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억 주가조작 사건, 계좌에는 무일푼
250억 주가조작 사건, 계좌에는 무일푼
  • 김노향 기자
  • 승인 2010.0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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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수십건 적발… 금융당국의 헛점 드러나
주가조작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어마어마한 금액의 사건은 투자자로써 맥이 빠질 일이다. 지난달 체포된 일가족 250억 주가조작 사건은 투자자 뿐만 아니라 금융당국도 놀랄 수 밖에 없는 대형 사건이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피라미드식 주가 조작을 통해 250억원을 챙긴 일가 친·인척 등 24명이 무려 7년 동안이나 수사망을 빠져나가며 부당이득을 얻은 것이다. 이번 사건을 적발한 건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부장 전현준)였다. 이 사건의 주범인 정씨(45) 동업자였던 고모(43)씨가 지난해 11월 불심검문에 걸리면서 수사망이 좁혀진 것. 정씨를 체포한 여 검사 김남순(37)은 그가 지난 7년 동안 ‘성공한 사업가’ 혹은 ‘주식의 귀재’로 불리며,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렸다고 했다. 그러나 김 검사는 주식투자는 물론 펀드투자를 한 적도 단 한번이 없다. 정씨는 지난달 서울 워커힐호텔 골프연습장에서 체포됐다. 김 검사는 “정씨가 머리가 매우 좋은 형이었고, 노조위원장 경력 탓인지 사람을 잘 거느렸다”고 했다. 정씨는 체포된 뒤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2003년 수배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7년 간 체포되지 않은 것은 금융당국의 허술함도 드러나는 대목이다. 금융감독원은 수십 건의 주가조작 사건을 고발하면서도 이 사건들이 모두 정씨 일당일 것이라는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김 검사는 “정씨가 베일 뒤에 숨어 지휘만 했다”며 “정씨의 조직원이 붙잡혔을 때도 하수인에 불과해 그냥 풀려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씨의 치밀함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그는 돈을 쓸 때도 수표를 쓰지 않고, 현금만 이용했다. 중고 벤츠 2대를 살 때는 현찰 2억원이 든 가방을 들고 나갈 정도였다. 의외인 것은 정씨가 금융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대학을 중퇴하고, 전남 여천의 화학회사를 다녔으며, 노조를 결성해 위원장까지 지냈다. 정씨는 1998년 회사를 그만뒀다. 증권가에 IT붐이 일 때였다. 연일 코스닥 주가가 폭등했다. 정씨는 인터넷 동호회에서 주식 매매와 차트 분석법을 배웠고, 2002년 주가 조작을 시작했다. 그는 2002년 당시 작전주의 원조로 불리는 ‘델타정보통신’을 사고 팔았다. 이 일이 나중에 적발돼 그는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으나 그 이후 범행을 더 치밀하게 계획했다. 자기 가족, 조카, 사촌동생, 처남, 사돈에다 학교 동문, 옛 직장동료까지 포섭, 정씨는 24명 주가조작단의 우두머리가 됐다. 정씨는 초기투자금 83억원을 투자, 바이오업체 J사의 주가를 1850원에서 8330원까지 끌어올려 시세 차익만 30억원을 얻었다. 정씨는 대형주보다 주식 수량이 적어 큰 돈 들일 필요 없는 소형주만 골랐다. 또 서울시 강남에 소재한 의류업체 M사와 경기도 오산의 금속제조업체 D사의 주가도 조작했다. 월 80만원을 주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대신 내주는 아르바이트생 ‘클릭맨’을 고용하기도 했다. 이들이 거둔 불법 수익 250억원은 단지 추정치일 뿐이다. 김 검사에 따르면 정씨 계좌에는 단 한 푼도 없었고, 은닉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그는 서울 송파구 잠실의 전세 5억원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고급 승용차를 타고, 자녀들을 해외 유학까지 보낸 상류층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주가조작 사건을 좀 더 철저히 조사해, 힘 없는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줄어들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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