돼 있는 경영진단팀을 사장 직속 등의 독립 기구로 재정비한다는 계획이다. 삼성테크윈의 새 사장에는 감사팀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는 김철교(53)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 부사장을 내정했다.

한편 이 회장이 이틀 연속 임직원들의 부정 문제를 거론하면서 조직 기강을 바로잡으려는 데 대해 승계 구도를 다지기 위한 포석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전면에 나설 경우 부담이 될 수 있는 구세대 인사들을 솎아내기 위한 작업 아니냐는 것이다.

조직적 부정행위의 책임을 ‘부하 직원을 닦달해서 부정을 저지르게 하는 상사’에게 지우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그런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홍라희 리움 관장 ‘이상한 소송’

한편 이건희 회장이 전면에 나서 비리척결 의지를 다진 것과 부인 홍라희 리움 관장의 소송건이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미술계 최고의 파트너였던 홍송원 서미겔러리 대표가 홍 관장을 상대로 ‘그림값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 자체가 의외인데다 일각에서 삼성가 비자금 조성과 관련이 있지 않느냐는 의심이 불거진 까닭이다.

이 같은 의혹이 확산되기 전에 이건희 회장이 먼저 이 같은 의심을 사전에 진화하기 위해 광폭행보에 나선 게 아니냐는 얘기다.

홍송원 대표가 홍 관장에게 판매한 미술품 가격은 대부분 시세보다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경매 낙찰가보다 23배나 비싸게 팔린 빌럼 데 쿠닝의 ‘Untitled Ⅵ’(1975년작)뿐 아니라 최근 낙찰된 다른 작품들도 수억~수십억원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고 <경향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조안 미첼의 ‘Untitled’(1961년작)는 2008년 5월 경매회사 소더비 뉴욕 본사에서 450만 달러(약 48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그런데 홍송원 대표는 이 그림을 28억5000만원 비싼 77억2000만원에 팔았다고 밝혔다. 경매 당시 소더비 측이 최고 추정가로 제시한 600만달러(64억9000만원)보다 10억원 이상 비싼 셈이다.

개인 소장자나 갤러리를 통해 팔린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미술품 가격도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신문의 분석이다. 마크 그로찬의 ‘Off White Butterfly’(2002년작)는 같은 해 출품된 ‘White Butterfly’보다 1억6000만원 비싸게 팔렸다. 11억5000만원에 팔렸다는 루돌프 스팅겔의 ‘Untitled-2 parts’(2002년작) 매매가도 고평가됐다는 게 미술계의 지적이다.

검찰 주변과 미술계에서는 홍송원 대표와 홍라희씨가 미술품 가격을 부풀려 거래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추정이 나오고 있다. 우선 미술품 판매가격을 장부에 부풀려 적은 뒤 차액을 돌려주는 수법으로 삼성가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

또 거래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홍라희씨의 거래 관행에 비춰볼 때 잔금을 치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리움 측은 “그동안 미술품 대금 지급과 관련해 문제된 적이 없었다”며 “소장이 오면 검토해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리움 측은 또 문제의 14점이 미술관 소장인지, 홍 관장 개인 컬렉션인지에 대해서도 “밝힐 수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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