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맨과 라틴댄서는 빨간색을 좋아해”
“증권맨과 라틴댄서는 빨간색을 좋아해”
  • 조권현 기자
  • 승인 2006.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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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저녁 7시. 강남역 근처의 한 바(Bar)로 열정의 살사댄스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화려한 의상의 커플들이 정열적인 라틴음악에 몸을 맡기는 순간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그 어떤 춤보다 정형화 되지 않고 느낌으로 출 수 있기에 세상에 찌든 나 자신을 버릴 수 있다. 라틴댄스 동호회 ‘헬로우 라틴’에서 살사댄스 강사로 활약하고 있는 이은화 씨(30)의 주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항상 젊음과 정열로 충만해 있다. 지난 2000년 댄스스포츠를 시작으로 춤의 세계에 빠져든 그의 본업은 동부증권 최초의 여성 감사인이다. 남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증권사 감사 업무를 맡은 지도 벌써 7년째. 라틴댄서라는 그의 캐릭터가 딱딱할 것만 같은 부서 분위기를 바꾼 지도 오래됐다. 그가 라틴댄스를 배우게 된 계기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 남미 친구들의 춤동작을 보고 난 후 였다. 그들의 춤동작에 반해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했지만 ‘동양인은 라틴댄스를 못춘다’면서 무시하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복수의 칼날(?)을 갈던 그는 귀국과 동시에 라틴댄스를 배우게 됐고 동호회 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라틴댄스에 대한 그의 열의가 빛을 본 것은 지난 2004년 ‘코리아살사컴패티션’에서 아마추어부문 1위에 입상한 것이다. 상금 100만원 까지 거머쥔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1위를 한 기쁨도 기쁨이지만 저보고 라틴댄스를 잘 못 출 것 같다고 말한 남미 친구들에게 왠지 시원하게 복수를 한 기분이었어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당시에 응원 온 동호회 친구들에게 거하게 대접했습니다. 물론 상금으로 받은 100만원을 다 쓰고도 부족해 사비를 더 보태긴 했지만요.” 그 누구도 그에게 아마추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는 동호회 내 최고 실력자로서 회원들에게 라틴댄스를 전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겪었다. “아무래도 라틴댄스라는 것이 남녀가 짝을 이뤄 서로 손을 잡고 하는 동작이 대부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친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초창기에 저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 8명중에 6명이 커플을 이루더니 결혼까지 하게 됐죠. 안타깝게도 저만 아직도 싱글이랍니다.” 그렇다면 눈이 높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라고 묻자 “너무 바쁘기 때문에 그렇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감사팀 업무 특성상 한 해의 반을 지방 점포로 출장을 다닌다. 그나마 여자라서 배려를 받아 상대적으로 출장 횟수가 적은 편이란다. 그렇다고 회사 입장에서도 그를 다른 부서로 쉽게 자리 이동 시킬 수도 없다. 초창기 감사 시스템 구축에 큰 역할을 해 그를 감사 업무 적임자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대학재학시절로 돌아가 보면 감사일에 대한 ‘싹수’가 보인다. 학생회 일원이었던 그는 당시 총장의 불투명한 학교 운영과 단과 대학의 부실한 커리큘럼 제공에 대응해 총장실을 점거하는 등 투쟁의 강도를 높여가며 싸웠다. 그 결과 학부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단과대학 시스템이 정비됐다고 한다. 천상 감사인의 사주를 타고 난 것은 아닐까 싶다. 7년차 라틴댄서이자 증권맨인 그는 라틴댄스와 주식의 닮은 점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급작스런 질문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명쾌한 답을 제시했다. “주식과 라틴댄스의 공통점이요? 한마디로 ‘빨간색’을 좋아하는 것이죠. 우리 주식시장의 전광판에 빨간색이 많으면 모든 투자자들이 열광하듯 라틴댄서들도 빨간색 의상을 좋아한답니다. 또 하나의 닮은 점은 라틴댄스나 주식이나 한번 분위기를 타면 불같이 올라간다는 점이죠. 그러나 다른 점을 굳이 말씀드리자면 라틴댄스는 다 추고 나도 그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지만, 주식은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흥분은 커녕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간다는 것이죠.” 한편 그가 가진 라틴댄서의 이미지는 업무적으로 사람을 만날 때에도 대화의 물꼬를 트는 커뮤니케이션의 유용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싱글 남성에게는 “우리 동호회에 미모의 여자 회원들이 많으니 소개시켜 드릴까요?”라고 말하거나, 여성에게는 “라틴댄스 복장이 잘 어울릴 체형이세요” 등의 이야기로 대화를 이끌어 간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긍정적인 모습으로 대할 수 있는 것도 취미이자 특기가 돼버린 라틴댄스 덕분이다. 그는 바쁜 일상 중에도 취미 하나쯤은 즐길 수 있음이 자기발전에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고 강조한다. “모든 사람들이 꼭 라틴댄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자기 내면에 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삶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어딘가에 푹 빠져 살만한 취미 생활을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춤출 때 뿐만 아니라 업무에서도 정열적인 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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