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家 재벌집 막내아들, 북한 곡물 사업 뒷돈·6천달러 채권 10달러 양도'속내'
LG家 재벌집 막내아들, 북한 곡물 사업 뒷돈·6천달러 채권 10달러 양도'속내'
  • 조경호 기자
  • 승인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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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선데이저널, LG 1990년대 北곡물수출 사건 제반합의서-보증서 공개
구인회 아들과 美재미사업가 데이빗 장 소송서 북한곡물수출 실상 밝혀져
6천만 달러 LG 채권양도각서 10달러에 具 아들 구자극에 양도 의혹

[한국증권_조경호 기자] LG그룹이 북한과의 식량 무역에 관여한 의혹이 제기됐다. 1990년대 식량난을 겼던 북한에 곡물을 공급하는 과정에 LG상사(럭키금성상사)가 뒷돈을 댓다는 것. 이는 2000년 6월 북한 간첩 혐의로 FBI에 체포되어 구속됐던 한국인 사업가 데이비드 장과 LG가(家)구인회 전 명예회장의 막내 아들 구자극 전 LG상사 미주법인 회장(현 엑사이엔씨 회장)와의 소송 과정에서 밝혀졌다. 

19일(현지시간) 미국 현지에서 발행되는 선데이저널(SunDayjournal)은 <[단독] 1990년대 北곡물수출사건 실체 LG관련 비밀자료 단독입수 공개>제하 기사를 통해 한국인 사업가 데이트비 장이 북한에 곡물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LG상사가 8300만 달러를 제공했고, 이 중 5600만 달러를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곡물 수출 관련 문건은 FBI에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데이비드 장 관련 연방법원과 뉴욕주법원의 소송자료 등의 검색을 확인됐다.

2000년 6월 미국 뉴욕의 맨허튼 32번가에서 호텔을 운영하던 데이비드 장은 간첩혐의로 FBI에 체포된다.

데이비드 장은 1990년대 초반 북한에 수천톤의 쌀을 수출한다. 당시 북한의 핵개발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 정계와 언론의 매파들은 영변 폭결설을 흘리고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한다. 미국은 전쟁을 가정하고 주한미군 가족들을 수송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김영삼 대통령의 완강한 전쟁 불가론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미국은 결국 북한을 다루는데 채찍(강경정책)을 포기하고 당근(유화정책)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 결과 나온 것이 핵발전 건설 포기를 전제로 한 경수로 및 대체연료로서의 중요 제공, 북한에 대한 인도적 물품의 수출을 허용을 골로자로 제네바 핵합의를 한다. 이를 믿고 데이비드 장은 북한에 쌀을 수출한다. 북한은 쌀 수입대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장은 상무부와 토리첼리 상원의원 등 정치인에게 돈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탄원한다. 

미국은 대북한 정책을 다시 채찍으로 바뀐다. 상무부는 북한에 쌀을 보낸 데이비드 장을 '불순인물'로 점찍는다. FBI와 경찰은 데이비드 장을 체포한다. LG 미주지사도 수색을 당한다. 언론들도 데이비드 장과 토리첼리 상원의원을 두들겼다. 1996년 토리첼리 의원이 상원 출마 때 불법 선거자금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장은 미국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2002년 5월 1년 6월의 중형을 선고받는다.  구자극 씨도 정치자금을 불법제공 혐의로 유죄형인 집행유예가 선고된다. 정치자금 수혜 당사자인 토리첼리 상원의원은 기소를 면한다. 

北 곡물대금 지급 하지 않아

데이비드 장은 2003년 10월 2일 만기 석방된다. 데이비드 장은 북한에 수출한 곡물 대금도 받지 못하고 사업도 망가진다. 데이비드 장이 미국인이 아닌 소수민족인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미국인이 북한에 수출한 곡물 대금을 받지 못했다면 상무부 대외협력처에서 확실히 받아 줄 것이고, 북한이 지급하지 않으면 외교분쟁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미국인들은 보고 있다. 

데이비즈 장 사건은 불법 정치자금 기부사건이지만, 실제는 미국의 적성국가이자 미수교국인 북한에 대한 곡물수출비용 7100만 달러 상당을 받지 못한데서 비롯된 사건이다.

데이비드 장이 북한에 국물을 수출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1991년 연방상무부로 부터 북한수출라이센스를 받아냈다. 북한에 최소 7100만 달러 이상의 곡물을 수출했다. 그리고 그 대금을 받지 못했다.

데이비드 장은 미국 상무무 대외협력처를 통해 곡물 수출 대금을 받기 위해 토리첼리 상원의원에게 대금회수를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이 과정에 자신과 직원들을 동원, 거액을 헌금하다가 연방검찰에 적발된 것이다.

실제 토리첼리 상원의원은 1995년 9월 22일 당시 연방하원 외교위 소속으로서, 박길연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1990년대 니코엔터프라이즈가 북한에 수출한 옥수수와 밀 등 곡물수출대금 7100만 달러를 가능한 빨리 갚아 달라’고 요청한바 있다. 데이비드 장은 토리첼리를 적극 후원, 하원의원이던 토리첼리를 상원의원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운다. 그 대가로 계속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곡물대금은 LG의 뒷돈

1990년대 초반 호텔사업을 하던 데이비드 장이 대북사업가로 변신하는데는 LG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LG상사는 데이비드 장이 북한에 곡물 수출하는데 필요한 8300만 달러에 뒷돈을 대준 것으로 선데이저널이 연방법원 및 뉴욕주법원등의 소송서류를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LG상사가 데이비드 장 등으로 부터 돌려받지 못한 비용이 최소 5600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데이비드 장은 2006년 5월 24일 뉴욕 주 뉴욕카운티지방법원에 구인회 LG 창업주의 막내아들 구자극 씨에게 50만 달러 채무상환소송을 제기한다. 1990년대 구 씨에게 60만 달러를 빌려줬는데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것. 5월 30일 소송장을 송달받은 구씨는 같은 해 6월 23일 뉴욕남부연방법원으로 소송을 이관한다.

데이비드 장과 구씨는 2001년 10월 18일 60만 달러의 채무를 인정한다. 10만 달러는 당해 년에 상환하고, 나머지 50만 달러는 2003년 1월 1일부터 2007년 1월 1일까지 5회에 걸쳐 매년 10만 달러씩 분할상환한다는 합의한다. 이 합의서는 재판 중에 데비비드 장이 증거로 제출하면서 드러난 것이다.

재판 과정에 별건이 밝혀진다. 60만 달러보다 백배이상 많은 8300만 달러의 비밀이 폭로된다. 데이비즈 장이 소유한 니코엔터프라이즈 등 4개 회사는 1997년 9월 28일 ‘데이빗 장 측이 럭키금성상사(현 LG상사)에 갚아야 할 돈은 8290만 달러이며, 니코엔터의 부동산에 5524만 달러, C&K 법인 부동산에 1600만 달러 등 7123만 달러에 대해서는 담보를 설정했으며, 나머지 천만 달러 상당에 대해서는 브라이트앤브라이트가 상환을 약속한다’라는 AGREEMENT(합의서)를 작성한 사실이 밝혀진다. LG상사가 데이비드 장에게 북한곡물수출대금으로 빌려준 돈이 8300만 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장은 1998년 9월 29일 ‘개인보증서’라는 제목의 문서를 통해 "LG상사 미주법인인 엘지인터내셔널아메리카로 부터 빌린 돈 중 상환하지 못한 5252만여 달러를 무조건 상환하겠다. 5252만 달러는 지난 1997년 9월 28일 기준 미상환원금에서 1천만 달러가 줄어든 것이다, 나는 LG측의 채권자로서의 권리행사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며, 보증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장은 직접 서명한다.

선데이저널은 데이비드 장이 작성한 개인보증서를 토대로, 당시 LG에 미상환한 곡물수출대금 중 개인보증액이 5252만 달러에 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LG상사는 2000년 6월 30일 ‘데이비드 장은 LG상사에 4919만 달러의 채무가 있음을 인정했고, 허드슨테라스매니지먼트등이 부동산을 매각하는 경우, LG에 대금일부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부동산에 설정한 담보를 풀어주겠다’고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데이비드 장은 2020년 6월 30일, LG가 담보해지의사를 밝힌 것과 같은 날 ‘LG상사 미주법인에 2000년 8월 30일까지 10만 달러를 지급하겠다’며 약속어음을 발행한다. 이 모든 서류는 연방법원에 증거로 제출됐다.

데이비드 장의 회사인 허드슨테라스리얼티매니지먼트와 LG상사 미주법인은 지난 2004년 4월 1일 부동산양도합의서에 서명한다.  두 회사는 ‘허드슨테라스리얼티매니지먼트는 LG상사 미주법인으로 부터 지난 1992년 9월 23일 1023만 7500달러, 1993년 3월 15일 4500만 5백 달러 등 2차례에 걸쳐 약 5524만 달러의 모기지계약을 맺고, 뉴저지 주 포트리의 173 노스 브릿지플라자의 부동산을 양도한다’고 합의한다.

두 법인은 같은 날 ‘부동산매매대금분배합의서’를 통해 ‘173 노스브릿지플라자 매각대금 중 261만여 달러는 LG상사 미주법인에 입금하고, 20만 달러는 데이빗 장에게, 그 외 변호사비 등 법률비용을 지불한다. 남는 돈이 있다면 60%는 LG상사 미주법인에, 40%는 데이빗 장에게 지급한다’고 합의한다.

LG상사는 데이브드 장에게 북한곡물대금으로 모두 8300만 달러를 제공했고, 구체적으로 1992년 9월 약 1천만 달러, 1993년 3월 4500만 달러를 제공한 뒤 이 5500만 달러 상당에 대해서는 담보를 설정했던 것.

선데이저널의 확인 결과 2건의 대출은 모기지 대출 형태로 버겐카운티등기소에 등기가 돼 있었다. LG상사측은 1992년 9월 23일자로 1023만여 달러, 1993년 3월 15일자로 4500만여 달러 등, 2건의 모기지를 정확하게 등기한 것이다.

2004년 4월 1일 부동산양도합의서등에 앞선 2004년 1월 30일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버겐카운티등기소 서류 확인결과 LG상사 미주법인은 지난 2004년 1월 30일 ‘1992년9월 23일자로 허드슨이 LG상사에서 빌린 1023만 7500달러의 모기지에 대한 상환의무를 면제한다’는 모기지면제서를 작성해 준 것이다. LG상사 미주법인은 또 같은 날 ‘1993년 3월 15일자로 허드슨이 LG상사에서 빌린 4500만 달러의 모기지에 대한 상환의무를 면제한다’는 모기지면제서를 발급했다.  2건의 모기지 면제서가 모두 정식으르 등기된 것이다.  LG상사가 2004년 1월 30일자로, 데이비드 장의 채무중 약 5.500달러이상을 면제해준 것이다.

6000만 달러 채권 10달러 양도

LG상사는 6000만 달러의 채권을 10달러에 양도한다.

LG상사 미주법인은 2004년 4월 1일 데이비드 장에게 받을 채권 5524만 달러의 채무를 연장한다.  허드슨이 LG상사 미주법인에 제공한 약속 어음을 찾더라도 상환 의무를 면제한다고 한다. 앞서 1월 3일 모기지를 모두 상환한 증명서를 등기소에 등기를 하고도 2개월 뒤 문서에는 채무 조건 연장 서류를 발급한 것이다.

구자극 씨는 60만 달러 채권채무소송이 제기된 지 3개월만인 2006년 8월 25일 연방법원에 서류를 제출한다. LG상사가 데이비드 장에 대한 채권을 모두 구자극 씨에게 양도한다는 것이다.

LG상사는 ‘데이비드 장 및 데이비드 장 관련회사에 대한 채무 등에 대한 모든 권리를 10달러에 구자극 씨에게 무조건 양도한다’는 양도각서를 구씨에게 발급한다. 5600만 달러에 달하는 채권을 창업자 아들에게 단돈 10달러에 양도한 것. 이 양도각서는 당시 LG상사 미주법인장인 한선택씨가 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씨는 이와 함께 2005년 12월 31일자 LG인터내셔널아메리카, 즉 LG상사 미주법인의 재무제표를 증거로 제출하고, LG채무를 모두 상환 또는 면제받았다는 데이비드 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재무제표에는 자산이 1억 1752만 달러인 반면 미수금이 5953만여 달러 및 3143만 달러 등 약 9천만 달러로 기재돼 있다고 강조한다.

5953만여 달러가 장 씨에 대한 채권이라는 것. 이 같은 구씨 주장을 통해 LG상사의 데이빗 장에 대한 채권은 5600만 달러 이상, 이자포함 약 6천만 달러에 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모든 권리를 창업주의 아들에게 10달러에 양도한 것은 배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선데이저널은 밝힌다.

이 소송은 2006년 11월 14일 양측이 합의하에 종결된다.  60만 달러 채권에 대한 시시비비는 가리지 못한다.  

선데이저널은 "해당 소송을 통해 LG상사가 북한곡물수출의 자금빨대였음이 백일 하에 드러났다. 대납 대금은 8300만 달러이상이었고, 7100만 달러 상당을 받지 못했다.  LG상사는 5600만 달러 이상의 데이빗 장에 대한 채무를, 오너 아들에게 10달러에 양도한 것이다. 데이비드 장이 2012년 2월 사망함으로써 이에 대해 채권은 집행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北, 韓 국정원 상대 소송 기각

데이비드 장은 북한으로부터 7100만 달러의 미수금을 받기 위해 미국 내에서 가장 먼저 미수교국인 북한을 상대로 사상 처음으로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여러 건의 소송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데이비드 장이 소유한 회사로, 북한 곡물수출을 주도한 니코엔터프라이즈는 지난 1993년 11월 19일 뉴욕남부연방법원에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과 북한무역진흥위원회등을 대상으로 수입대금 7100만여 달러를 상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994년 12월 15일 기각된 것으로 확인됐다.

연방법원은 1993년 11월 26일 원고 측에 ‘피고의 홍콩사무실 등에 팩스, 일반우편이나 등기우편 등으로 소송장을 송달하라’고 명령했고, 원고 측은 1994년 3월 24일‘1993년 11월 30일자로 송달을 마쳤고, 답변기한은 1993년 12월 20일이지만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무부 시민영사서비스담당국은 1994년 6월 16일 재판부에 서한을 보내 ‘미국과 북한은 외교관계가 수립돼 있지 않다’며 국무부가 이 재판과 관련해 송달 등을 도울 방법이 없으며, 전적으로 재판부가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뒤 재판부는 1994년 9월 8일 원고 측에 송달방법 등을 강구할 때까지 재판을 중단한다고 밝혔고, 1994년 12월 15일 송달불가로 소송을 각하했다. 미국연방법원에 북한을 상대로 제기된 사상 첫 소송이었으며, 송달불가로 7개월 만에 종결되고 말았다. 데이빗 장은 한국정부 등을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했다. 데이빗 장은 지난 1996년 11월 12일 대한민국 정부 및 국정원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998년 3월 30일 재판부가 소송을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연방법원은 이 소송의 관련 서류 등은 온라인상으로는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데이비드 장은 또 불법정치자금기부 등을 보도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을 상대로 1999년 4월 30일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했지만, 1999년 11월 기각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 소송기각직후인 1999년 12월 14일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체포돼 보석금 50만 달러를 내고 풀려난다.  2000년 6월 2일 유죄를 인정했고, 징역 18개월 형 선고를 받아 복역한 뒤 2003년 10월 출소한다. 선고일과 출소일이 차이나는 것은 선고일보다 훨씬 늦게 교도소에 수감됐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장은 출소 뒤 2년간의 보호관찰 명령을 받았고, 1년 뒤 보호관찰 조기종료조건에 해당한다며 조기종료를 신청, 약 1년4개월만인 2005년 2월 18일 보화관찰이 조기 종료됐다. 그 뒤 장 씨는 구자극 씨를 상대로 60만 달러 채무상환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LG일가 배임의혹

데이비드 장은 LG상사로 부터 북한곡물수출대금을 받은 이후 부동산이 대거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데이빗 장은 1993년 12월 16일 클로스터주택을 150만 달러에 매입한다.  1994년 10월 17일 뉴저지 주 포트리 존슨로드의 현 힐튼호텔 부지를 매입, 호텔을 신축한다. 1998년 7월 23일 일본계 여성과 재혼, 크레스킬로 주거지를 옮긴다.  또 니코엔터프라이즈 등 데이비드 장 회사들이 소유했던 뉴저지 잉글우드클립스의 464 허드슨테라스의 부동산과 173 노스브릿지플라자 부동산등은 현재는 모두 다른 사람의 소유로 넘어간다.  

데이비드 장은 미국최초로 1991년 북한에 대한 합법적 수출허가를 받아서 곡물수출을 한 한인 사업가였다. 데이비드 장은 북한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한때는 대우그룹의 북한진출을 돕는다. 이와 관련해 1989년 7월 13일 연방법원에 소송이 제기됐다가 1990년 4월 25일 종결된다.

럭키금성상사는 지난 1991년 11월 28일 통일원으로 부터 8백만 달러상당의 대북직교역사업 승인을 받아 컬러TV 5천대, 설탕 5천 톤, 필름 7백 톤 등을 수출한다.  그 대가로 북한산 무연탄 10만 톤을 받았다. 럭키금성상사는 1992년 2월에는 북한의 화학공장에 원유 등 2억 달러를 투자하면 석유제품 등을 대가로 받는 제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같은 해 6월말 북한에 냉연간판 5천 톤을 수출한다. 1990년대 초반 대북교역을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북교역에서 LG가 앞선 던 것은 데이비드 장의 역할로 풀이된다. 결국 최소 6천만 달러, 최대 7100만 달러 상당을 받지 못한 것으로 추정돼 비싼 수업료를 낸 셈. 선데이저널은 "LG상사가 최소 6천만 달러 이상의 손실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또 LG창업주의 아들에게 6천만 달러 이상의 채권을 10달러에 양도한 것은 배임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제 LG주주들이 회사와 오너일가에게 따져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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