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퐁 모단걸(Telephone Modern Girl)
다리퐁 모단걸(Telephone Modern Girl)
  • 김영진 기자
  • 승인 2007.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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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전화기를 처음 봤을 때…
“말을 전하기도 한다는 뜻에서 ‘전어기’라고도 하고 혹은 ‘전어통’이라고도 하지, 원래 서양말로는 ‘다리퐁’이란다.” “… 그 여잔 하이카라요. 나하곤 어울리지도 않죠. 대단한 여자지! 그래 대단하지! 서양에서 공부했다오. 단발미인이요. 그냥 단발랑이오? 아니, 머릿결에 아예 파도가 칩니다. 뭐로 지졌는지 구불구불구불…. 하고 다니는 모양새하곤. 도도해! 도도하지! 짜른 치마에 굽 높은 구두며. 신세계의 여성이요. 별세계의 여성이지.” 극중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들이다. 이 대사들에서 알 수 있듯 ‘다리퐁 모단걸’은 ‘텔레폰 모던 걸(Telephone Modern Girl)’, 즉 전화교환을 해주는 신여성을 뜻하는 개화기 때의 말이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쓰레기 같은 메일, 가식적인 지인들의 방명록, 홍보성의 문자들… 지금이야 정보도 많아졌고 의사소통 수단도 다양해져 전화기가 절대 귀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일백년 전의 전화기는 혁명에 가까운 신문물이었다. ‘다리퐁 모단걸’은 이 시대를 배경으로 최초의 여성전화교환수인 신출내기 ‘모단걸(modern girl)’을 사이에 두고 여러 명의 사람들이 전화기라는 물건을 사용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연극이 단순히 해프닝에서 끝나지 않는 건 그 속에 전화를 이용하는 이들, 제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그것을 통해 사랑과 죽음, 질투와 화해에서 비롯되는 인간애와 인간미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톡톡 튀는 독특한 캐릭터들의 상황 희극의 묘미와 개화기 시절 대한제국 최초의 여자 교환수, 모단걸의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로맨스를 통해 색다른 설렘과 아련함까지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의 창작배경에 대해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이해제는 “우연히 도서관에서 옛 풍속사의 책을 펼쳤다가 여성 전화교환수의 시작을 담은 한 페이지를 읽게 됐다”며 “순간, 그들이 우리 역사에서 근대성의 시작이 아닐까 상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연극은 이런 소재가 주는 신선함 뿐 아니라, 제작진과 제작방식에 있어서도 화제를 모은다. 이 연극은 2004년 ‘연극열전’시리즈로 대학로를 연극의 바다에 풍덩 빠지게 했던 동숭아트센터와 극작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해제가 만나 2005년부터 함께 준비한 ‘젊은 예술가 인큐베이팅’ 프로젝트의 두 번째 성과물이다. 또한 영화 ‘괴물’에서 목소리 출연을 했던 배우 오달수가 이번 연극에서도 ‘양반교환수’ 목소리로 우정출연을 한다. 그가 맡은 건 단 7개의 대사 밖이지만, 특유의 능청스러운 목소리 연기는 절대 놓쳐서는 안될 부분. 그는 현재 이 연극을 제작한 극단 신기루만화경의 대표이다. 특히 ‘다리퐁 모단걸’은 희곡 이전에 시나리오로 완성된 거라 연극을 보는 내내 섬세하게 표현된 대사와 상황들을 통해 살아있는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 영화의 메가폰은 영화 ‘소풍’으로 깐느 영화제에서 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송일곤 감독이 맡을 예정이다. 공연은 5월 27일까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문의: 02-766-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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