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앞에 서면 작아지는 법원
재벌 앞에 서면 작아지는 법원
  • 김노향 기자
  • 승인 200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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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불명예… 재벌총수 솜방망이 처벌
재벌총수의 비리에 솜방망이 처벌을 해온 법원의 고질병에 대해 사회의 비판이 고조되고있다. 이건희 전 삼성회장의 배임혐의에 대한 서울고법의 14일 파기환송심에서 상식 밖의 관대한 판결이 나자 법원의 재벌봐주기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이 마련돼야한다는 소리가 높다. 이 전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시세보다 낮게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고도 형량은 1·2심과 똑같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이 전 회장은 1·2심에서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으므로 경영권 불법승계가 추가로 인정돼 형량이 늘어나면 실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회사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는 등의 사유를 들어 처벌을 추가하지않은 것이다. 이 판결을 놓고 일부 판사들도 “부끄럽다”며 사법부의 오점을 남겼다는 비판을 했다. 특히 같은 날 박정규 전 청와대민정수석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9400만원어치의 상품권을 받은 사건을 다룬 서울중앙지법이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선고한 재판과 비교해보면 이 전 회장에 대한 형량이 얼마나 관대한 것인지 분명해진다. 대법원이 최근 피해액 50억원 이상이면 원칙적으로 실형을 선고토록한 양형기준에도 어긋나는 판결이다. 법원은 이전에도 김승연 한화회장의 폭행사건, 두산 총수일가가 회사돈 286억원을 횡령한 두산 비자금사건에 대해서도 전원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여북 황당했으면 이용훈 대법원장이 두산비자금 사건 판결이 나온 직후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판결”이라고 강하게 비판했겠는가. 이 대법원장은 고위법관 모임에서 “1억원어치 물건을 훔친 사람에게는 판사들이 실형을 선고해 놓고 200억, 300억원씩 횡령한 (재벌)피고인에 대해선 집행유예 판결을 하면 국민이 어떻게 수긍하겠느냐”고 질책했다. 대법원장이 구체적인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판결이 형평성을 잃은 것이다. 돈이 일반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재벌총수에겐 더 엄격한 판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런데도 현재는 법원이 법의 이념인 사회정의 구현보다 강한자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실정이다. 판사들은 더 이상 ‘법관의 독립성’이란 허울좋은 명분 뒤에 숨어 솜방망이 채찍만 휘두르지 말고, 국민을 바라보는 사법부로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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