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재벌 2·3세 ‘풀스토리’
비운의 재벌 2·3세 ‘풀스토리’
  • 이수영 기자
  • 승인 2011.0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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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권력 다 쥐고도 모자랐던 ‘그것’

- 재벌가 2·3세 승계 작업 속 ‘비운의 형제들’ 관심
- 삼성家 이건희 회장 막내딸, 조카 등 자살로 ‘흉흉’
- 현대家 창업주 2세 중 2명이 스스로 목숨 끊어
- “심적 나약함이 문제···경영수업에 정신수련 필요”


재벌 2·3세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 연말 각 그룹 인사에서 오너 일가의 경영 일선 전진 배치가 눈에 띄는 가운데 30~40대 젊은 총수 자녀들의 맹활약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삼성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과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전무가 각각 사장으로 승진했고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전무도 부사장으로 영전했다.
이미 4세 경영의 기치를 올린 두산그룹과 LG그룹도 총수 일가를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 대열에 합류했다. 그야말로 재벌 2·3세 전성시대인 셈이다.

한편 승승장구하는 이들과 달리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진 비운의 재벌 2·3세들도 적지 않다. ‘비운의 형제들’로 불리는 이들은 누구이며, 왜 불행을 피하지 못했을까.

 

지난해 8월 1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모 아파트에서 40대 남성이 투신자살했다. 빈소조차 차려지지 않은 장례식장에서 이틀 만에 쫓기듯 발인이 치러졌고 고인은 한 줌 재가 돼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고인은 이재찬(당시 46세) 전 새한미디어 사장이었다. 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조카다.


삼성, 이윤형 죽음에 ‘패닉’
재벌가 자제였던 이 전 사장의 생전 마지막 삶은 ‘비루하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살고 있던 아파트는 매달 150만 원의 월세였고 생활고에 시달린 듯 인근 가게에 수십만 원 상당의 ‘외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찬 전 사장의 죽음에 앞서 삼성가(家)를 ‘패닉’으로 몰고 간 사건은 바로 2005년 11월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윤형(당시 25세)씨의 죽음이었다.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 중이던 윤형씨는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초 삼성그룹은 윤형씨의 사인을 ‘교통사고’라고 밝혔으나 뉴욕 타임즈의 탐사취재 이후 자살 사실을 인정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더 타임스, 가디언 등 영국 주요 신문들도 윤형씨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당시 더 타임즈는 아파트 관리인과 친구들의 말을 인용해 ‘윤형씨가 길게는 일주일 동안 아파트를 떠나지 않고 칩거하기도 했으며, 부모의 반대로 결혼을 이루지 못하고 뉴욕으로 온 뒤에는 외로워하고 의기소침해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숨진 이재찬 전 사장의 부친인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도 한창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경우다.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그는 1977년 새한미디어를 차려 독립해 사업가로서 입지를 다졌으나 1991년 7월 혈액암으로 타계했다. 당시 이 회장의 나이는 58세였다.


현대 정대선 부친도 자살
현대가에서는 유독 창업주 2세들의 비극이 두드러진다.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아들 중에서만 두 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4남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과 5남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다.

정몽우 전 회장은 1990년 4월 강남의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 전 회장은 노현정 전 아나운서와 결혼해 화제를 모은 정대선 현대비에스앤씨 대표이사의 부친이다.

2003년 8월 타계한 정몽헌 전 회장의 죽음은 재계 뿐 아니라 정관계에도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대북송금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정 전 회장은 현대그룹 계동사옥 사무실에서 몸을 던져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에 앞서 정주영 회장의 장남인 정몽필(당시 49세) 전 인천제철 사장은 1982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LG가에서도 비극적인 죽음이 있었다. 구본무 회장의 장남 원모씨가 1994년 6월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등진 것이다. 현재까지 원모씨의 사인은 ‘불의의 사고’ ‘급사’라는 것 외에는 일체 알려진 게 없다.

대를 이을 장손을 잃은 구본무 회장은 결국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 광모씨를 2004년 가족회의를 거쳐 양자로 입적시켰다. 엄격한 유교적 가풍을 따르고 있는 LG가에서 경영승계를 둘러싼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도 이때부터다.

두산가에서는 2009년 11월 박용오 전 두산중공업 회장의 자살사건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두산그룹은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3형제가 나란히 전과자 신세가 돼 빈축을 사기도 했다. 2005년 형제들 사이에서 축출될 위기에 놓였던 박용오 전 회장이 형제인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비리 사실을 검찰에 폭로한 사건이 그것이다.

재계를 발칵 뒤집은 박 전 회장의 투서는 박용성·용만 형제가 1700억 원 규모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해 사용했다는 내용이었다. 대대적인 검찰 수사 끝에 투서 내용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재벌가 자제 ‘요절’ 원인
그렇다면 ‘사회 지도층’인 재벌가 자제들이 유독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뭘까.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상류사회 인사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들은 일반인들이 흔히 자살동기로 꼽는 경제적 궁핍이나 가정불화 등 개인적인 이유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오히려 사회적인 박탈감이나 명예 상실, 스스로 죽음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우울증 등을 앓고 있다면 자살까지 이르는 속도는 급속히 빨라진다.

특히 전문가들은 재벌가에서는 창업주보다 2·3세들의 자살사건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정신적 나약함’을 이유로 꼽고 있다. 창업주들이 강한 성취욕으로 앞만 보고 달리는 반면 그들의 우산 밑에서 유복하게 성장한 2·3세들은 상대적으로 유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 지도층으로서의 자존심은 매우 강하지만 한 번 굴욕을 당하거나 목표를 상실하면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는 얘기다. 때문에 재벌가 경영수업에 ‘정신적 강인함’을 키우는 계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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