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90] 평양의 부자상봉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90] 평양의 부자상봉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4.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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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대전에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평안도 관찰사로부터 병조를 거쳐 문종에게 보고된 급보는 압록강 북쪽과 파저강 일대에 몽골 대군이 집결하여 침공할 태세라는 것이었다.
문종은 영의정 하연, 좌의정 남지, 우찬성 정분 등을 불러 모아 대책을 의논했다.

“원나라의 후예인 달달족 추장들이 합세하여 국경을 침범할 태세라고 하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심히 걱정이오.”

임금이 대신들을 굽어보며 말했다.

“군사를 정비하여 서북 변경 방어를 서둘러야 합니다.”

정승 하연이 고개를 조아렸다.

“김종서와 이징옥 장군이 함길도에서 동북 변경을 단속한 이후 서북 변경은 방비를 소홀히 해왔는데 이제 큰 위기가 닥친 셈이오.”
“김종서 장군을 평안도 도체찰사로 임명해 속히 변경으로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듣고 있던 수양대군이 한마디 했다. 그가 김종서를 도체찰사로 보내자고 한 것은 왕권 찬탈의 기회를 가지려는 야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국난의 위기를 맞으면 모두가 기대는 사람은 오직 김종서 장군뿐이었다.

“하오나 김종서 장군은 연세가 이미 칠순에 가까운데 이 엄동설한에 북변으로 보낸다는 것이 소기의 목적에 적합한지 모르겠습니다.”

안평대군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안평은 나름대로 김종서가 없는 한양을 걱정했다.

“김종서를 평안도체찰사로 임명하여 몽골 침공을 막게 하시오.”

임금은 수양대군의 의견을 받아들여 결론을 내렸다.

문종 1년, 김종서의 나이 예순일곱이었다. 문종 임금은 출전하기 전 김종서를 경복궁 근정전으로 불렀다. 임금은 손수 갑옷 한 벌, 털 귀마개, 활과 화살을 주었다.

“고령의 경을 전장의 수령을 삼아 보내려니 과인의 심정이 착잡하오. 하지만 나라가 위급할 때 경은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소. 이번에도 꼭 나라를 구해주시오.”

임금이 어탑에서 내려와 김종서의 손을 잡았다. 

“평안도로 가는 수령은 가족을 데리고 가지 못하게 되어있는지라 홀로 보내는 것이 안타깝소.”

그러나 김종서의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이태가 가까웠다. 임금은 도승지 이계전에게 출정하는 김종서를 반송정까지 나가 환송하라고 일렀다.

김종서는 출정 길에 홍득희를 불러 동행했다. 그러나 홍득희는 김종서 없는 한양을 염려하여 김종서의 집에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파저강 북쪽 오랑캐 상황을 파악하려면 득희가 꼭 필요하다. 이번 전쟁에 패하면 조선은 사직을 보존할 수가 없다.”
홍득희는 자신이 없는 동안 한성, 특히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동정을 살필 것을 천시관에게 부탁하고 김종서를 따라 나섰다.

김종서가 출정한 이틀 뒤 영의정 하연은 임금에게 청을 올렸다.

“일흔을 앞둔 김종서 도체찰사가 전장에 홀로 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평안도에는 수령이 가족을 수반할 수 없습니다만, 이번만은 배려를 바랍니다.”

소청을 들은 임금이 반문했다.

“김 도체찰사는 이미 처가 죽고 없는데 가족이라니요?”
“장남 김승규를 동행케 하여 아버지를 돕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승규는 아직 어머니 상중이지만 전하께서 어명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김승규는 사복시 소윤의 직에 있었다.

“경의 말이 타당하오. 과인도 김종서 장군을 홀로 변방에 보내며 마음이 편하지 못했소. 곧 김승규를 종사관으로 뒤따르게 하시오.”

김승규는 왕명을 받고 역마를 이용해 평안도로 향했다. 평양에서 부자가 상봉했다.

“아버지!”

평양성에는 모진 북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고드름이 달린 노부의 흰 수염을 보며 김승규는 울음을 삼켰다.

“네가 여기까가지 오다니...”

사지를 앞에 두고 아들을 보는 김종서의 마음은 반갑지만은 않았다.

문종이 갓 보위에 오르자마자 북방 몽골족이 다시 대거 조선을 침공할 태세를 보였다. 조정은 대단히 당황했다. 급하면 장수를 찾는 조정인지라 칠순이 다된 김종서가 흰 눈썹을 삭풍에 휘날리며 압록강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조선군의 전세는 극히 불리했다. 압록강 너머에서 몽골 대군 수십만이 야선과 화관왕이라는 두 추장의 지휘로 남침을 시작했는데, 조선군은 황급히 동원한 김종서 군 3천 명이 고작이었다.

김종서는 삼남을 비롯한 각도의 지방군을 긴급히 동원해서 평안도로 집결하도록 조정에 요청했다. 그러나 갓 임금 자리에 앉은 문종은 탄식만 했다. 

“조선에는 왜 이렇게 장수들이 없는가? 사직이 위급한데 나라를 구할 궁리는 않고 대신들이 자기 이익만 챙기기에 급급하단 말이냐?”

문종은 우선 황해도에 있는 군사 3천 명을 김종서 휘하로 넣도록 체찰사에게 명했다.  

오랑캐가 평안도로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연도에 있는 백성들은 남쪽으로 도망가기에 바빴다.  명령을 받은 수령들은 한 명도 평안도에 도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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