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72] 고려땅을 찾다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72] 고려땅을 찾다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4.0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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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득희는 말 고삐를 비석에 감았다. 그리고 말의 힘을 빌어 비석을 흙구덩이에서 밖으로 끄집어냈다. 두 사람은 비석을 뒤집어 보았다. 그러나 사면 모두 글자가 뭉개지고 없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글자를 깎아낸 거야. 아마도 야인들이 후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지웠을 것이다.”

김종서는 여기에 중요한 기록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기 그지없어 혀만 찼다.

“아저씨, 이것 보세요.”

홍득희가 비석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무엇인가를 찾아냈다. 비석의 밑바닥에서 글씨 4자를 발견한 것이다.

“여기 글자가 있어요. 비석 바닥은 미처 지우지 못했군요.”

김종서는 손바닥으로 비석 바닥을 쓸고 글씨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고려지경(高麗之境)’

네 글자는 분명하게 국경을 표시하는 글자였다. 김종서는 가슴이 벅찼다. 마침내 윤관 장군의 국경비를 찾아낸 것이었다..

“찾았다. 고려의 국경을 찾았다.”

흥분한 김종서가 고함을 질렀다.

“아저씨, 우리가 찾았어요!”

홍득희도 흥분해서 김종서의 가슴을 와락 껴안았다. 키가 작은 김종서와 키가 큰 홍득희의 얼굴이 맞부딪쳤다. 민망해진 김종서가 슬그머니 홍득희를 밀어냈다.

“고려의 옛 땅을 찾았으니 이제 조선의 국경을 여기까지 넓혀야 한다. 사다노서 7백 리니까 함흥에서부터는 1천 4백 리가 넘는구나.”

김종서는 감격에 겨워 풀밭에 주저앉아 흙투성이 비석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김종서와 홍득희가 비석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짤막한 북쪽 땅의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여기를 잘 기억해두고 공험진 본영으로 돌아가서 날이 밝으면 군사를 데리고 다시 와야겠습니다.”

홍득희가 돌아갈 차비를 했다.

“임금님께 상주하고, 국경을 확정해서 도호부를 설치해야겠구나.”

김종서는 말에 올라타면서 비석을 몇 번이나 다시 돌아보았다. 벌써 사방이 어두워졌다. 반달이 떠서 사물의 윤곽은 분간 할 수 있었다..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본영으로 돌아갈 텐데.”

김종서가 앞장 선 홍득희를 보고 은근히 걱정했다.

“북극성을 보고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산길이 험하니 저를 꼭 붙어서 따라 오십시오. 저는 이런 산길엔 익숙합니다.”

두 사람은 캄캄한 산길을 더듬거리며 말을 재촉했다.

“오른쪽은 강입니다. 조심해서 말을 모십시오.”

앞장 선 홍득희가 김종서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금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철버덩!’
“아이쿠!”

뒤따라오던 김종서의 말이 미끄러져 강으로 떨어졌다. 김종서도 말과 함께 강 밑으로 굴렀다.

“아저씨!”

앞장섰던 홍득희가 재빨리 말에서 뛰어 내려 강 밑으로 구르다시피 뛰어 내려갔다.

“히히힝-”

강밑에 떨어진 김종서의 말이 비명을 질렀다.

“아저씨, 아저씨!”

홍득희가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강으로 뛰어들었다.

“푸, 푸-.”

갈대가 우거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강 가장자리에서 김종서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홍득희는 갈대숲 속에서 간신히 김종서를 찾아냈다. 갈대 바닥은 거의 가슴에 찰 정도로 물이 차 있는 뻘밭이었다.
홍득희는 뻘에 빠져 허덕이는 김종서를 간신히 찾아내 김종서의 옷자락을 잡았다.

“아저씨, 저를 따라 오세요.”

홍득희는 김종서를 뻘에서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김종서가 메고 있는 활이 갈대숲에 걸려 더욱 힘이 들었다.

“아저씨, 활을 버리세요. 갈대에 걸려요.”
“안 된다. 이건 전하의 활이다. 차라리 내 목숨을 내놓더라도...”

김종서는 헉헉거리면서도 활을 포기하지 않았다.
홍득희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마침내 김종서를 강둑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온 몸이 진흙 뻘에 젖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밤이라서 보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말은 어떻게 되었느냐?”

김종서가 가까스로 숨을 돌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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