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74] 눈감은 채 여인의 몸을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74] 눈감은 채 여인의 몸을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4.0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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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쪽으로 돌아누워 잘 테니 득희도 눈 좀 붙여라.”

김종서가 벽을 향해 돌아누워 몸을 돌돌 감았다.

“제 걱정은 말고 아저씨나 좀 주무세요.”

홍득희가 조심스럽게 들어와 문 앞에 쪼그리고 누웠다. 그러나 물에 젖은 속옷이 살갗에 달라붙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김종서와 홍득희는 잠이 오지 않았다. 서로 상대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어느 쪽도 먼저 잠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동안 뒤척이던 김종서가 겨우 잠이 들락말락할 무렵, 가느다란 인기척을 느껴졌다.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울음을 참는 것 같기도 한 숨결이었다. 김종서는 홍득희가 옆에 와서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직도 바깥에는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빛에 홍득희의 얼굴이 얼핏 비쳤다. 뺨에 물기가 젖어 있었다.

“득희야!”

김종서가 나직하게 불렀으나 홍득희는 흐느끼기만 할뿐 대답이 없었다.
“왜 그러느냐? 잠이 오지 않느냐?”
“경성에서 있을 때 일인데요.”

홍득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저씨와 함께 두만강 변을 달리면서 시를 읊던 생각이 나서요.”

김종서는 홍득희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었던 것을 김종서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홍득희는 두 사람이 살을 맞댄 것이 오늘밤이 처음은 아닌데 모르는 척 한 김종서가 야속했던 것이다.
김종서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홍득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저씨 부탁이 있어요.”
“무엇인지 날이 밝은 뒤에 얘기하면 안 되겠느냐?”
“지금 말씀 드려야 해요.”
“그렇다면 말해 보아라.”

김종서는 벌거벗은 몸이 민망스러워 옆으로 돌아앉으며 말했다.

“아저씨, 저를 식구로 받아주세요.”
“나는 너를 이미 내식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홍득희의 말뜻을 몰라서 한 대답이 아니었다.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뭐라고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종년이라고 생각하시고 양반의 비첩으로 받아 주세요. 저는 아저씨 곁에 있고 싶어요.”
“득희야. 너는 나한테 그보다 더 중한 존재다.”
“오늘 밤 이대로 넘기기는 싫어요. 아저씨 품에 안기고 싶어요.”

홍득희가 무릎걸음으로 김종서 곁에 바싹 다가앉았다. 단신으로 삭풍이 몰아치는 북방 변경을 누비고 다니든 김종서도 사나이임에 틀림없다. 여자 품이 그리운 적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홍득희를 처음 만난 것은 비록 아홉 살 소녀였을 때지만 처녀가 되어 다시 만난 후로는 가끔 홍득희가 여자로 보일 때가 있었다. 경성에서의 하룻밤은 홍득희를 더욱 잊지 못하게 했다. 나이를 초월한 이성으로서의 그리움, 홍득희를 향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이 순수하고 애틋한 감정을 홍득희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홍득희가 김종서의 품에 갑자기 안겨왔다. 김종서는 눈을 감은 채 젖은 홍득희의 몸을 뜨겁게 느꼈다. 
그때였다. 문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말발굽 소리가 어지럽더니 집안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김종서와 홍득희는 기겁하고 일어서서 본능적으로 칼을 잡았다.

“누구냐?”

김종서가 소리쳤다. 벌거벗은 맨 상투의 사나이가 등에는 활을 메고 손에 칼을 잡고 나선 모양이 가관이었다. 거기다가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 같은 속옷 차림의 여자가 칼을 들고 덤빌 태세니 이 또한 해괴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조선군 갑사다. 너희들은 무슨 도깨비냐?”

횃불을 든 병사들이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공험진에 있던 조선 병사들이었다. 횃불 앞에 선 해괴한 차림의 남녀를 본 조선 병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옳지. 늙은 놈과 젊은 년이 지금 한창 재미를 보고 있었구나. 그래 일은 끝냈느냐?”

이상한 모습의 김종서와 홍득희를 병사들이 알아볼 리가 없었다. 김종서는 부하들 앞에 이런 망신을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 분은 함길도체찰사 김종서 장군이시다.”

홍득희가 크게 말했다.

“누가 옷 한 벌 벗어 내 놓으시오.”

홍득희의 말을 들은 병사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김종서다. 본영으로 돌아가다가 말이 강에 빠지는 바람에 이 모양이 되었다.”
“장군님!”

그제야 병사 한 사람이 자기 겉옷을 벗어 김종서에게 주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여기를 찾아 왔느냐?”

김종서가 옷을 입으며 물었다.

“불화살을 발견한 홀라온의 진지에서 연락을 해왔습니다.”
“불화살?”

김종서가 홍득희를 돌아보았다.

“예. 제가 긴급 신호로 여러 번 쏘아 올렸습니다. 그걸 인근의 여진족이 발견하고 조선군에 연락한 모양입니다.”

김종서와 홍득희는 병사들을 앞세우고 다시 본영으로 향했다. 벌써 반달은 간데 없고 동이 트기 시작했다. 새벽 행군을 하는 김종서와 홍득희는 병사들 앞에 들킨 모습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부지런히 말을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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