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77] 이름 3번 바뀐 수양대군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77] 이름 3번 바뀐 수양대군
  • 신예성 기자
  • 승인 2024.0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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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의 원래 봉호는 진양인데 왜 아바마마께서 수양이라고 바꾸었을까?”

안평대군이 혼잣말처럼 하는 소리를 듣고 촉새처럼 입이 빠른 이현로가 대답했다.

“머리 수(首)자에 볕 양(陽)자를 쓰지 않았습니까? 종사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데 가장 앞장서서 태양이 빛나듯이 처리하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안평대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대군 마마, 한 번 뒤집어 보면 묘한 뜻이 있습니다.”

이현로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묘한 뜻이라고?”
“진양대군의 진(晉)짜는 나아갈 진인데, 나아가다, 억누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더구나 주역의 64괘중 스물다섯 번째 괘인 ‘진’은 태양이 빛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풍수뿐 아니라 예언서나 주역에도 조예가 깊은 이현로의 말이라 안평대군은 귀가 솔깃했다.

“그럼 바꾼 수양은 진양이나 같은 뜻을 가진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무엇 때문에 봉호를 바꾸었는지 모르지만 그 뜻은 바꾸지 못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중국 고사인 수양산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싶네.”
“백이 숙제가 고사리만 캐먹으며 한 임금만 섬겼다는 충절을 의미하는 그 수양산 말씀인가요?”
“그렇지.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수양 형님이 혹시 딴 마음 갖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셨나? 허허허...”

안평대군이 크게 웃었다.

“그러나 그 뜻은 반대가 되었지요. 수양대군의 행보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수양대군의 원래 군호는 함평대군이었다. 할아버지인 태종이 함평의 함(咸)자는 조상의 발상지인 함길도와 함흥에 쓰이는 글자이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진양으로 고쳤다. 그 후 세종 15년에 세종 임금이 다시 수양대군으로 고쳐 군호가 세 번째서야 정착되었다.  

“전하께서 수양대군의 불타는 야심을 꿰뚫어본 것이야. 문약한 세자가 보위를 이어받더라도 한 임금을 섬기는 중국의 고사를 잊지 말라는 뜻으로 수양이라는 군호를 붙인 것 같다는 말 아니겠어?”

안평대군이 자기식의 해석을 넌지시 이현로에게 던졌다.

“전하께서 평소에 세자와 세손의 장자 세습을 얼마나 강조했습니까? 그런 것을 보면 대군 마마의 해석이 옳으십니다. 그러나 고친 이름이 더 확실하게 용상을 향하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신라 비기의 대가 김보명의 예언도 저와 같았습니다.”

이현로가 손가락으로 점괘를 짚어보면서 말했다. 

“수양대군을 제거하지 않으면 용상이 위태롭습니다. 대군 마마의 어깨가 무거워진 것 같습니다.”
“함부로 그런 소리를 하면 목숨이 열 개라도 남아나지 못 한다. 지금 형님의 수하에는 무사들이 줄을 서 있다는데...”
“하지만 점괘가 그렇게 나옵니다. 아무리 그래도 수양의 운은 대권의 백악산을 넘지 못합니다.”
“넘지 못하다니?”
“백악산을 넘지 못하면 백악산 뒤에 머물겠지요.”

안평대군은 그 소리를 듣자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피비린내 나는 소용돌이의 가운데 서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때였다. 근수 노비가 아뢰었다.

“권람 나으리와 사복소윤 김승규 나으리가 오셨습니다.”

권람은 우찬성을 지낸 권제의 아들로 나이 서른이 넘도록 과거에 나가지 못하고 건달로 있었다. 요즘은 수양대군의 수하에 들어가 한명회 등 장안의 다른 건달들을 모으는데 힘쓰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김종서의 장남 김승규는 과거에 급제한 뒤 사복소윤으로 왕실 종친과 대신들의 출입을 관장하고 있었다.

“김 소윤이 웬일인가?”

안평대군이 김승규를 보고 반가워했다. 그러나 권람을 보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명문자제 김승규가 권람 같은 건달과 어찌 동행을 했느냐 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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