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에는 용마루에 납작 엎드린 사나이가 활시위를 당기려고 하고 있었다. 말에서 내리는 김종서 장군을 쏘려는 것이 분명했다. 갑옷을 입지 않은 김종서 장군의 목숨이 화살 한 방에 달려있었다. 명궁으로 불리는 옥문기가 저자라면 분명히 장군의 심장이나 얼굴을 겨냥하고 있을 터였다.
홍득희는 생애의 가장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피융!
홍득희의 활에서 화살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윽!”
지붕 위에서도 짧은 비명이 들렸다. 곧 이어 활을 손에 꼭 쥔 사나이가 지붕에서 굴러 떨어졌다.
홍득희는 사나이가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사나이는 지붕에서 떨어지며 한 손은 활을 잡고 한 손은 목에 꽂힌 화살을 쥐고 고통스러워했다. 홍득희의 필살의 일발이 사나이의 목을 관통한 것이었다.
“네 놈이 옥문기냐?”
홍득희가 칼을 빼들고 사나이의 얼굴을 겨누며 말했다. 그러나 사나이는 홍득희를 한번 흘깃 보고는 눈을 부릅뜬 채 숨을 거두었다.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홍득희가 사나이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 마당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홍득희가 급히 뛰어나갔다.
“이놈들이 암살패입니다.”
염정근과 다른 부하들이 남자 두 명의 멱살을 쥐고 마당으로 나왔다.
“두령님, 이놈들이 저 농가 뒤에서 활과 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격하는 놈은 내가 막았다.”
홍득희가 마당으로 나서자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있던 김종서가 깜짝 놀라서 홍득희 일행을 바라보았다.
“너는, 너는 득희 아니냐?”
“아저씨!”
홍득희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여기 죽은 자는 누구냐?”
평산 역 마당이 추국장으로 변했다. 김종서 장군이 추관이 되어 단상에 앉고, 마당에는 죽은 시체 1구와 오랏줄에 묶인 사나이 둘이 꿇어앉아 있었다. 마당 주변은 김종서 장군과 함께 온 조선군 갑사들이 둘러쌌다.
“옥문기입니다.”
초립을 쓰고 있던 사나이가 말했다.
“너는 이름이 무엇이냐?”
“노비 구을석이입니다.”
“어느 집 노비냐?”
“옥문기 처갓집 노비입니다.”
김종서가 다른 사나이를 보고 물었다.
“너도 종놈이냐?”
“그러하옵니다. 옥문기와 함께 남문 밖 주막에서 붙어사는 신백정입니다.”
또 한 사나이는 머리에 무명수건만 질끈 동여맨 것으로 보아 아직 상투도 틀지 못한 떠꺼머리총각 같았다.
“저기 죽은 자와 아는 사이냐?”
“예. 함께 가면 벼슬자리 하나 준다고 해서 그냥 따라온 죄밖에 없습니다.”
구을석이란 사나이가 죽을상을 하고 대답했다. 암살패로 보기에는 너무나 한심한 자들이었다.
“저기 죽은 자의 이름이 옥문기가 맞느냐?”
“예, 맞습니다.”
“저자가 활 잘 쏘는 옥문기가 틀림없단 말이지?”
옆에서 듣고 있던 홍득희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함께 지냈다는 신백정이 대답했다.
“무엇 때문에 저자를 따라왔느냐?”
“역적 한 사람을 활로 쏘아 죽이는데 같이 가서 자기를 엄호해 주면 천민 신분을 벗어나게 하고 벼슬도 준다고 하였습니다.”
“옥문기는 누구의 지시를 받았느냐?”
그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
“얼른 대지 않으면 너희가 대신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다. 조선의 도체찰사를 암살하려고 한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 아느냐? 남문 거리에 머리가 걸려서 돌팔매를 맞아 보아야 알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