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헌 앞장선 아름다운 CEO 신현백 회장
사회공헌 앞장선 아름다운 CEO 신현백 회장
  • 홍남기 기자
  • 승인 2009.0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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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땀의 열정으로 광부에서 호텔 회장까지
신현백 회장
세상에는 돈을 모으는 데 남다른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기업가라고들 한다. 어려운 탄광 일에서부터 시작해 동서울관광호텔을 창업한 ‘신현백’ 회장도 바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현백 회장은 여느 기업가들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그는 돈을 잘 벌기만 한 게 아니라 잘 쓸 줄 아는 기업가이다. 즉 돈은 삶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기업인이다. 신현백 회장은 그동안 20년에 걸쳐 불우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고 있던 중 좀 더 전문적인 사회공익사업을 위하여 굿네이버스와 사회사업협약을 맺고 “신현백 사회공익재단”을 설립했다. 동서울관광호텔 재산일체와 자신의 재산일체 약 4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재단법인으로 출연, 사회공익사업과 장학사업 등 사회공익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신 회장은 정직과 나눔을 실천한 참된 기업인으로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신 회장의 젊은 시절의 얘기를 들으면 참 치열하게 살아온 분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60년대 참으로 암울하고 어려운 시대에 신 회장은 하루 세끼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신 회장이 젊은 시절 탄광에서 일하게 된 계기도 배가 고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광부’가 대표적인 ‘3D’ 직업으로 꼽히지만 그때만 해도 ‘광부’만큼 좋은 직업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시기 이었으며 에너지가 부족한 우리나라 실정에 석탄 산업이 전체 산업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 때였다. ‘탄광촌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정도의 호시절이었다. 정부의 석탄 증산 정책과 맞물려 탄광 개발이 잇따랐고 돈과 사람이 모두 탄광촌으로 몰렸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마땅히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던 신 회장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탄광촌에 간 것은 어쩌면 필연적 선택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광부시절 참 고생도 많았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고 한다. 1000m 막장은 40도를 오르내렸고 언제 무너질 줄 모르는 탄광 안에서 공포와 더위와의 싸움은 치열한 전쟁터와 같았다고 한다. 한 번씩 사고로 광부들이 목숨을 잃거나 팔과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며 신 회장은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피땀을 흘려 돈을 모으는 길밖에 없었다고 한다. 신 회장은 그때를 회상하면서 “한국의 광산은 1945년까지는 일본인에 의해 운영되다가 그 후 서구식 채탄방법이 도입되었는데 당시 채굴 작업의 어려움은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은 고통을 모른다”고 말했다. 황지, 추던, 광동, 정선 탄광 등지에서 일을 했던 신 회장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않으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고 한다. 결국 피와 땀의 결과로 신 회장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기회가 있다. 정선 탄광에서 일하면서 탄광주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발판이 돼 현재 사업의 기반이 되었고 투자한 부동산에 많은 이익을 창출해 호텔경영자에 이르게 됐다. 호텔경영자가 되어서도 신 회장은 타고난 근검절약이 몸이 배 항상 잠바와 운동화 차림으로 평생을 살아왔다고 한다. 항상 간소한 옷차림 남이 보면 호텔경비원 또는 청소부로 오인하기 쉬운 차림새, 기자가 인터뷰 하는 날에도 그는 허름한 잠바 차림에 모자를 쓰고 맞이하며 민망해 했다. 그의 첫 마디는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절약과 검소한 생활로 주위 사람들에게는 ‘소금’ 이라는 호칭도 자주 들었던 사람, 신 회장은 20년 전부터 꾸준하게 불우한 이웃을 몸소 챙기면서도 말이 없었다. 신 회장은 지금도 5000원짜리 이상의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접대하는 법이 없지만 힘없고 나약한 사람에게는 대접도 하고 그 사람이 진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결코 모른 척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학비, 수술비, 생활비 등 필요한 것이 있으면 꼭 해결을 해 주시면서 물질적 도움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안아주는 인물로 정평 나 있다. 젊은 시절 탄광에서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사회공익사업으로 아름다운 사회,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작은 돈이지만 뜻 있는 곳에 사용하고 싶다”며 동서울관광호텔 신 회장은 400억 원이라는 큰 재산을 선뜻 사회에 환원했다. 당시 재산을 환원하는 자리에서 신 회장은 “나는 돈이 아까워 나한테 절대로 돈을 쓰지 못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다 내놓고 갈란다. 나머지는 자네들이 알아서 하게나”라고 말한 것이 전부라고 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는 많은 생각을 했다. 성인이라는 호칭은 어느 사람에게 붙이는 것일까? 기자가 바라본 신현백 회장은 ‘참 겸손하고 아름다운 사람’ 그 자체였다. -이정남 국장 신현백 사회복지법인 재단 운영 인터뷰- 발문1: 빈곤에 대한 소극적 대책이 실업급여 제공, 생활보호 급여 제공이라면, 적극적 대책은 생산적복지로 볼 수 있다. 당장 빵이 필요한 빈곤층에게 빵을 제공하면서 이들이 가능한 한 자신들의 노력과 근로로써 자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해 주어야 한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가 함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서울 광진구 동서울관광호텔에서 ‘신현백사회공익재단’(가칭)이 설립될 예정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정남 신현백사회공익재단 사무국장은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저소득층, 노인, 장애인 등 다양한 복지 수요층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기 위해 신현백사회공익재단을 설립한다”면서 “재단의 설립을 통해 사회공익사업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신현백사회공익재단이 출범하게 된 계기는 신현백 동서울관광호텔 회장의 남다른 사회공헌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신 회장은 그동안 20년에 걸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구절을 실천하면서 보이지 않는 수호천사로 불린 인물이다. 그동안 사재를 털어 불우아동과 불우청소년 시설, 퇴소아동·청소년을 위한 나눔 사업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왔다. 특히 좀 더 전문적인 사회공익사업을 위해 사회공익단체인 굿네이버스와 사회협약을 체결하고 협약단체로 후원과 기부등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정직과 나눔을 실천한 참된 기업인으로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신 회장이 설립한 재단법인 신현백사회공익재단을 찾아 이정남 사무국장으로 부터 재단의 역할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들어 보았다. -(재)신현백 사회공익재단 법인설립 취지를 말씀해 주신다면? 옛 말에 가난은 하늘도 풀지 못한다고 했다. 신 회장은 항상 작은 것이지만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자 많은 생각을 해왔다. 처음에는 고아원 및 불우아동과 불우청소년시설 등에 도움을 주었지만 진정한 사회복지란 “전문성과 생산복지”가 우선적으로 밑바탕이 되고 다음 단계가 사회적응 및 우리 사회의 일원 또는 구성원으로서 자리를 잡는 것이라 생각해 설립하게 됐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대국민 복지 확충에 힘을 기우여 수많은 복지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국민 조세 부담은 13%에서 28%로 급증하고 복지대상자들은 확대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게 됐다. 그렇지만 그러한 복지정책은 오히려 근로의욕의 저하와 성장저하를 가져와 극심한 불경기에 시달리는 요인 되고 말았다. 신 회장이 생각하는 선진국형 사회복지는 “가난의 대물림을 미연에 방지하고 이들 어려운 사람들의 사회취업을 위한 취업보증, 취업알선, 취업을 통한 자립생활기반 인프라 구축를 위한 후원과 지원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고 항상 얘기하곤 한다. - 재단법인의 사업내용을 말씀해 주신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급속한 인구고령화와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배고플 때 밥 한 끼 도움 물론 중요하다. 문제는 그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제시할 수가 있느냐가 관건이다. 우리 재단법인의 사업은 가난의 대물림을 미연에 방지하고 자립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 아동, 청소년 희망통장 후원사업▲ 불우 소외계층 아동 자립사업 후원 및 불우소외계층 청소년의 사회적응 및 취업을 위한 취업보증 및 후원 ▲소외 불우계층 무료수술비 나눔 사업▲ 기타 법인의 목적달성에 필요한 사업 등으로 세분화 하고 있다. 이제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소외계층을 사회복지 지출의 대상이 아닌 국가 성장의 한 축으로 인식하고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줌으로써 사회적 자원을 새로운 국가성장의 축으로 인식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생산적복지란 무엇인지? 빈곤에 대한 소극적 대책이 실업급여 제공, 생활보호 급여 제공이라면, 적극적 대책은 생산적복지로 볼 수 있다. 당장 빵이 필요한 빈곤층에게 빵을 제공하면서 이들이 가능한 한 자신들의 노력과 근로로써 자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해 주어야 한다. 그런 기회를 통해 이들은 자신들의 잠재능력을 키워 노동에 동참하며 보다 나은 소득으로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장 적극적인 빈곤대책은 ‘일’ 중심이 되므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다. 생산적 복지의 핵심적 내용은 대략 세 가지로 압축된다. 즉, 일을 통해 시장경제에 참여하는 1차적인 분배체계를 마련하는 것, 국민에 대한 기초생활 보장, 취약계층의 자활을 지원하는 복지정책 등이 그것이다. 생산적 복지란 시장경제와 복지를 통합적으로 본다는 관점에서 출발해 궁극적으로는 단순한 수혜적 복지를 뛰어넘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복지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 그 의도인 것이다. 국가가 재분배 차원에서 그냥 돈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일을 통해 자활하도록 해 시장 경제에서 스스로 경쟁력을 가지도록 한다는 게 핵심적 요지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근로 조건을 정비하는 등 지원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 기업의 사회복지 참여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참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하는데. 국가나 정부가 시민들의 복지나 안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 생각한다. 정치적으로는 계속 집권하기를 원하는 정부는 유권자들의 바람이나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며, 경제적으로 인간 자원을 개선하는 것은 생산적인 투자라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구매력을 제공하는 것은 경제의 수요측면을 자극하여 경제발전에 기여 한다라고 볼 수가 있다. 신 회장님은 전자의 정치적 집권에 기인한 사회복지는 정치인의 권모술수라 생각하고 후자의 정책들을 정부와 기업이 하나가 되어 추진한다면 더 많은 소외계층이 혜택을 볼 수 가 있다는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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